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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6.14 다카하타 이사오의 꿈 2
  2. 2024.06.14 고로의 쓸모
  3. 2018.09.18 임무 완료
얄라리얄라2024. 6. 14. 13:52

 

브리파크가 다카하타 이사오를 너무 소홀히 다룬 거 아니냐는 아쉬움을 가지던 차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그의 전시회가 열린다 하여 냉큼 가 보고 왔다.

 

사실 나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도 다카하타 이사오의 작품들을 더 좋아했다. <반딧불의 묘> <헤이세이 너구리 대작전 폼포코> <추억은 방울방울> <이웃집 야마다군> <가구야공주 이야기> 등 그의 연출작은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들처럼 엣지 있는 매력이 있진 않았어도,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 묵직한 여운이 배어 있는 걸작들이다.

 

이번 전시에서 다카하타 이사오가 어린 시절 프랑스 애니메이션 <왕과 새>를 보고 애니메이션이 '사상'을 담을 수 있다는 점에 충격을 받아 애니메이션계에 뛰어들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에는 묵직한 '사상'적 경향이 그러나 결코 과하지 않게 잘 녹아들어 있다. 우리나라 일각에선 일본을 전쟁 피해국으로 그렸다는 반감을 사기도 했던 <반딧불의 묘>도 사실은 지배계급이 벌인 전쟁으로 희생하게 되는 것은 노동자 서민 계급이라는 점을 지적한 작품이고, 친환경주의를 주제로 삼은 것 처럼 보인 <헤이세이 너구리대작전 폼포코>도 실은 좌절하고 만 적군파 혁명을 우화적으로 풀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한참 애니메이션 만드는 것을 진로로 생각할 때 봤던 <추억은 방울방울>에서, 극단적으로 사실적인 묘사에 충격받은 적이 있었다. 자동차 문을 여닫을 때 유리에 비춘 외부 풍경까지 그림으로 묘사한 것을 보며, 아니 뭐 애니메이션인데 이렇게까지 그려넣냐, 하며 질려 했었던 것이다. 스토리 전개에 큰 영향을 주는 장면도 아닌데 영화를 찍듯 묘사한 이 장면에서 혀를 내두르며 여러번 영상을 돌려봤던 기억이 난다.

 

이번 전시에서도 <추억은 방울방울> 파트에서 다카하타 이사오의 완벽주의에 대한 설명이 있다. '추억' 시절과 '현재'의 캐릭터들을 달리 그려넣으며 현대 일본인의 얼굴을 반영하고자 캐릭터 디자인 연구를 했다는 부분도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이 나이 쯤 되니 이제는 그저 경이로움을 넘어 그 과정에서 애니메이터들이 숱하게 갈려나갔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기사 콘도 요시후미가 요절한 것도 그런 이유였겠지.

 

다카하타 이사오를 이야기 하자면 지브리 이전 TV애니메이션 시절도 빼놓을 수 없다. <프란다스의 개><엄마 찾아 삼만리><빨강머리 앤>과 같은 어린 시절 보았던 명작 애니메이션들 말이다. 최근 넷플릭스에 <빨강머리 앤>과 <플란다스의 개>가 새로이 업로드 돼 <빨강머리 앤>을 다시금 보고 있는데, 돈과 시간이 제한된 TV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에서 효율적이면서도 필요한 묘사를 놓치지 않고 해내는 장면 장면들에서 탄복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카하타 이사오는 작품에만 자신의 사회주의적 사상을 담으려 한 게 아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지브리를 만들면서 새로운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던 것도 기존의 작품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던 일방적 주종관계의 부당함을 혁파하고 여러 구성원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공동체적 제작 시스템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전체 제작 구성원들이 스스로 자기 역할 속에서 제작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정보를 공유하고 유기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던 이야기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얼마 전 보았던 김민기 다큐의 잔상 때문이었는지, 다카하타 이사오도 김민기와 비슷한 사람으로 보였다. 사람들의 '선의'와 그것이 모일 때 발생하는 힘을 믿었고, 그를 바탕으로 기존 제작 시스템의 불합리를 혁파한 제작 환경을 구축하였으며, 자기 자신보다는 조합과 같은 그 공동체를 앞세웠던 면이 그래 보였다. 자신의 사상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는 대신, 조용히 자신의 삶에서 구현해 보려고 했달까?

