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5년 정도 타고 다녔더니 어디선가 퀴퀴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특히 공조기를 틀 때 냄새가 심해지는데, 에어컨 필터를 갈아 끼운지 얼마 되지 않은 걸로 봐선 필터 문제는 아닌 듯 했다. 진공청소기로 실내 청소를 해보고, 매트를 꺼내 털고, 햇볕에 말려 봐도 그닥 나아지지 않는다. 환기를 시킨대도, 도심에서야 말이 환기지 사실 매연을 그대로 받아 마시기 십상이다. 차량용 방향제를 달아봤는데 옆 자리의 반려자가 강한 향에 두통을 호소하는 바람에 그만 치워 버렸고, 은은한 라벤더 향이 나는 향낭을 달아 봤지만 이건 냄새를 제거하기는 커녕 향을 내는 데도 별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고육지책'이라 여기고 차량용 공기청정기를 찾아보게 됐다.
일전에 어느 쇼핑몰이 보내온 제품 소개 메일에서 피톤치트를 내뿜는 차량용 공기청정기 제품을 본 기억이 있다. 사실 인간이 만든 전자 기기가 대자연이 주는 영엄한 효과를 그대로 재연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난 믿지 않는 편이다. 그 때 메일을 받아보고 차량용 공기청정기라는 물건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기계로 아무리 좋은 효과를 그럴듯하게 낸다고 해도 자연이 주는 효과를 그대로 거두기란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뭐 지금도 그 생각엔 큰 변화가 없다. 자연만한 것은 없다. 다만, 악취에 시달리다 보니, 숲에서만큼은 아닐지라도 인류가 쌓아온 기술의 발전이 다소간이라도 자연을 흉내 내며 일정 수준의 편리를 보장해주지는 않겠나, 하며 생각의 한 발을 물러서게 됐다. 난 메일의 그 제품을 찾아 보았다.
그 제품은 대쉬보드와 같은 평평한 곳에 올려놓는 물건이었다. 이 경우엔 승용차의 뒷 좌석 뒤에 올려놓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니 RV차량인 내 경우엔 적용되지 않았다. 대쉬보드에 올릴 경우 안전상의 문제점이 걸렸고, 시거잭 라인이 치렁치렁해질 것도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의 제품군 중에는 바로 시거잭에 꽂아 쓰는 물건들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멀티소켓에 다른 시거잭 배선과 함께 다닥다닥 붙어 있게 될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 쪼그만 기계의 성능이 미덥지 않았다. 흉내만 내고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아무리 값이 싸다 한들 낭비와 사치가 될 일이다.
그러다 이 제품을 보게 됐다. 샤프의 IG-BC2K-B라는 제품이다. 일단 세 가지 면에서 첫인상이 좋았다. 첫번 째는 디자인. 텀블러를 연상케 하는 매끈하게 빠진 모양이 일단 보는 맛을 중요하게 여기는 내 눈을 만족시켰다. 두 번째는 컵홀더에 올려놓으면 되는 위치성. 차량 내부에서 거치할 자리를 새로 마련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마치 원래 거기 있었다는 듯 살포시 놓을 수 있게 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마지막 세 번째는 샤프라는 브랜드였다. 샤프가 원래 공기청정기에 유명한 회사였던가? 그런 건 잘 모른다. 하지만 다른 제품들의 제조사들이 대개 '듣보잡'인 경우가 많았고, 샤프라면 그래도 전자기기에서만큼은 일가를 이룬 기업이지 않겠나, 최소한의 이름값은 하지 않겠나, 하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광고에서 살균 이온을 발생시키는 무슨 플라즈마 클러스터 기능을 개발했다고 주장하니, 정말 산림욕을 하는 것과 같은 기적적인 효과를 보여줄 것도 같았다. 뭐 대기업인 만큼, 제품 보증도 잘 해 줄 거 같았고.
그래서 구매했다. 좀 비쌌다. 싸게 구하려고 여기저기 뒤지다가 쿠폰으로 비교적 저렴하게, 10만 원 안 쪽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복지카드가 있었기에 가능한 지름이었다.
