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끽!2024. 6. 14. 13:38

하도 기사가 많이 뜨길래 호기심에 일본드라마 '아이라브유'를 보고 있다. 일본 TBS 방송물인데, 이런 걸 거의 동시에 합법적으로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결국은 넷플릭스 덕이다. 넷플릭스가 만들어 준 위아더월드.
 
한국인 남주를 내세워 한국의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답습한, 말하자면 '한국식 일본드라마'가 되겠다. (아니, 차라리 일본식 한국드라마라고 해야 하나?? ㅋ) 완벽한 한국인 남주를 구현하기 위해 배우도 한국인을 그냥 데려다 썼다.
 
채종협이 연기한 윤태오는 그간 한국 드라마들에 나오는 남주들의 매력포인트를 다 갖다 때려박아 넣은 종합선물세트같은 캐릭터다. 잘 생겼고 키도 크고 몸도 좋은데, 잘 웃고 친절하고 한 여자만을 사랑하며 그 마음을 표현하는 데 꾸밈이 없다. 연하라서 귀엽지만, 또한 남자다워서 여주를 보호하는 데 몸을 사리지 않는다.
 
드라마는 여자주인공이 상대방의 눈을 보면 그의 마음을 읽는다는 설정으로 '판타지' 장르를 자처하지만, 사실은 윤태오의 존재 자체가 판타지다. 한국의 드라마들이 그동안 곰비임비 쌓아간 이상적인 남성상이 결국 얼마나 현실을 크게 왜곡했는가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ㅋ
 
이렇게 그려놓았으니 일본 여성 시청자들에게 어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중년 한남인 내가 봐도 채종협의 사랑스러움밖에 안 보이더라. 이거 보다가 관심 밖이었던 <무인도의 디바>도 찾아 보게 될 정도다(재미는 없다).
 
현실감 없는 시놉시스이지만, 의외로 디테일한 고증을 잘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본인 유학생으로 나오는 윤태오의 일본어 발음이 정말 딱 유학생 수준으로 설정돼 있다는 것이나, 한국인이 일본 회사에 들어갔을 때 빚어지는 일들의 묘사가 현실감 있게 고증됐다는 이야기들이다. 허무맹랑하지만은 않게 매우 그럼직하게 보이도록, 꼼꼼함이 뒷받침됐다는 뜻이겠다.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의 여주인공이 남주가 하필 한국어로 마음의 소리를 내는 통에 그걸 읽어내지 못한다는 설정인데, 실제 일본 지상파에선 남주의 마음의 소리가 나올 때 자막처리를 안 해줘서 시청자들이 여주의 답답함을 함께 느끼게 해준다고도 한다. 그 바람에 자막버전을 또 찾아보는 n차 시청이 붐이라고도 하고, 또 그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하니 일본드라마를 통해 한류가 이어지는 해괴한 현상이기도 하다.
 
마냥 국뽕에 젖을 일만은 아니다. 한국 드라마의 강점을 배워 자신들의 것으로 흡수해 소화하려는 일본 콘텐츠 업계의 시도로 보여, 우리로선 긴장감도 챙겨야 할 것 같다.
 
드라마 설정의 곳곳에 '친환경'을 배치한 것도 인상적이다. 여주인공은 버려지는 카카오허스크로 초콜릿 등 가공 제품을 만드는 회사의 대표, 남자주인공은 멸종 위기종인 해달을 연구하는 유학생이다. 친환경 비눗방울이라든지 배달음식을 선택할 때 친환경용기를 쓰는지 살펴본다든지 하는 장면들이 자주 나오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친환경 생활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장르로 시청자들을 유인해 공적 가치를 전파하는 영리한 방식은, 특히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다.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