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끽!2024. 6. 14. 13:48

여러 사람들이 극찬을 한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뒤늦게 보았다.
 
 김민기와 동세대가 아니었던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또래들보다 조금 이른 고 1때였다. 고작 한 살 위였지만 상당히 조숙했던 한 학년 선배들로부터 '작은 연못'이라는 노래를 배우면서 부터다. 학생회+동아리 직속 선배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던 그 해 가을 어느 날, 장례식장에서 그 선배들이 모여 나직이 불렀던 '친구'도 기억에 새겨져 있다. 고 3때였던가 서울음반에서 나왓던 그의 앨범 네 장을 한꺼번에 사서 한 장 씩 돌려 가며 거실 전축에 돌렸던 일요일 오후 의 풍경도 기억난다. 내가 사서 들었던 앨범들에 별 관심을 두지 않으셨던 부모님도 '가을편지'나 '늙은 군인의 노래' 같은 노래가 흘러 나올 땐 같이 흥얼거리시던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하지만 학전 이후 김민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 아마도 내가 뮤지컬이나 연극 류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크게 흥행했다는 '지하철 1호선'도 존재를 인지는 했으나 단 한 번도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김민기가 아닌 학전에 대한 나의 기억은 김광석 콘서트로 남아 있다. 1000회 공연을 기념하는 시즌의 공연에 한 번 어렵사리 티켓을 구해 그 좁고 아늑한 소극장에 들어갔었는데, 그 즈음 좋아하는 노래 공연을 곧잘 찾아 다녔지만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좋았던 경험에 감복을 하고, 다음 공연 시즌에도 꼭 와서 들어야지, 라고 다짐을 했었지만 이듬해 겨울 그가 불귀의 객이 되면서 다시금 학전을 찾을 일은 없어지고 말았다
 
 학전과 학전 시절의 김민기에 대한 기억이 그랬으니, 학전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도 내겐 무덤덤한 일이었다. 그저 영원불멸한 것은 없는 법이니 시절이 흘러 효용이 사라진 것들이 하나씩 없어지는 일이야 으레 있는 거 아니냐는 관점으로나 바라보고 있었다.
 
 다큐를 통해 그 생각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내 관심 밖이었던 '학전 시절 김민기'를 정리해 줌으로써 자칫하면 모르고 지나갔을 그 시기 김민기라는 사람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큰 소득이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가 노래를 떠나 노래극으로 이동한 것의 의미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일은 오롯이 그 자신이 개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이고 스포트라이트도 그 자신이 받는 일이지만, 노래극을 만드는 일은 공동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며 그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빛낼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를 사로잡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지만, 그는 거창하지만 막연하고 손에 잡히지 않을 변화보다 오히려 자그마할지언정 실질적이고 구체적이며 그로 인해 궁극적일 변화를 모색하려 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다큐를 통해 만난 김민기는 묘하게 역시 감동적인 다큐로 알게 된 김장하 선생을 떠올리게 했는데, 두 사람 모두 나서지 않고, 묵묵히 뒤에서 사람들을 도우며, 극도로 낮은 자세를 견지하는 모습이 꽤 닮았다. 괜한 겸양이나 위선이 아니라, 실제로 본인이 드러나는 것에 극단적으로 거부감을 가질 정도인 점도 똑같다. 순도 높은 자기객관화가 이루어지면 사람이 저렇게 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현실세계에 성인(聖人)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사람들이지 않을까.
 
 아무래도 방송물이라는 속성 때문에 어떤 부분은 좀 과하게 건너뛴다거나 이야기가 되게끔 끼워맞춘다거나 하는 바람에 정확한 사실관계와 맞지 않는 부분도 더러 있긴 하지만, 모처럼 마음을 울리는 좋은 다큐멘터리였다. 장르를 불문하고 좋은 콘텐츠란 거대한 자본이 들어간다거나 대단한 깨우침을 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남겨주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공장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다큐멘터리를 내놓은 게 언제였나 싶기도 하다. 여러모로 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만드는 수작이었다. 경의를 보낸다.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