구성과 설치법이 복잡하지 않았다. 몸체에 커버가 하나 있는데, 이걸 열면 시거잭을 꽂는 부분이 나온다. 놓는 위치의 상황에 맞게 선을 다소 위로 뽑아낼 수도, 아래 쪽에서 뽑아낼 수도 있다. 지나쳐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 일단 마음에 든다.
앞쪽 시거잭은 3구짜리 멀티소켓을 씀에도 이미 더 꽂을 데가 마땅치 않다. 컵 홀더에 올려놓은 뒤 어답터 선을 콘솔박스 뒤쪽으로 그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뒷 좌석 시거잭에 꽂으니 선도 안 보이고 깔끔하게 설치된다.
별도로 가정용 아답터도 주어지는데, 용처는 간단하다. 집에서도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차량용 어답터를 뽑고 가정용 돼지코 어답터를 끼우면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옮겨가 쓸 수 있다. '원 소스 멀티 유즈'가 된다는 말이다. '차량용 공기청정기'라고 하면 다소 비싸게 느껴지지만, 차에서도 쓰고 필요에 따라선 집에서도 쓰고, 또 사무실 가져가서도 쓸 수 있는 포터블 기기라고 하면 비싼 가격이 아니게 된다. 이 지점에서 샤프가 머리를 좀 썼다.
사용법도 무척 간단하다. 모드 버튼을 한 번 누르면 1단 불이 들어오면서 위에서 시원한 바람이 숑숑 나온다. 모드 버튼을 한 번 더 누르면 2단 불이 들어오면서 시원한 바람이 숑숑숑숑 더 많이 나온다. 몸체 커버 부분으로부터 공기를 들여서 안에서 돌린 뒤 위쪽으로 살균 이온을 뿜어내는 시스템이다.
1단은 기기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할 정도의 소리가 난다. 2단에서는 그 소리가 더 나서 어떤 사람들은 소음 문제를 제기하는 모양인데, 물론 도서실 같은 데에서 쓰기에는 거슬리는 소리겠지만, 사실 소음 축에도 못 낀다. 원체 차량 소음이 심한 RV 차량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정 거슬리면 1단에서만 쓰면 된다. 1단 만으로도 차량의 좁은 공간은 충분히 커버할 것이라 본다.
가장 중요한 효능. 공조기를 틀고 퀴퀴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 뒤 이 물건을 조심스레 작동시켜 보았다. 얼마 안 지나서 정말 거짓말 같이(!) 냄새가 없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오오오, 돈 값 좀 하는데?" 소리가 절로 났다. 하지만 그 때의 그 탈취 효과가 정말 이 자그마한 전자 기계 때문이었던 건지 난 아직 확신이 서질 않는다. 퀴퀴한 냄새가 그냥 스윽 사그라들었을 수도 있고, 내 코가 그 순간 막혀서 둔감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에어컨 필터가 갑자기 제 기능을 잘 발휘했기 때문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과학적으로 진짜 살균이온이 나오는 건지 그래서 그 살균 이온이 정말 퀴퀴한 냄새를 잡아 먹은 건지 어떤 건지 측정할 도리가 없으니, 경험상 효과가 놀라웠다는 말 정도로만 정리하자. 좀 더 긴 시간동안 써 봐야 이 기계의 효능에 대한 신뢰가 싹틀 거 같다.
교체 필터는 따로 없다. 아니, 살균 이온 유니트라는 걸 주기적으로 갈아줘야 하긴 한데, 하루 8시간씩 꾸준히 사용할 때 6년 뒤에 갈아주면 된다고 하니, 사실상 반영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교체 비용이 많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역시 이 기계의 매력적인 점이다.
다만 청소는 주기적으로 해줘야 한다. 당연한 얘기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악취를 제거하는 데 청소 정도의 수고도 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날강도 심뽀다. 모드 버튼이 있는 윗면에 있는 필터 청소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자동 청소가 되고, 더 깨끗이 쓰려면 진공청소기로 몸통 커버 부분에 먼지가 쌓이지 않게 해주면 된다.
calv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