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TV+의 런칭작이라던 <더 모닝쇼>를 보았다.
개인화 디바이스 시대를 만들어 가구 시청 기반의 텔레비전 산업에 위기를 몰고 왔던 애플이, 공중파를 위협하는 OTT를 통해, '레거시 미디어의 속살'을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점부터가 내 흥미를 잡아 당겼다. 물론 어쩌면 애플은 애초부터 구닥다리 방송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즐기려 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ㅋ
뉴욕에 소재한 50년 전통의 가상의 방송국, UBA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이야기이다. 시즌 1은 미투운동, 시즌2는 코로나19, 시즌3는 레거시미디어의 위기라는 현실적 소재들을 다루면서 공감을 산다. 시즌제 드라마들이 늘 그러하듯, 완성도는 뒷 시즌으로 넘어갈 수록 떨어진다. 시즌 1만큼은 매우 높은 몰입도를 선사해 준다.
각 에피소드들과 한 시즌을 둘러싼 플롯이 훌륭하다. 단순한 병렬형 전개가 아니라서 몰입해 보지 않으면 행간의 스토리를 놓치고 지나가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피곤한 몰입도를 요구하는 건 아니라서, 적당히 집중해서 보다보면 적절한 시점에 이야기의 종합성을 깨닫게 되는 경험을 준다. 시놉시스 자체는 허술한 면이 많은데, 플롯의 단단함이 영리하게 그것을 보완해 준다.
'더 모닝쇼'는, 방송이라는 게 으레 그러하다는 듯, 구성원들의 공고한 가식과 위선으로 유지되는 UBA의 인기 아침 보도 정보 프로그램이다. 송출되는 화려한 외양과 달리 안으로는 불안과 그늘이 짙게 배어 있다. 표리부동한 기존의 방송 관습을 대표하는 것이 주인공인 알렉스 레비(제니퍼 애니스톤)인데, 그녀의 곁에 우연히도 가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기자 브래들리 잭슨(리즈 위더스푼)이 등장하면서 프로그램은 전례없는 투명성과 정직을 요구받게 된다. 그 과정들에서 일어나는 거센 소용돌이가 이 드라마 시리즈가 보여주는 재미 포인트가 되겠다.
개인적으로는 코리 앨리슨(빌리 크루덥)이라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다. 드라마 초반에 보도국장이었던 그는 브래들리 잭슨의 솔직함을 UBA에 끌고 들어온 사람이다. 그리고 방송국의 고위직임에도 불구하고 권위를 드러내는 대신 진보적이며 페미니스트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흥미로운 캐릭터이다. 일관되게 선함을 유지하지만 그는 끝내 성공하진 못한다. 마치 선한 것이 곧 능력은 아니라는 듯이.
시즌2부터 코리가 사장이 되면서 보도국장 자리에 스텔라 박(그레타 리)이 등장한다. 한국계 인사로 그려지고 실제 배우 역시 한국계다. 콘텐츠에 아시아인으로 한국계를 등장시키는 게 요즘 글로벌 콘텐츠 업계의 유행인가 보다. 한국 문화의 위상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다.
'젊은 여성 동양인 보도국장'의 등장도 그러하지만, 드라마 전반에 PC가 강력하게 영향을 행사한다. 주요 역할을 여성들이 맡고 있고 유색인종의 비율도 높다. 중년 백인 남성들은 나쁘거나 불쌍하게 그려진다. ㅋ 미투, 낙태, 인종차별 등의 사회적 문제가 소재로 등장하고, 동성애도 자연스럽게 묘사된다. 다만 일방적이진 않아서 사회적 이슈들을 다룰 때는 명암을 같이 조망하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PC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겐 불편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제니퍼 애니스톤은 이제 레이첼 그린 시절의 상큼함은 잃어버렸지만, 그 자리에 원숙한 연기력을 채워넣었다. 레이첼에서도 그랬지만 '속물적인 여성 캐릭터'를 너무나도 납득되게 그려낸다. 리즈 위더스푼과 둘의 호흡도 좋다. 재미있게도 두 사람은 <프렌즈>에서 자매로 등장한 적이 있다. 그 때 구성됐던 둘의 화학 작용이 이 드라마에서 마침내 완성된 느낌이다.
알렉스 레비는 야먕과 이기심으로 세속적 성공을 향해 내달려가는 사람이지만, 결정적 순간에 선을 넘지 않는다. 반면 브래들리 잭슨은 에누리 없는 정의와 원칙을 앞세워 성공하게 되지만 스스로 본인이 설정한 엄격한 원칙을 위배하게 된다. 두 사람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려운 캐릭터다. 정치적으로 알렉스는 아마도 보수적일 것이고, 브래들리는 필시 진보적일 것이다. 서로 다른 캐릭터, 서로 다른 입장,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갖고 두 사람은 번번이 갈등하고 부딪치지만, 또한 결정적인 상황에서 손을 잡고 연대한다. 그것은 여성으로서의 연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저널리스트로서의 연대이기도 하다. 판이하게 다른 생각과 가치관에도 불구하고, 언론인으로서 동의하는 지점에서만큼은 굳건히 어깨를 겯고 기꺼이 함께 싸운다. 딴은 서로를 위해, 그리고 실은 저널리즘을 위해서 말이다.
그들처럼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