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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14 MBC 청룡 9
  2. 2011.04.13 박지성의 완성
  3. 2011.04.11 '신바람 야구'의 재림 2
환호2011. 4. 14. 09:30


 8년째 하위권을 맴돌며 '가을'을 잊은 LG트윈스를 응원하는 일은 고역을 동반한다. 사람들은 내 앞에서 야구 얘기를 할 때마다 위로를 하거나 동정을 하거나 또는 그것을 가장해 은근히 염장을 지른다. 그리고 하다하다 막바지에 가서는 왜 그 팀을 응원하냐고 반문하거나, 심지어 더비 라이벌 팀이기까지 한 자기네 팀으로 옮기라고까지 말한다. 이쯤 되면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고 밟히기도 제대로 밟히는 거다. 갖은 모욕과 이죽임, 비아냥을 이겨내야 하지만, 그렇다고 굴할 순 없다. 난 올해 - 가정은 물론 상상조차 해선 안 될 일이지만 - 또다시 가을 야구를 할 수 없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이 팀을 저버릴 생각이 없다. 아예 야구에서 등을 돌리면 모를까.

 왜 LG트윈스냐는 질문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이 팀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MBC청룡. 1982년 프로야구가 처음 출범했을 때, 나는 학교에도 채 들어가지 않은 어린이였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문방구에서 쏟아져 나왔던 프로야구 딱지를 갖고 놀면서 나도 한 팀을 응원하기로 했는데, 그게 MBC청룡이었다. 고민을 할 이유따윈 없었다. 그 때 내게 MBC청룡 이외의 팀에 눈을 줄 이유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이 팀은 유일하게 서울을 연고지로 한 팀이었고, 내 띠와 같은 '용'이 팀의 마스코트였기 때문이었다(76년 용띠인 내 또래 가운데는 그런 이유로 연고와 관계없이 MBC청룡의 팬이 된 친구들이 꽤 된다). 

 MBC청룡은 프로야구 출범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한 팀이었다. 3월 27일 개막전 9회말 이종도의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은 두고두고 거론되는 프로야구 30년사의 명장면이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이 팀은 그 개막전 이후엔 그다지 인상적인 팀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원년 우승은 OB베어스가 차지했고, MBC청룡은 이듬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긴 했지만 해태타이거즈 첫 번째 우승의 들러리에 머무르며 '야구 명가'의 시작을 도왔을 뿐이었다. 지지부진한 경기력과 고만고만한 순위는 응원하는 팬들마저 무기력하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어린이 회원까지 가입하며 열심히 이 팀을 사랑했다. 왜? 우리 고향 팀이고 나의 팀이니까. 팀 성적이 안 좋다고 팀을 옮기는 건 팬이 할 짓이 아니다. 그 때 난 심지어, 5공화국의 나팔수였던 모기업 MBC도 사랑했다. 그런 줄 모르고 사랑한 것이긴 하지만.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던 MBC청룡은 그만 1990년 LG트윈스로 창씨개명을 이룬 뒤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난 자연스럽게 LG트윈스의 팬이 됐다. MBC청룡의 선수단을 그대로 고용승계했기 때문에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무렵 OB베어스가 대전에서 서울로 연고 이전을 했는데, '연고 주의'를 강조하는 축구계 표현으로는 "패륜"과 같은 일이었고, 따라서 난 '상경 이주 팀'이 아닌 '토박이 서울팀'을 계속 응원하기로 했다.

 다행히 LG트윈스는 MBC청룡과 달리 야구도 썩 잘하는 팀이었다. 창단 첫해 MBC청룡이 거두지 못했던 우승을 단박에 거머쥐었고, 그 뒤에도 상위권을 유지했으며 1994년 우승으로 V2까지 달성했다. '자율야구'니 '신바람 야구'니 하는 새로운 개념을 한국 프로야구에 심으며 새 영역을 개척해 나가기도 했다. 늘 변두리에 머물러 있던 MBC청룡 팬들에게, 주목받는 야구팬의 기분이란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90년대 초반은 정말 찬란하고 그래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최근 8년동안의 성적은 실망감을 넘어서 절망감을 안기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MBC청룡도 그랬다. 아니, MBC청룡은 끝내 해주지 못했던 우승의 화려한 추억을 만들어 안겨줬던 팀이 LG트윈스다. 이렇다할 성적도 없었던 MBC청룡을 한결같이 응원하고 사랑했던 팬들에게 LG트윈스의 밑바닥 성적은 감내할 만한 수준이다. 바꿔 말하면, 성적 따위가 우리 팀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게 할 수는 없다. 그게 스포츠 팬의 기본 자세요, 의리이자 도리다. 