 

그리고 또 한 가지. 두 사람 모두 미디어가 미래 세대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집중했다. 김민기가 아동극에 천착했던 이유는, 다카하타 이사오가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에 뼈를 묻었던 이유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꿈 꾸는 새로운 세상, 더 좋은 세상은 사실은 미래 세대에 의해 비로소 현실화 될 것이므로.

 

전시는 8월 3일까지. 어린 시절 즐겨 보았던 '만화영화'들의 콘티를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추억이 방울 방울(!)해질 것이다. ㅎ

Posted by the12th
얄라리얄라2024. 6. 14. 13:44

 17개월 여의 기다림 끝에, 지브리파크를 다녀 왔다.
 
 지브리파크는 스튜디오지브리의 작품들 속에 들어가 보는 판타지를 제공해 준다. 어트랙션이라곤 회전목마 뿐인데(BGM마저 '인생의 회전목마') 그 조차도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 탈 것들을 체험케 해준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오나시 옆 기차 자리에 앉아 볼 수도 있고, 포르코와 주먹다짐을 해볼 수 있으며, 아리에티처럼 소인이 될 수도 있다. 너구리들의 작전회의에 동참해 볼 수 있고, 포뇨와 물고기 파도를 타 볼 수 있으며, 고양이 버스를 타 볼 수 있는가 하면, 지로가 먹던 시베리아 카스테라를 사 먹어 볼 수도 있다. 유바바의 사무실이나 고양이 탐정사무소도 구경할 수 있다. 하울의 성 안에 들어가 휘저어 돌아다녀볼 수 있고, 키키와 아야의 집을 방문할 수 있으며, '지구옥'에 들러서 발코니 바람을 쐬거나 괘종시계의 실제 퍼포먼스를 볼 수도 있다.
 
 상당수의 공간들이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다. 너무너무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들어놓고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니, 고약한 변태 취향이라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덕분에, 사진을 찍었더라면 어쩌면 쉽게 지나쳤을 것들을 하나하나 꾹꾹 눌러 눈에 담을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소중한 풍경들을 눈에 담으려다 보니 숨어있는 장치들도 발견하게 되고 작은 소품들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건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뭐, 인간의 기억력이 제한적이란 점을 이용해 재방문을 유도하려는 전략일 수도 있겠지만. ㅋ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대신 맘껏 만져볼 수 있다. 각종 소품들을 손대 볼 수 있고 가구의 서랍이며 냉장고 문을 열어볼 수 있다. 그 안에조차 깨알같은 소품들로 채워져 있다. 열어보고 만져보고 건드려보면서 시각적 재미 못지 않은 촉각의 즐거움이 생긴다. 공간의 체험을 제공해준다는 점이 훌륭해 보였다.

 

 
 세앙이는 특히 마법의 공간들에 오래 머물렀다. 너저분하지만 환상적인 하울의 방에서 각종 마법 소품들을 넋을 잃고 봤고, 아야네 집에서도 기괴하고 역겨우면서도 재미있는 것들이 가득한 마녀 작업실에 빠져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마녀의 계곡' 내에서 키키가 일했던 빵집에서부터 시작하는 동선이 마음에 들었다. 빵집 뒷마당으로 나가 계단을 올라가면 키키가 거주하던 방이 나오는데, 그 방을 구경하고 나와 옆 복도로 쭉 걸어 나오면 마법 책만 취급하는 서점이 나오고 그 서점을 나와서 계단을 내려 오면 소피가 살던 동네의 풍광과 함께 소피의 모자 상점이 나타난다. 모자 상점에서는 물론, 작품에 나온 화려한 모자들을 팔기도 한다.
 
 하루에 모든 구역을 돌아볼 것이라던 계획은 애저녁에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물리적 거리가 멀기도 했지만, 공간이며 소품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다 보니 7시간으로는 턱도 없었다.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고. 모노노케 마을은 애초에 제끼기로 했었지만, 지브리파크 개장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꼭 가보겠다고 다짐하게 만들었던 가장 큰 요소인 사츠키와 메이의 집을 보지 못한 것은 너무너무 안타까웠다. (아마도) 지브리파크 측의 의도대로, 재방문을 계획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브리파크는 스튜디오지브리의 후계자로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미야자키 고로의 쓸모를 발견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생각보다도 훨씬 잘 만들어내었다. 다만, 사실상 망작이었던 <게드전기>나 <아야와 마녀> 같이 자신의 연출작은 충실히 반영했으면서, 정작 스튜디오의 양대 축이었던 다카하타 이사오의 주옥같은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진 것 같아 그 점이 못내 아쉬웠다.
Posted by the12th
얄라리얄라2018. 9. 18. 14:11


- 기껏 제일 좋다는 스쿠터 사줬더니, 탈 때마다 바퀴에 불이 안 들어온다고 찡찡.. "알리에서 같은 사이즈의 저렴이 LED 바퀴를 사서 교체해주면 되지 뭐"라고, 처음엔 아주 가볍게 생각했던 거다.


