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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9 이웃의 섬나라 - <4> 지브리의 땅 4
발자국2009. 12. 9. 23:09


 내가 만일 일본 여행을 가고 싶었다면, 그것은 분명 애니메이션 때문일 것이다. 내게 일본이라는 나라가 동경의 대상이 된다면, 그건 애니메이션 때문이고 특히나 지브리 애니메이션 덕분이다. 따라서 지브리 미술관은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반려자 역시 나를 배려해 지브리 미술관 행 일정을 통으로 잡아주었다.


사실 엄밀히 말해 가보고 싶기로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는 지브리 스튜디오에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알아봐도 지브리 스튜디오에 대한 관광 정보는 없었다. 오로지 지브리 미술관 얘기 뿐이다. 작업장은 개방하지 않는다 이거지. 꿩대신 닭일지라도 지브리 미술관은 꽤 가볼만 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본에 당도한 이튿날, 그러니까 사실상 제대로 된 첫 도쿄 나들이에서 우리는 전철을 타고 지브리 미술관의 장소로 알려진 미타카로 향했다.


 미타카 역에서 지브리 미술관으로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고양이 버스'와 그 정류장. 노란색에 지브리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는 것만으로도 타고 싶게 만든다. 사실 이 버스는 지브리 미술관의 버스라기보다는, 지브리 미술관을 경유하는 미타카 지역의 마을 버스였는데도 저런 모양새였다. 지브리 미술관이 이 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알 만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노란 버스를 타지 못했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빨간 색의 담백한(?) 그야말로 마을 버스를 타고 갔다)


 밖에서 바라본 지브리 미술관의 모습. 건물 옥상에 라퓨타를 지키던 로봇병이, 마치 지브리 미술관을 지키듯 저렇게 또 멍때리며 쓸쓸히 서 있었다.


 안쪽에 들어가 보면 있는 매표소. 매표원은 토토로다.


 꼬마 아가씨가 구멍에 얼굴을 들이밀며 말을 걸어 보지만, 토토로가 대답할 리 만무하다. 표를 팔리도 만무하다. 이건 매표소가 아니라 그냥 모형이다. 여기선 표를 팔지 않는다.



 지브리 미술관의 뒷편. 고풍스러운 듯 신비로운 이미지가 가득하다. 이런 디테일이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을 호기심에 콩닥이게 만든다. 


 정오, 예약된 입장 시간이다. 지브리 미술관은 철저한 사전 예약제이다. 하루 4차례 시간에 맞춰 입장을 시키는데, 미리 예약을 한 사람만이 입장할 수 있다. 우리는 물론 서울에서 지브리 미술관 입장권을 대행 판매하는 한 여행사를 통해서 바우처를 갖고 간 참이다. 약속된 시간에 들어섰더니 '티켓'이라며 애니메이션 필름을 한 장씩 준다. 이게 그러니까 입장권 겸 기념품이 되겠다.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됐으나, 보여줄 게 없다. 실내에서는 촬영이 엄격히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몰래 찍어볼 욕심이 불끈댔으나, 뭐 꼴불견으로 낙인찍히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고 에 또, 게다가, 가급적이면 사진으로 말고 직접 보시길 권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애초 기대가 너무 컸던 까닭인지 뭐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았다. 난 그래도 각 작품마다의 섹션이 나눠져 있어서 연대별로 꼼꼼히 소개해주는 곳일 줄 알았다. 지브리라면 충분히 기념할 만 한 작품들이 세고도 넘쳤으니까. 그렇지만 그렇다기보다는, 그저 애니메이션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아주 흥미로운 방법으로 제시한 전시관 하나와, 작업실 디오라마같이 꾸며놓은 공간들이 주를 이뤘다. 큼지막하고 푹신한 고양이 버스 인형이 있는 공간도 있었는데, 거기에선 아이들만이 환장을 하고 놀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가장 최신작으로 밀고 있기 때문인지 <벼랑 위의 포뇨>관련 전시물이 좀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마녀택급편>이나 <붉은돼지>의 희귀 자료같은 걸 좀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자그마한 극장도 있어서, 시간마다 무료 애니메이션 상영도 해주었다. 우리가 보았던 건 <이웃의 토토로>의 외전과 같은 이야기였는데, 메이가 새끼 고양이 버스를 친구로 만나 토토로들의 모임에 참석하는 판타지물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만나게 된 메이를 보니 정말 반가웠다. 잘 살고 있었구나, 안도감도 들었고.


