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끽!2025. 10. 22. 23:53

 

16년 전 오아시스 내한공연 때와 비교하면 다른 풍경이 많이 보였다. 우선 맨체스터시티 유니폼이 많이 보였다. 공식 굿즈 셔츠도 하늘색으로 출시해서 오아시스의 대표컬러가 하늘색인 것처럼 돼 버렸는데, 그 때도 물론 갤러거 형제의 맨시티 팬심 때문에 맨시티 셔츠를 입고오거나 맨시티 깃발을 흔드는 애들이 있긴 했지만, 그 때만 해도 맨시티는 고만고만한 중위권 팀이었고 맨유가 인기있던 팀이어서 이렇게까지 쪽수가 많지는 않았다.(내한한 노엘에게 한국 기자가 원수 팀 소속인 줄도 모르고 "두 유 노우 박지성?"을 시전했을 정도였으니, 뭐)

 

그리고 기념사진을 많이들 찍더라. 옛날엔 소셜미디어 뭐 이런 게 없다시피해서 그런 문화가 없었는데, 곳곳에서 인스타용 사진을 예쁘게 찍으며 즐기는 모습들이 좀 낯설게 느껴졌다. 공식 굿즈도 많아졌다. 그 땐 내가 관심이 없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더럽게 못 생긴 티셔츠 한 두어 종류가 다였던 거 같았는데 말이다. 스타디움 공연인 점도 그 때와 다른 점이었다. 입때껏 체육관 공연만 했는데, 5만 5천명이 들어차는 스타디움 공연인데 전석 매진이라니. 그만큼 오아시스의 체급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이고, 그만큼 그들을 갈망했던 사람들이 모이고 쌓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붕 없이 하늘과 함께 볼 수 있는 오아시스의 무대는 감흥이 남달랐다.

 

물론 그 때와 같은 점도 있었는데, 관객의 주축이 젊은이들(!)이었다는 것이다. 그 때도 젊은 열기가 공연장을 가득 메웠고 이번에도 그 점은 변함 없었다. 다만, 이제는 내가 그 젊은이 대열에 끼지 못했다는 점만이 달라졌을 뿐.

 

그렇다. 공연장엔 젊은 친구들이 많았다. 오아시스 활동 기간 동안 그 역사를 함께 했던 내 또래의 관객들은 가끔씩 눈에 띌 정도였다. 내 옆 자리에는 대만에서 이 공연을 보러 한국에 왔다는 20살의 여자아이도 있었다(내가 직접 묻진 않았다. 아저씨가 젊은 여자에게 말을 붙이면 그 자체가 몹쓸짓이다. 그 옆의 어느 여성 관객이 물어보길래 귀동냥해 알게 된 정보) 공연 뒤 나온 기사에서는 관객의 92%가 10~30대라고 했다.

 

이렇게 젊은층 수요가 폭발했으니 티켓팅도, 팝업스토어 예약도, 공식 MD 구매도 치열하고 어려웠을 수밖에. 눈이 침침하고 손이 느린 중년의 아저씨는 날렵한 젊은 경쟁자들과의 '전투'에서 족족 참패할 때마다 궁시렁거릴 수밖에 없게 된다. "아니 왜 오아시스 활동기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애들이 오아시스마저 탐하는 거냐구. 오아시스는 우리 문화라고! 우리꺼란 말이다! 너네는 너네 꺼 즐기면 되잖아!!!" 물론 10대 때 비틀마니아를 참칭했던 나라도, 비틀즈가 재결합해 내한공연을 한다면 한달음에 뛰어갔을 거긴 하다. 새삼 음악의 무한한 생명력에 경외심이 들었다. 갤러거 형제는 이미 음악으로 'live forever'에 이르시었구나...  

 

공연의 셋리스트는 기존의 어떠한 공연하고도 차이가 날만큼 '액기스'만 모아 놓았다. 통상 월드투어를 할 때는 새 앨범 발매의 프로모션을 겸해 진행하기에 신곡 위주의 라인업이 짜이게 되는건데, 앨범을 발매하지 않은 15년만의 재결합을 기념하는 투어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히트곡 메들리가 되었다. 오아시스의 가장 영광스러운 시절인 1집과 2집의 명곡들 중심으로 라인업이 짜여지면서 가장 대중적인 공연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아시스 역사의 서사를 담았다. 4집 이후 오아시스 공연의 오프닝을 도맡았던 Fucking in the Bushes가 흘러나오며 이 공연이 다름아닌 오아시스 공연임을 선포하였고, Hello를 통해 돌아왔음을 선언( it's good to be back )하고, Acquiesce로 재결합의 의미(because we need each other, we believe in one another, and I know we're going to uncover)를 되새겼다. 