- 그런데, 바퀴를 고정한 볼트가 안 빠진다. 육각렌치로 돌리면 쉽게 풀려야 하는데, 아무리 힘을 줘도 이거 뭐 당최 풀리질 않는다. 그제서야 검색해보니, 마이크로 스쿠터는 안에 본드(!)를 발라놔 바퀴가 잘 안 빠진다는 얘기. 헐. 자전거수리점에서 풀었다는 얘길 보고 집 근처 수리점에 갔지만, 스쿠터를 잘 만져본 적 없는 사장님도 결국 실패. 바퀴 바꾸는 거 구경하겠다고 같이 따라나선 아이는 더욱 시무룩해지고...


- 인터넷 폭풍검색 끝에, 이런 LED 바퀴를 파는 곳에서 "사무실로 가져오면 공임 받고 직접 교체해 준다"는 문구를 발견. 마침 거리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길래, 주말을 이용해 방문을 했다.


- 이전에 이미 마이크로 스쿠터에 애를 먹은 적 있다는 사장님은, 그래도 경험이 있는 분이라 믿음이 갔다. 조금 애를 먹었지만, 드디어 왼쪽 바퀴 하나를 떼는 데 성공! 아, 역시 기술자는 달라. 옆에서 막 입에 발린 칭찬을 하며 이제 문제 없겠지, 얼른 바꿔 달고 집에 가야지, 하던 차였는데...


- 오른쪽 바퀴가 안 빠진다. 심지어 헛돈다. 게다가, 젠장, 육각홈까지 마모가 됐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바퀴를 빼는 건 이제 불가능해진 상황. 안 빠지는 볼트 푸느라 사장님의 손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사장님도 난감해지고, 나도 난감해지고. 아, 그냥 애한테 반쪽 LED 바퀴로 만족하라고 해야 하나..? 했는데.


- "교체 뒤 이 바퀴 더 안 쓰실거죠?" 라고 큰 결심을 한 듯 한 표정으로 사장님이 묻길래, 네, 뭐;; 더 쓸 일은 없겠죠... 했더니 "바퀴를 잘라냅시다" 이런다. 네?? 그리곤 느닷없이 전기톱 장전. 전기톱으로 사정없이 바퀴를 잘라내고는, 바퀴를 단단히 고정하고 있던 볼트마저 무지막지하게 잘라내기 시작. 그런데 이게 쇠잖아. 쉽게 잘릴리 없는 육각 볼트는 정말 오랫동안 버텨주었고, 덕분에 저게 얼른 잘려야 집에 갈텐데..하는 생각 중에 키야, 이놈들 튼튼하게는 만들었네, 뭐 이런 믿음도 아주 잠깐 생기긴 했다. 그렇게 40분 넘는 치열한 사투 끝에, 결국 사장님이 이겼다. 스쿠터 바퀴와 육각 볼트는 수많은 쇳가루를 남긴채 잔혹한 최후를 맞았다.


- 사장님은 사무실에 있는 다른 스쿠터에서 빼온 볼트를 끼워 바퀴 교체를 완성해 주셨다. 이렇게까지 바퀴교체가 어려운 건줄 몰랐으므로, 기왕이면 광폭 바퀴로 바꿔달았다. 또 기왕이면 뒷 바퀴도 LED로 바꾸고. 그렇게 바퀴값+소정의 공임을 드리고 두어시간 만에 힘들게 집에 돌아왔다.


- 그 치열했던 사투의 현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이제 제 스쿠터 바퀴에도 불이 들어온다는 사실에 감격해 당장 시승을 하겠다고 졸라댔다. 즐겨타던 집 밖 트랙에는 비가 오는 상황. 하는 수 없이, 차량 이동이 한가로운 지하3층 주차장으로 내려가 적절히 가드하며 태워줬더니, 신나게 폭주를 한다. 땀까지 뻘뻘 흘려가며 멈출 줄을 모른다. 그러면 된 거다. 임무 완료.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