 밖으로 나오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썽큰 가든 같은 공간도 여러 재미난 아이템들이 있었다. 빗자루를 타고 키키처럼 날아보려고 했지만, 지구의 중력을 극복할 수 없었던 반려자.


 포로코 롯소가 그려진 카페도 있었는데, 밖에서나 흘끗 보고 들어가지 않았다. 괜히 비쌀 것 같았다. 하지만 내부 인테리어를 마치 호텔 아드리아노의 카페처럼 꾸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았을 것 같다. 나 역시 끌려들어가듯 들어가 봤을지 모를 일이다.


 옥상으로 올라가볼 차례다. 빙글빙글 놀이터 계단처럼 생긴 옥상행 계단을 기꺼워하며 올라가 봤더니 작은 정원이 드러난다. 라퓨타 꼭대기의 그 정원 같이 생긴.


 토토로도 없고, 포르코 롯소도 없고, 키키와 돔보도 없고, 하다못해 마마 유토단도 없으니 이름도 불분명한 로봇병이 인기를 독차지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로봇병과 기념 사진질 중이다.


촌스럽게 그런 짓은 하지 말자며, 관광객을 본분을 망각하고 최대한 사람이 나오지 않을때 한 컷을 남겼다.


 역시 사람이 없는 컷을 남기기 위해 일부러 뒤에서 찍어본 사진인데, 아, 그의 고독함과 쓸쓸함이 백만배는 더뿜어져 나온다.



 저 얼굴에서도 표정이 읽히지지 않으시나? 보라. 웃고 있는 듯, 울고 있는 듯, 지극히 평화로운 저 표정을.

 
 좁은 길을 따라가면 뭔가 또 신기한게 펼쳐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냥 아주 좁은 정원만 있었다.



 마냥 놀 수 있을 줄 알았으나, 더 놀게 없었다. '마마 유토'라고 이름지어진 기념품점에 들어가 고민과 고민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디저트용 컵과 스푼 포크 세트를 사들고 나왔다. 여행 전에 지브리 미술관을 소개했던 어떤 블로거처럼, 나 역시 사보이아 모형을 살까 말까 고민에 고듭을 거듭했지만, 가격의 압박을 이길 수 없었다. 적당한 기념품을 사들고 나오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보자면 지브리의 '공식' 기념품점 치고는 물건도 그닥 다양하지 않았고 그렇게 눈 돌아갈만한 아이템들도 많지 않았다. 이 정도는 코엑스의 애니랜드에도 충분히 있단 말이다. 



 지브리 미술관 바로 옆에는 이노카시라 공원이 있었다. 도심 속 숲과 같은 공원. 인공적으로 조성된 게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공원처럼 보였다. 뭐 '토토로의 숲'으로 명명된 숲도 있다고는 하지만, 지브리 미술관 옆에 이런 곳이 있으니 마치 여기가 토토로가 사는 곳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소풍을 나와 도시락을 까먹고 일광욕을 즐기고 아이들과 공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 속에 여유가 넘치는 눈 부신 풍경이었다.   


 작은 개의 목줄을 잡고 공원을 산책하던 똑똑한 개와, 은폐엄폐를 철저히 한 고양이. 숲이 사람에게만 좋을소냐, 자연 모두에게 좋은 환경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곳, 키치조지에서 만났던 많은 자전거들. 자전거가 다니기 편한 최적의 장소로서도, 이곳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천공의 성 라퓨타><모노노케 히메><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에서 끊임없이 설파했던 지브리의 '환경 주의' 정신이 닿아 있는 곳으로 여겨졌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