 

이어진 Morning Glory, Some Might Say, Bring It On Down, Cigarettes & Alcohol, Fade Away 등은 오아시스 데뷔의 초심을 그린 곡들이다. 가난과 폭력이 지배했던 불우했던 시절을 때로는 저항적으로, 때로는 낙천적으로, 때로는 냉소적으로 그린 노래들이다. 이어 오아시스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Supersonic과 Roll with It이 분위기를 달궜고, 노엘이 리엄의 목도 쉬게 할겸, Talk Tonight, Half the World Away, Little by Little로 뜨거워진 분위기를 식혀주었다.Talk Tonight은 그 노래의 작곡 배경에서 드러나 듯 그룹의 해체 위기에 대한 서사로 읽혔고, 유일하게 후반기 오아시스 앨범에서 차출된 Little by Little도 그러므로 갈등을 극복하고 나아가자는 리엄에 대한 메시지로 해석됐다. 

 

개인적으로 오아시스의 다양한 송가들을 빠짐없이 부를 수 있는 자리여서 좋았다. Stand By Me부터는 떼창의 연속이었다. 특히 예전 공연에서는 잘 불러주지 않았던 Live Forever는 물론이고 표절 시비 이후 아예 라이브를 거부했던 Whatever를 함께 부를 수 있어서 너무나도 흡족했다. 앵콜곡으로 나온 네 곡은 대놓고 떼창 퍼레이드였다. 그 즈음 목이 이미 맛이 갔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The Masterplan, Don't Look Back in Anger, Wonderwall, Champagne Supernova에 이르기까지 5만 5천명의 목소리까지 덧입혀져 오아시스 노래 특유의 장엄함을 더 빛나게 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폭죽이 터지는 순간, 왜인지 이게 꼭 마지막인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이런 유사한 기분을 느꼈었는데, 그게 언제였냐면 재작년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볼 때였다. 갑작스럽게 미완의 결과로 종결됐던 연재 만화, 그리고 25년 넘게 연재 재개를 기대했던 팬들, 그들의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 만든 마치 작별인사와도 같았던 그 애니메이션 말이다. 난 갑작스러운 재결합과 대대적인 월드투어, 그리고 그 때 그 시절의 향수를 잔뜩 불러일으키는 셋리스트가 어딘지 모르게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형님들 입국도 각각 따로 하고, 전에 없이 사이좋은 모습까지 연출하는 게 외려 오아시스답지 않고 농익은 비즈니스 관계처럼 보이기도 하더라. 

 

이토록 예매 경쟁이 치열했던 것도, 공연을 최대한 즐기겠다는 다짐들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표출됐던 것도, 아마도 그런 슬픈 예감들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우리는 오아시스와의 추억을 새기는 최선의 방법을 마주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 여한이 없다. 앞으로 오아시스의 행보가 무엇이 됐든, 따뜻한 시선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이 내게 주었던 긍정의 메시지처럼. Whatever you do, whatever you say, yeah I know it's alright!

Posted by the12th
만끽!2025. 5. 24. 23:58

 

<아노라>에서 션 베이커 감독의 앞선 대표작인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연상하게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실 베이커 감독은 적지 않은 작품 속에서 미국내 소외되고 취약한 계층들의 이야기에 카메라를 깊숙이 들이미는 연출을 일관성 있게 해 왔는데, <아노라>역시 그 작품세계의 연속선상에 있는 영화이고 그래서 그의 전작들에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특히 <플로리다 프로젝트>와는 이란성 쌍둥이처럼 보일만큼 흡사하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10번 가까이 볼 만큼 내겐 '인생영화'의 범주에 들어가는 명작인데, <아노라>의 아노라(혹은 애니)는 마치 무니의 성인 버전을 보는 것 같은 감정을 전해준다. 척박하다 못해 시궁창같은 환경에 빠져 있지만 그런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밝고 명랑하게 삶을 즐기려는 태도,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희망, 그리고 그런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어 단순하고 순박한 성격에서 무니와 아노라는 닮아있다. 

