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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12 [음반] 위안과 치유를 위한 우울 4
  2. 2007.03.10 [만화] 아다치의 승부 2
만끽!2007. 3. 12.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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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할 땐 드러누워 슬픈 노래를 듣는다. 미동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없이 슬픈 노래에 그저 오감을 내맡기는 거다. 그러다 보면 노래가 지닌 묵직한 우울함의 무게가 나의 우울함을 짓눌러 아예 저 밑으로 가라앉히는 것 같다. 동물원의 이별 노래들, 김광석의 애잔한 노래들, 언니네이발관의 고독이 짙게 배인 노래들, 너바나의 울부짖는 소리, 라디오헤드의 침울한 노래들이 그렇다.  

 멋모를 때는 우울함을 이겨보겠답시고 신나는 음악을 귀에 갖다 댄 적이 있었다. 펑크록이나 발랄한 힙합 풍의 노래들 말이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일부러 스스로에게 명랑함을 강요하는 일은 상처를 자극하거나 덧나게 할 뿐이다. 억지로 괜찮다는 주문을 걸수록, 사실은 스스로 괜찮지 않음을 상기하게 되는 꼴이니 말이다.

 우울함의 농도에 따라 슬픈 노래들이 달리 선택된다면, 넬은 가장 짙은 우울함에 꺼내 듣게 되는 노래 중 하나로 꼽힐 것이다. 내가 넬에게 마음을 열었던 것은 다소 늦었던 편이었는데, 내가 이들을 알게 된 때가 서태지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에서 막 오버로 올라왔던 참이었던 까닭도 있었고, 그들을 주목하게 만들었던 'Stay'가 꽤 잘 만들어진 노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상업적으로 너무 매끈한 느낌에 왠지 정을 주고 싶지 않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눈여겨 보게 된 것은 언더 시절의 노래들을 우연히 듣게 되면서부터였다. 리메이크되기 전의 '믿어선 안될 말'이나 '어차피 그런 거'와 같은 노래들은 마음 속 깊은 상처를 감싸주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의 깊은 우울에 휩싸여 있었다.

 넬의 다섯 번 째 앨범 제목이 <Healing Process>인 것은 그래서다. 넬의 노래에는 상처를 치유해주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평상시 들으면 멀쩡한 사람도 덜컥 우울증 환자 만들 것 같은 한없이 아래로 잠겨드는 노래들이지만, 기분이 꿀꿀하거나 슬퍼질 때 들으면 묘하게도 큰 위안이 되어 준다. 마치 "나도 많이 아파"라고 고백하는 듯한 노래들인데, 세상에서 자기 혼자만 가장 아픈 존재라고 생각하며 끝모를 나락으로 빠져들어 가는 사람에게 자신의 아픔과 견주도록 해 버틸 수 있는 작은 힘을 쥐어 주는 셈이다.

 한결같으면서도 매력적인 선율도 선율이지만, 난 넬의 노래 제목과 가사 붙이는 센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노래에 녹여낸 시적인 표현들로 넬은 자신들의 노래를 훨씬 특별하게 만든다. 아픔을 애써 숨기지 않고 드러내되 결코 우중충한 모양새로 내세우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넬은 그렇게 한다. 그들의 언어는 솔직하면서도 충분히 정제돼 있다. 넬이 내뱉는 상처에 설득되고 충분히 공감하게 되는 것에는 세련된 가사가 한 몫을 한다.

 상처를 다른 이의 상처를 딛고 치유한다는 것은 역설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원래 세상살이가 그렇게 버텨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스스로 상처를 극복해 이겨낸다기 보다는, 그래도(!) 내가 가장 불행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처연한 믿음으로 꾸역꾸역 견뎌내게 되는 것이다. 슬픈 노래들이 위안이 되어 주는 것은, '같은 처지에 대한 공감' 때문이라기 보다는 아마도 그런 까닭에서일게다.

calvin.

the best track : 섬
Posted by the12th
만끽!2007. 3. 1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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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됐든 아다치는 '야구'일 수밖에 없다. 세상에나 '권투'라니, 타츠야가 괜한 고집으로 마우스 피스를 끼워 문 것과 뭐가 다르담? 아다치의 선은 치열한 난투의 파이팅까지 표현하기엔, 글쎄 너무 매끄럽지 않은가. 치바 데츠야만큼 되지 못할 바에야, 함부로 종목을 바꾸는 게 아니다.

