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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9.18 임무 완료
  2. 2018.09.18 [영화] 머지 않은 미래
얄라리얄라2018. 9. 18. 14:11


- 기껏 제일 좋다는 스쿠터 사줬더니, 탈 때마다 바퀴에 불이 안 들어온다고 찡찡.. "알리에서 같은 사이즈의 저렴이 LED 바퀴를 사서 교체해주면 되지 뭐"라고, 처음엔 아주 가볍게 생각했던 거다.


- 그런데, 바퀴를 고정한 볼트가 안 빠진다. 육각렌치로 돌리면 쉽게 풀려야 하는데, 아무리 힘을 줘도 이거 뭐 당최 풀리질 않는다. 그제서야 검색해보니, 마이크로 스쿠터는 안에 본드(!)를 발라놔 바퀴가 잘 안 빠진다는 얘기. 헐. 자전거수리점에서 풀었다는 얘길 보고 집 근처 수리점에 갔지만, 스쿠터를 잘 만져본 적 없는 사장님도 결국 실패. 바퀴 바꾸는 거 구경하겠다고 같이 따라나선 아이는 더욱 시무룩해지고...


- 인터넷 폭풍검색 끝에, 이런 LED 바퀴를 파는 곳에서 "사무실로 가져오면 공임 받고 직접 교체해 준다"는 문구를 발견. 마침 거리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길래, 주말을 이용해 방문을 했다.


- 이전에 이미 마이크로 스쿠터에 애를 먹은 적 있다는 사장님은, 그래도 경험이 있는 분이라 믿음이 갔다. 조금 애를 먹었지만, 드디어 왼쪽 바퀴 하나를 떼는 데 성공! 아, 역시 기술자는 달라. 옆에서 막 입에 발린 칭찬을 하며 이제 문제 없겠지, 얼른 바꿔 달고 집에 가야지, 하던 차였는데...


- 오른쪽 바퀴가 안 빠진다. 심지어 헛돈다. 게다가, 젠장, 육각홈까지 마모가 됐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바퀴를 빼는 건 이제 불가능해진 상황. 안 빠지는 볼트 푸느라 사장님의 손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사장님도 난감해지고, 나도 난감해지고. 아, 그냥 애한테 반쪽 LED 바퀴로 만족하라고 해야 하나..? 했는데.


- "교체 뒤 이 바퀴 더 안 쓰실거죠?" 라고 큰 결심을 한 듯 한 표정으로 사장님이 묻길래, 네, 뭐;; 더 쓸 일은 없겠죠... 했더니 "바퀴를 잘라냅시다" 이런다. 네?? 그리곤 느닷없이 전기톱 장전. 전기톱으로 사정없이 바퀴를 잘라내고는, 바퀴를 단단히 고정하고 있던 볼트마저 무지막지하게 잘라내기 시작. 그런데 이게 쇠잖아. 쉽게 잘릴리 없는 육각 볼트는 정말 오랫동안 버텨주었고, 덕분에 저게 얼른 잘려야 집에 갈텐데..하는 생각 중에 키야, 이놈들 튼튼하게는 만들었네, 뭐 이런 믿음도 아주 잠깐 생기긴 했다. 그렇게 40분 넘는 치열한 사투 끝에, 결국 사장님이 이겼다. 스쿠터 바퀴와 육각 볼트는 수많은 쇳가루를 남긴채 잔혹한 최후를 맞았다.


- 사장님은 사무실에 있는 다른 스쿠터에서 빼온 볼트를 끼워 바퀴 교체를 완성해 주셨다. 이렇게까지 바퀴교체가 어려운 건줄 몰랐으므로, 기왕이면 광폭 바퀴로 바꿔달았다. 또 기왕이면 뒷 바퀴도 LED로 바꾸고. 그렇게 바퀴값+소정의 공임을 드리고 두어시간 만에 힘들게 집에 돌아왔다.


- 그 치열했던 사투의 현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이제 제 스쿠터 바퀴에도 불이 들어온다는 사실에 감격해 당장 시승을 하겠다고 졸라댔다. 즐겨타던 집 밖 트랙에는 비가 오는 상황. 하는 수 없이, 차량 이동이 한가로운 지하3층 주차장으로 내려가 적절히 가드하며 태워줬더니, 신나게 폭주를 한다. 땀까지 뻘뻘 흘려가며 멈출 줄을 모른다. 그러면 된 거다. 임무 완료.



calvin.


Posted by the12th
만끽!2018. 9. 18. 14:07


 반려자와 아이가 처가에 간 사이, 한 달에 한 번 쓸 수 있는 무료 조조영화 서비스로 영화 <서치>를 봤다.