 

아노라는 뉴욕에서 스트리퍼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손님이었던 러시아 재벌 2세 이반을 만나게 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자신에게 홀딱 빠진 이반이 청혼을 하자 어두운 생활을 청산하고 신데렐라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덜컥 결혼식을 올리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이 결혼을 승낙할 리 없는 이반 부모의 힘과 냉혹한 현실 세계를 마주하고 만다. 아노라가 자신이 겨우 안착했다고 믿은 행복을 지키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 되겠다.

 

영화의 내용은 어찌보면 매우 단순하지만, 감독은 마치 한 편의 소동극으로 이야기를 경쾌하게 풀어나간다. 켄 로치에 버금가는 강한 계급주의적 작품 철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션 베이커 감독이 한층 더 기대되는 지점은 바로 이런 디테일한 연출과 위트 때문이다.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매우 무거우면서도 매우 웃기면서도 매우 슬프면서도 매우 따뜻한 여러가지 모순된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션 베이커 영화의 매력 포인트다. 

 

결혼을 취소처리 하려는 이반 부모의 태도는 자신들이 가진 힘을 조금도 절제할 생각이 없다는 듯 천박하고 무자비하다. 사람에 대한 예의와 배려는 애저녁에 쌈싸먹은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돈 아래 있는 사람들을 도구화하고 물질화 하는데, 그 모습은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체제의 잔혹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반면 아노라와 러시아 재벌가가 만든 영화 내 계급 체계 가장 말단에 있는 이고르는 가장 품위있는 인간성을 보인다. 이반의 부모는 마치 천한 아노라가 자신들의 재산을 노리고 이반을 꼬신 것처럼 여기지만, 청혼을 한 것은 이반이었고 아노라가 확인하고자 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오직 그의 진심, 사랑이었다. 일찌감치 육체적인 관계를 '매매'의 대상으로 삼았기에 아노라에게는 자신의 성을 결혼을 목적으로 한 수단으로 삼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그녀가 마지막까지 희구했던 것은 매우 고답적이게도, 자신에 대한 이반의 마음, 그것 하나였다.

 

영화 말미에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긴 뒤 그녀는 불현듯 이고르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그건 그를 사랑하게 돼서가 아니다. 그녀에겐 그에게 고마움을 갚을 방법이 그것 뿐이었기 때문일게다. 그러나 이고르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려는 순간 아노라는 감정이 북받치고 만다. 그녀가 입은 상처는 기실 마음의 상처이고 사랑의 배신이었기 때문에, 채 아물기도 전에 들어오는 이고르의 마음이 외려 상처를 덧냈던 것이었으리라.

 

어떠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늘 웃으며 즐겁고자 했던 무니가 영화의 말미에 울음을 터뜨렸던 것처럼, 아노라도 마지막 순간 꾹꾹 눌러왔던 울음을 터뜨린다. 자신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꿋꿋하고 억척스럽게 버텨왔던 그녀였던 것을 알기에, 그녀가 무너진 그 순간에 관객의 마음도 같이 무너진다. 그녀의 울음을 목도하자마자 영화가 닫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연민과 애틋함과 슬픈 감정이 마구 소용돌이 치며 긴 여운이 남는다. 그녀의 앞으로의 행복한 삶을 빌게 되면서.

 

이고르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바비와 같은 존재다. 험난한 투쟁을 하고 있는 연약한 그녀들이 그래도 숨통을 트일 수 있도록 옆에서 묵묵히 관찰하고 위로해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플로리다 프로젝트> 때도 그랬지만, 이고르는 감독이 관객에게 설정해 준 역할이기도 하다. 이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들이 잘 버티며 살아나갈 수 있도록 멀지 않은 거리에서 애정어린 눈빛으로 지켜보고 응원해 주라고. 너무 쉽게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말고 그 정도 거리에서 그 정도 사람다운 역할만 해도, 그들은 이 풍진 세상에서도 꿋꿋이 잘 참고 이겨내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