calvin.   
Posted by the12th
환호2011. 4. 13. 14:57


 스카이스포츠의 평점 8점은 꼭 '원샷원킬'의 결승골 때문은 아니다.
 중요한 경기에서 중요한 순간에 중요한 골을 넣은 것은
 분명 칭송받을 일이고 그의 수훈을 도드라지게 하는 일이었지만,
 박지성이 그 경기에서 빛난 것은 그 순간만이 아니었다.

 당초 현지 언론의 예상이었던 나니-발렌시아 조합 대신
 박지성이 나니와 함께 선발 출전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당연히 그의 수비 능력에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박지성은 측면에서 애슐리콜의 오버래핑을 적절히 차단해 냈고
 중원에서 상대방을 숨막히게 하는 압박으로 첼시의 정상적인 경기운영을 방해했다.
 
 그건 박지성만이 할 수 있는 플레이였다.
 압박과 봉쇄, 그리하여 반격의 출발점.
 1차전에서 완벽히 수행해 퍼거슨 경의 입에서 극찬을 끌어냈던 그 역할을
 2차전에서는 한층 더 완벽하게 해내고 말았다.
 긱스와 나니, 치차리토의 활발한 공격 전개는
 박지성의 제 몫으로부터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공격의 마침표까지 해 냈다.
 "최고"라는 찬사가 모자란 듯 여겨질만큼,
 그는 이제 완성돼 가고 있다. 

calvin.
Posted by the12th
환호2011. 4. 11. 16:50


 "5016일 만의 1위 복귀"라는 말이 그대로 표현해 주듯,
 그 어느 때보다도 시작이 좋다. 
 만일 올 시즌의 끝이 지난 8년동안의 끝과 마찬가지라고 한다면,
 이번의 '희망 고문'은 역사상 가장 고약한 것이 될 것이다.

 그만큼 시작이 산뜻하다. 7경기 끝낸 현재 5승 2패.
 하위 전력인 한화를 상대로 한 3연전을 쓸어담은 덕이 있지만, 
 우승 전력으로 꼽히는 SK와 두산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력을 펼쳤고
 한국 프로야구의 간판 에이스 김광현과 류현진을 난타로 강판시켰다.  
 화끈한 공격야구와 타선의 응집력만큼은 확실히 합격점을 줄 만 하다. 
 주자가 모이면 점수로 연결하고, 팀배팅에 적시타가 잇따른다.
 선수단에 신뢰와 긍정의 에너지도 넘친다.
 초반 부진하던 선수들이 하나 둘 제 역할을 해주자
 다른 선수들도 뒤따라 제 몫을 해낸다.
 타선의 분위기는 정말 90년대 초반으로 돌아간 것 같다.

 다만 문제는 여전히 마운드다.
 박현준이 '깜짝 에이스'로 급부상했지만,
 아직 구질이 상대 선수들에게 충분히 노출되지 않은
 신인급 선발이라는 점이 아직 그를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속구 외의 장점이 없어 보이는 리즈도 믿음을 주기엔 역부족이다.
 고육지책으로 소방수 역할을 맡은 김광수는 배짱이나 안정감이 모자란다.
 마무리가 믿음을 주지 못하면 아무리 점수를 벌어놓은 들 별무소용이다.
 봉중근이 가세하고 김광삼이 요리해 주면 다소 나아지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밑천이 드러나는 게 다름 아닌 마운드의 건실함이라
 초반의 좋은 성적이 언제 고꾸라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이 큰 문제다.

 그래도 일단은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90년대 초반, 한국 프로야구 판도를 뒤흔들었던 '신바람'을
 다시 불러일으킬 가장 좋은 기회다.
 올해는 달라져야 하고, 달라질 것이고, 실제로 다르다.
 희망과 기대를 더이상 고문으로 되갚지 않고
 LG가 마침내 신바람으로 되돌려주길 힘껏 바라본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