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땐 드러누워 슬픈 노래를 듣는다. 미동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없이 슬픈 노래에 그저 오감을 내맡기는 거다. 그러다 보면 노래가 지닌 묵직한 우울함의 무게가 나의 우울함을 짓눌러 아예 저 밑으로 가라앉히는 것 같다. 동물원의 이별 노래들, 김광석의 애잔한 노래들, 언니네이발관의 고독이 짙게 배인 노래들, 너바나의 울부짖는 소리, 라디오헤드의 침울한 노래들이 그렇다.
멋모를 때는 우울함을 이겨보겠답시고 신나는 음악을 귀에 갖다 댄 적이 있었다. 펑크록이나 발랄한 힙합 풍의 노래들 말이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일부러 스스로에게 명랑함을 강요하는 일은 상처를 자극하거나 덧나게 할 뿐이다. 억지로 괜찮다는 주문을 걸수록, 사실은 스스로 괜찮지 않음을 상기하게 되는 꼴이니 말이다.
우울함의 농도에 따라 슬픈 노래들이 달리 선택된다면, 넬은 가장 짙은 우울함에 꺼내 듣게 되는 노래 중 하나로 꼽힐 것이다. 내가 넬에게 마음을 열었던 것은 다소 늦었던 편이었는데, 내가 이들을 알게 된 때가 서태지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에서 막 오버로 올라왔던 참이었던 까닭도 있었고, 그들을 주목하게 만들었던 'Stay'가 꽤 잘 만들어진 노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상업적으로 너무 매끈한 느낌에 왠지 정을 주고 싶지 않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눈여겨 보게 된 것은 언더 시절의 노래들을 우연히 듣게 되면서부터였다. 리메이크되기 전의 '믿어선 안될 말'이나 '어차피 그런 거'와 같은 노래들은 마음 속 깊은 상처를 감싸주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의 깊은 우울에 휩싸여 있었다.
넬의 다섯 번 째 앨범 제목이 <Healing Process>인 것은 그래서다. 넬의 노래에는 상처를 치유해주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평상시 들으면 멀쩡한 사람도 덜컥 우울증 환자 만들 것 같은 한없이 아래로 잠겨드는 노래들이지만, 기분이 꿀꿀하거나 슬퍼질 때 들으면 묘하게도 큰 위안이 되어 준다. 마치 "나도 많이 아파"라고 고백하는 듯한 노래들인데, 세상에서 자기 혼자만 가장 아픈 존재라고 생각하며 끝모를 나락으로 빠져들어 가는 사람에게 자신의 아픔과 견주도록 해 버틸 수 있는 작은 힘을 쥐어 주는 셈이다.
한결같으면서도 매력적인 선율도 선율이지만, 난 넬의 노래 제목과 가사 붙이는 센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노래에 녹여낸 시적인 표현들로 넬은 자신들의 노래를 훨씬 특별하게 만든다. 아픔을 애써 숨기지 않고 드러내되 결코 우중충한 모양새로 내세우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넬은 그렇게 한다. 그들의 언어는 솔직하면서도 충분히 정제돼 있다. 넬이 내뱉는 상처에 설득되고 충분히 공감하게 되는 것에는 세련된 가사가 한 몫을 한다.
상처를 다른 이의 상처를 딛고 치유한다는 것은 역설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원래 세상살이가 그렇게 버텨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스스로 상처를 극복해 이겨낸다기 보다는, 그래도(!) 내가 가장 불행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처연한 믿음으로 꾸역꾸역 견뎌내게 되는 것이다. 슬픈 노래들이 위안이 되어 주는 것은, '같은 처지에 대한 공감' 때문이라기 보다는 아마도 그런 까닭에서일게다.
calvin.
the best track :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