- 사실 이런 류의 '추리영화'에 별 관심이 없어 예고편을 봤을 땐 그다지 끌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주변의 평이 꽤 괜찮았고, 막상 급히 조조 영화를 보려다 보니 적당한 거리의 영화관과 맞는 시간과 예매율을 따져봤을 때 이 영화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 여전히 미심쩍은 기분으로 팔짱을 낀 채 좌석에 앉았으나, 영화가 아련한 기억 속 전화모뎀 접속 소리와 함께 윈도우XP의 그 유명한(!) 시작멜로디와 익숙한 캘리포니아 초원의 '바탕화면'으로 시작하자, 이내 경계심이 풀어지며 몰입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윈도우XP와 디지털사진과 캠코더와 오래된 유튜브 화면들이 지나가며 한 가족의 가정사를 훑어나가는 인트로 영상들이, 한밤중 전화모뎀으로 나우누리에 접속하던 아재의 추억과 감수성을 저격하고 만 것이다.


- 영화는 한국계 미국인 데이빗 킴이 딸 마고가 실종된 뒤 딸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제목 < Searching>은 실종자의 '수색'도 되지만, 동시에 '검색'이란 뜻이기도 하다. 데이빗은 딸의 행방을 좇기 위해, 디지털 세상을 샅샅이 뒤져 딸의 흔적을 찾아나간다. 그것은 딸의 현재 위치를 찾는 과정임과 동시에, 아비인 자신이 몰랐던 딸의 진짜 모습을 알아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 가깝게 지내고 잘 해 주며 수시로 대화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딸이 디지털 세상에 흩뿌려 놓은 본심을 찾아나가다 보니 딸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윈도우XP와 맥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디지털 발전과 함께 성장한 (우리)세대인 만큼, 데이빗은 디지털에 매우 친숙하고 그만큼 젊은 아이들과 소통이 가능하다고 자부하는 40대이지만, 10대인 마고가 빠져있다는 "텀블러"가 뭔지도 모른다. 딸이 주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유캐스트나우'라는 라이브 영상 소셜미디어도 처음 들어가 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뒤늦게 딸이 가진 쓸쓸함과 외로움을 마주한다. 어쩌면 그건, 딸과의 소통을 편리하게 디지털에게만 맡겨놓았던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 어느새 나보다 유튜브를 더 잘 다루기 시작하고, 이제 자기만의 비밀이 생겼는지 묻는 말에 대답도 잘 하지 않으며, 귀찮게 굴지 않고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아진 딸 아이와 나의 머지 않은 미래 모습을 보는 거 같아 섬짓했다. 놀자고 보채면 귀찮아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하기 보단 아이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줘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내용도 좋지만, 사실 내용보다 인상적인 건 이 영화의 형식이다. 디지털 환경을 배경과 주제의 일부로 삼은 영화답게 디지털 화면들을 고스란히 영화의 형식으로 차용했다. 정말, 기가 막힌다. 구글을 검색하고, 소셜미디어로 네트워크를 확인하고, 전화통화하고, 영상통화하고, CC-TV를 보고, 구글스트리트뷰로 현장을 확인하며, 밴모로 송금하고 레딧에서 결정적 단서를 찾는다.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그대로 캡쳐해 보여주는 구성으로 영화는 그 모든 이야기를 전개한다. 심지어 영화 촬영장비는 1도 쓰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데, 그런데도 영화는 어떤 이질감과 무리 없이 자연스럽고도 충분히 몰입감 있게 스크린을 채운다. 왜냐하면 이제 세상에는 어느 곳에나 '카메라'가 있기 때문이다!


- 심지어 뉴스 영상도 텔레비전이 아니라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전달된다. 젊은 사람들이 뉴스를 어떻게 소비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방송사인 ABC뉴스 홈페이지를 통해 전해지는 뉴스는 방송뉴스이기만 하지 않다. 이 방송사 홈페이지에서 사진 슬라이드가 주요 뉴스로 전달되는 장면이 있었는데, 디지털시대 뉴스 미디어가 어때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업자로서 꽤 인상적으로 보였다.


- 디지털 환경의 변화를 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처음 윈도우XP로 가족의 추억을 기록하던 데이빗은 이제 더 이상 윈도우 PC를 쓰지 않는다. 그와 딸은 맥을 쓴다. 전화기는 물론 iMessage와 Facetime이 가능한 아이폰이다. 윈도우PC는 그저 과거 흔적을 뒤지기 위해 오랜만에 들어갈 뿐이다. 딸 마고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더이상 열심히 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이나 텀블러에 빠져 있고, (페리스코프를 차용해 허위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유캐스트나우를 쓴다.


- 마고의 실종 사건이 공개 수색으로 전환된 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어대는 인터넷 여론과 마고 친구들의 표변한 반응들은, 이 디지털 세상의 즉흥성과 속물성을 꼬집는 장면으로 씁쓸하면서도 짜릿했다.


-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캘리포니아 산 호세다. 스탠포드가 있고 실리콘밸리가 옆에 있는 그 곳 말이다. 주인공 데이빗 킴 가족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설정돼 있다. 데이빗 역의 존 조를 포함해 가족들 모두 한국계 미국인 배우들이다. 아마도 삼성과 LG를 가지고 있고, 초고속 인터넷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쓰며, 대중교통에서도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한국 사람이 디지털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 어울린다 생각했음직 하다. 영화를 쓰고 만든 감독은 (개발자들의 나라) 인도계 미국인이다. 그리고 영화 제작에 돈은, 디지털 환경에서도 잘 나가고 싶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SONY가 댔다. very interesting!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