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2007. 3. 1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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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램덩크> 1권부터 31권에까지 빠짐없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야기 전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캐릭터가 있다. 김대남과 노구식이다. 이름도 생소하다. 다른 캐릭터들에게조차 별로 불리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두 명은 이른바 '백호군단'의 일원으로, 만화에서는 그저 백호를 골려 먹거나 쪼그만 택트에 엉겨 붙어 타 있거나 혹은 백호의 경기를 관전하는 모양새로 등장할 뿐이다. 리더 격인 양호열과 독특한 외모로 어필하는 이용팔에 이어 그저 '기타 등등'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에 김대남과 노구식에겐 존재감이 없다. 이들이 만화 전권을 통해 가장 나름의 존재감을 드러낸 때는 정대만 패가 농구부에서 행패를 부릴 때 그들에 맞서 싸웠을 때가 사실상 유일하다.  

 주변부에 남겨져 있기로는 이달재나 신호일 같은 북산의 후보선수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들은 그래도 '농구 만화'인 이 만화에서 농구팀 소속원으로 어찌됐든 (벤치에라도) 있어줘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아예 엑스트라에 불과할 정도의 캐릭터라면 또 말을 않는다. 김대남과 노구식은 주요 컷에서 꼬박꼬박 얼굴은 내밀기 때문에 낯은 몹시 익지만 이 만화에서 구체적으로 왜 필요한 녀석들인지 알 수 없다. 주요 캐릭터임에 분명한데도 뭔가 하는 게 없다. 그들은 꼭 그들이 아니어도 될만큼 만화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이들은 있으나 마나 하다.

 하도 자주 펼쳐봐서 이제 웬만한 스토리와 그림정도는 죄다 꿰게 됐기 때문일까? 다시 본 <슬램덩크>에서는 유난스레 노구식과 김대남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된다. 이 녀석들이 이런 표정을 하고 있었구나, 은근히 잘 생긴 얼굴이었네, 알맹이 있는 대사도 종종 하는군, 뭐 이런 생각까지 새삼 하면서.

 어쩌면 그들이 내 처지와 비슷하다고 여기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얄라리얄라2007. 3. 1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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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금니 충치가 더 이상 방치하기 힘들 정도여서, 결국 가기 싫어하는 치과엘 가게 됐다. 어떻게 잘 좀 예쁘게 때워달라고 말했더니, 의사 선생이 이건 사랑니란다. 때우지 말고 그냥 확 뽑아 버려야 한단다.

 사랑니 난 기억도 없는데 사랑니라니라니라니.... 누나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사랑니 날 때마다 고생하는 걸 지켜보고, 끝내 치과에서 생니를 뽑아 볼이 퉁퉁 부은 것을 볼 때마다 아직 사랑니가 나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또 앞으로 나게 될 것에 두려워 했더랬는데, 소리소문도 없이 사랑니가 나버렸다는 거다. 그것도 위아래 네 군데 죄다. 가지런한 모양새로, 마치 지가 어금니인 것처럼 감쪽같이 위장을 하고 말이다. 아유, 앙큼한 것들 같으니.

 “거 참 신기한 일이네... 아니 이게 언제 난 건데요?” 혀끝으로 새삼 재발견한 사랑니들을 훑어가며 질문을 던지자 의사는 어깨를 한번 으쓱 한다. 하기사, 이 주인인 나도 몰랐는데 처음 본 이 양반이 알 턱이 있겠나. 사랑니라면 아직 나지 않은 것까지 잇몸을 째서라도 모조리 뽑고 싶어하는 게 치과 의사들이라지만, 별 소란 없이 우뚝 나서 생니 모양을 하고 있는 이놈들을 어쩌지는 못할테다. “뭐 다 뽑을 필요는 없는거죠?” 부러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묻자, 의사 선생은 아주 나직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고는 “그래도 그냥 두면 썩을 수 있으니까 가급적이면 뽑는 게 좋죠”라며 불끈대는 본능을 숨기지 않는다. 엇... 경계 태세 강화.

 충치가 절반 이상을 파먹어 들어갔다는 왼쪽 아래 사랑니 녀석은 아무래도 뽑는 게 좋겠지만, 이 녀석은 다른 사랑니들과는 달리 어금니 기능을 하고 있기도 하다. 악관절 장애 탓에 위치가 이미 어금니 위치인 까닭이다. 이걸 뽑아버리면, 아무래도 어금니 하나 뽑은 거나 매한가지의 상황일 것인데, 다음에 병원 갈 때 정말 때워줄 수는 없는 거냐고 다시 한 번 물어봐야겠다.

 사랑니가 고통 없이 나 준 것은 분명 고마운 일인데, 뭔가 좀 허전하기도 하다. 남들 대부분이 겪는 사랑니 통증이라는 게 내게는 없는 것이라니 말이다. 대개 사랑에 빠지는 나이에 나는 거라 해서 사랑니라고 부른다고도 하고, 통증이 사랑의 고통과 비견할 만 하다 해서 사랑니라고 부른다고도 하고, 뭐 그래서 사랑니로 아프고 나면 철이 들었다고 한다는데, 그에 따르면 난 아직 사랑다운 사랑도 해 보지 못했다는 말이고 또 아직 철도 채 들지 않았다는 얘기일테니 말이다. 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런 거 같네.

 아프지 않고선 철이 들지 않는다는 얘기. 사랑니로 아팠다면 그걸로 때울 수 있었을 텐데, 내겐 그 과정이 없었으니 철이 들자면 다른 통증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역시나, 좀 더 아파야 하려나? 세상엔 확실히 공짜가 없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