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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7 이웃의 섬나라 - <2> 옛 동경
발자국2009. 12. 7. 20:04

 현대화된 메트로폴리스에도 역사와 전통은 있다. 오래된 도시를 찾는 데 있어 역사와 전통은 그 도시를 말하는 데 있어 놓쳐서는 안될 부분이다. 일본에 가게 됐을 때, 난 빌딩숲보다는 '옛 동경'의 자취를 보고 싶었다. 일본 무협 만화에 나오는 저잣거리 같은 거 말이다. 내가 기대한 전통을 좇자면, 메이지 시대부터 수도 기능을 했던 도쿄보다는, 차라리 교토나 오사카를 가는 게 맞다는 말도 있었지만, 도쿄 역시 오래된 도시다. 고층 빌딩에 내몰리는 흔적이 역력하긴 했지만, 도시의 오래된 기억들을 끄집어 지켜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일본의 어디를 가고 싶냐는 말에 "지브리와 오래된 것"을 보고 싶다고 대답했더니, 반려자는 첫번째 일정을 하라주쿠에 있는 메이지신궁으로 삼았다. 대도시의 것처럼 여겨지지 않는 울창한 숲을 지났더니 세속성을 들어낸 정갈한 신사가 눈에 들어왔다.


 때는 마침 일요일 오후였던 덕분에, 이곳에서 주말마다 볼 수 있다는 전통혼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 풍경같은 우리네 전통혼례보다는 근대화 이후 쯤 돼 보이는 전통혼례의 모습이었다. 하객들이 입고온 다양한 전통의상도 덤으로 구경할 수 있었다.


 신종플루에 대비하려면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아니다. 여기는 자고로 신성한 장소인 까닭이다. 하지만 덕분에 유행병도 예방할 수 있는 것이고 보면, 신성을 들어 위생을 강조하려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세계 어느 곳이든, 어떤 종류의 사찰이든, 절대자를 모신 곳에는 희망과 소원이 넘친다. 풍년을 기원하는 듯한 '농산물 배'와 우리나라 사찰의 기왓장 대신 있는 각종 '소원 나무패'들.


 그리고 주위를 밝혀 어둠을 물러가게 하는 '등'. 경건함이 은근히 스며들게 하는 만큼의, 화려하지 않은 은은한 빛이었다.



 반려자는 도쿄에서 오래된 것을 보기 위해선 아사쿠사를 가야 한다고 했다. 아사쿠사 역에서 조금 걷자 일식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간색 등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진에 등장하곤 하는 카미나리몬. 센소지를 가기 위해 지나가는 '천둥의 문'이란다.


 카미나리몬을 지나 센소지를 가기 위해선 각종 유혹의 관문을 지나야 한다. 양 옆에 도열한 저 수많은 전통 상점들은 각종 이쁜 것들을 진열해 놓고 각종 맛난 것들의 냄새를 피워대며 지나가는 인파의 발걸음을 잡아채느라 분주했다.


 센소지 앞의 복을 부르는 연기. 모두가 화로에 모여, 평소엔 피하기 바빴을 연기를 부러 자신에게 흩뿌려 가며 스스로에게 복을 기원했다. 


 왜인지 이런 사찰에 오면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소망들만 넘쳐 흐르는 것 같아 은근히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서인지 큼지막한 센소지에는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대신 옆에 있는 또다른 신사에서 두손을 모은 노 부부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옛것을 보고 싶다고 했지, 남의 신 모신 사찰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진 않았다. 아, 일본의 신사란 이렇게 생겼구나, 정도만 확인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센소지를 향해 쭉 뻗은 '유혹의 거리'를 나오다 샛길로 빠져 나오자 이런 마음에 쏙 드는 골목들이 나와 주신다. 그렇다. 이런 걸 보고 싶었다. 영화 세트장 같이 생긴 듯, 하지만 그 아우라만큼은 세트장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살아있는 옛 동경의 속살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옛 흔적...이라기 보다는 상업적 목적에서 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인력거도 있었다. 긴 머리 질끈 묶은 여자 인력거꾼도 있었고.


 메이지신궁을 가기 위해 내렸던 하라주쿠역은 192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 보존돼 있다. 역사를 남긴 이런 풍경, 이런 게 좀 더 많았으면 좋았을 뻔 했다. 런던엔 많았는데 말이지.


 오다이바에서 기대치도 않게 발견한 다이바잇초메. 쇼핑몰 건물 안에 1960년대 거리를 재현해놓은 곳이다. 그냥 재현해 놓은 게 아니라, 쇼핑몰 건물인만큼 당연히 정상적인 상행위도 이뤄지고 있다. 살 수도 있고 그냥 구경할 수도 있고 해서 1석2조 같은 느낌이었다. 옛날 과자같은 것들, 옛날 장난감같은 것들 말이다. 심지어 옛날 야바위 같은 뽑기 이벤트도 있어서, 반려자는 옛날 사람처럼 그만 낚여 버렸다.

 내가 기대했던 옛 동경의 풍경이 이런 것에 가까운 것이어서 아주 넋을 놓고 구경을 다니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이 곳이 남아있는 곳이 아니라 만들어진 곳이라는 점, 그리고 열린 곳이 아니라 기껏 쇼핑몰 건물 안에 갇혀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자 더이상 신나지지 않았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