 물론 아다치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H2>이후 태어날 자기 만화들의 가혹한 운명을. 누구도 <H2>의 잔상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었다. 앞으로 나올 아다치의 만화들, 특히 그것이 야구를 소재로 한 것이라면, 사람들은 거기서 히로의 그림자를, 히데오의 자취를, 히까리의 데자뷰를, 하루까의 향기를 찾으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진 방황이었겠지만, <카츠>를 서둘러 닫은 것은 잘 한 일이었다. 그는 다시 자기 손에 맞는 글러브를 찾아 끼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H2>로 빚어진 독자들의 높은 기대치는 그 작품에 필적할만한 대작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 그토록 정들었던 주인공들의 또다른 분신들을 만나고 싶었던 마음에 다름 아니었다. '아다치의 야구만화'라는 것에는 그래서, 뚜껑을 열기 전부터 우리를 설레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다치 미츠루의 야구 만화 컴백작 <크로스게임>은, 누가 '아다치의 야구 만화' 아니랄까 봐, 여전하다. 하기사, 아다치 작품 치고 '여전'하지 않은 게 어딨었나. 여전한 주인공에 여전한 그림체에 여전한 유머감각에 여전한 연출력까지. <H2>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크로스게임>은 <H2>의 또다른 버전으로 기대되고도 남을만큼, 그래, 여전하다. 

 심지어 예기치 못한 '의외성'조차도 여전하다. 그는 언제나 결정적 순간에 결정적인 인물의 죽음으로 이야기의 물꼬를 확 트이게 만드는 연출력을 뽐내 왔다. <터치>에서 카츠야가 그랬고 <H2>에서 히까리의 어머니가 그랬다. 그들의 죽음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일상에 파장을 던지고, 그들의 관계에 변화를 준다. 독자들에게는 예기치 못한 상황의 변화로 인해 다시금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는 효과를 불러오고 말이다. 우리는 이미 아다치의 전작들에 의해 이 의외성에 학습돼 왔다. '여전한' <크로스게임>에 역시 예의 그 의외성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만화의 의외성은 보다 더 복합적이다. 의외성 안에 또다른 의외성이 숨어 있는 식이다. 그것은 '시점'이다. 여전히 결정적 인물이 결정적인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시기는 앞선 작품들과 달리 예기치 못한 때에 그야말로 느닷없이 찾아온다.

 이 연출은 아다치의 여전함에 길들여져 앞으로의 전개방향을 손쉽게 짐작하던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아예 앞으로 이야기 전개에 목을 매게 만들어 버린다. <H2>에 빠져서 <크로스게임>에서까지도 어떻게 해서든 <H2>의 흔적을 뒤져 내려고 드는 독자들과의 승부는, 사실상 여기서 갈리고 만다.

 그것은 이 만화가 <H2>와 별개의 이야기라는 선언적 승리다. 이야기의 물줄기를 크게 뒤흔드는 죽음의 설정은 <H2>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려는 아다치의 치밀함이 빚은 결과다. 따라서 그것은 사실 <크로스게임>에서의 다소 이른 터닝 포인트라기 보다는, <H2>에서 <크로스게임>으로 넘어가기 위한 전환점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덕분에 이야기는 무척 흥미진진해졌다. 죽음을 맞는 캐릭터와 동화되기에는 이별의 시기가 대단히 일렀음에도, 애틋한 정서가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기까지 했으니 아직 연재 중인 이 만화의 앞으로 여정은 당분간 일정한 탄력을 계속해서 받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야구 글러브만 끼면 비범해지는, 평범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크로스게임>은 이래저래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목 빼고 기대하는 것 외에, 도리가 없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