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sabian을 듣기 전에 염두해 두어야 할 한 가지. 처음 들었을 때 별 거 아니라고 해서 서랍에 쑤셔박은 채 두 번 다시 거들떠 보지 않게 되는 일은 피할 것. Kasabian은 첫 인상으로 승부를 거는 밴드가 아니니 말이다.
실은 내가 그랬다. 저 잘난 맛에 좀처럼 남 칭찬을 안 한다는 노엘 갤러거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을 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애써 찾아 들어봤지만, Club Foot를 비롯해 그들의 노래는 그저 그랬다. 아니, 외려 단순한 멜로디 라인의 반복은 들어본지 한 두번만에 그들의 노래를 질리게 만들었다. 에휴, 요즘 세상에 이딴 노래라니.
Kasabian이 내 관심에서 완전히 배제된지 한참 지난 어느날이었다. 느닷없이 입에서 어떤 멜로디가 무한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도무지 멈춰지질 않는 이 독특하고도 중독적인 멜로디를 어디서 들어봤더라, 의아해 하며 기억 속을 한참 동안 헤집어본 끝에 난 그게 Cutt Off의 후렴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 뒤 다시 찾아 들어본 Kasabian은 이전에 평가했던 그 Kasabian과 완전히 별개의 음악이었다. 거기에는 감히 쉽게 헤어날 수 없는 무서운 힘이 실려 있었다. 마치 속담배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 터져나오는 혹독한 기침에 눈물을 찔끔 흘리며 손사래를 쳤다가 이내 담배의 영향권 안에 스며들듯 중독되듯, Kasabian의 노래에도 강한 중독성이 있었다. 난 그 후로 오랫동안 Kasabian에 취해 살아야 했다.
라이센스를 사가는 데가 없어 그랬는지 영국 현지에서 발매된지 한참이 지나서야 우리나라에 들어온 두 번째 앨범 <Empire>도 누가 Kasabian 음악 아니랄까봐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과 똑같은 궤도를 걷는다. 뮤직비디오가 정말 일품인 Shoot the Runner는 영상 덕에 처음부터 홀딱 빠져들게 만들지만 첫번째 싱글 Empire는 매력적이긴 했지만 폭발력이 느껴지진 않았다. 다른 노래들? 단조롭고 특색 없고 절정도 없고 그렇다고 짜릿한 변주도 없고 죄다 시시했다. 첫(!) 느낌만큼은 말이다.
시간은 내가 폄하했던 트랙들의 편이었다. 고만고만했던 노래들은 어느새 무서운 기세로 내 귀를 잠식해 들어갔다. 단조로움이 애초 자신들의 무기였다는 냥 Last Trip, Me Plus One, Aponea, Stuntman, Seek and Destroy, The Doberman과 같은 노래들의 멜로디는 귀를 통해 침투해 와 어느새 뇌를 뒤 흔들어 놓는다. 일렉트로니카가 강화되고 부쩍 세련되어져 그런지 몰라도, 중독성이 데뷔 앨범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
중독성이 날카롭게 선 트랙들 가운데서 돋보이는 트랙은 British Legion이다. Kasabian 노래 답지 않게 맑은 이 노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또한 약한 중독성을 주는 노래다. 독주를 마시다 살짝 약한 과실주를 마시는 기분일텐데, 그 맛이 참 투명하다.
calv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