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난 여행지로, 대도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더더욱. 도쿄는 화려한 빌딩들이 즐비한 도시였고, 도시 전체가 바쁘게 움직이는 경제 중심지였으며, 사람의 물결이 꾸역꾸역 넘실거리는 메트로폴리스였다. 반려자는 이 도시의 야경이 멋지지 않냐고 물었지만, 하늘의 별빛을 잡아먹는 도시의 불빛은 사실 거기서 거기다. 해서 내게 도쿄는 그닥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어찌됐든 이 섬나라의 유서깊은 수도. 섬나라를 알기에 앞서 이 도시부터 알아야 했다.
주요 거점에 갈 때마다 숨을 턱턱 막아세우는 인파. 아무리 우리가 당도한 날이 일요일이었기로서니, 그리고 그 다음날인 월요일도 일본의 국경일이기로서니, 사람들 정말 많았다. 하지만 일상적인 일인냥 사람들은 아무런 동요 없이 도도한 인간의 물결에 몸을 싣고 제 갈길을 가더라. 뭐 하기사 서울의 명동이나 강남 정도도 휴일에 저렇지 않은가. 단지 난 서울에서도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해 부러 그런 곳을 피해다녔던 것 뿐.
하지만, 도쿄엔 한적하고도 예쁜 이런 길도 있다. 작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해 집도 작고 차도 작고, 심지어 길도 이렇게 (좁다기 보다는) 자그마하다. 그리고 걷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이런 길은 마냥 걸어도 지루하지 않다. 캣스트리트와 키치조지의 길.
이렇게 생긴 도쿄도청. 꼭 마징가Z에 나오는 연구소처럼 생겨먹었다. 이곳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어서 무료로 도쿄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들어갈 때 가방 검사는 필수. 도쿄도청 꼭대기에서 폭탄이 터지면 안 되니깐.
그래도 야경은 도쿄도청의 것보다는 볼만 했다. 애초의 목적이 시정에 있는 도청보다야, 대관람차는 훨씬 전망 좋은 데에 세우게 마련이니깐.
맥주의 본거지는 아사쿠사가 아닌 에비스. 에비스 맥주와 삿포로 맥주 건물이 여기에 있다. 저곳은 맥주 마시기 좋은 가든플레이스.
레인보우 브릿지. '런던아이'를 흉내낸 대관람차처럼, 오다이바에는 이런 게 많다. 흰색을 칠한 금문교처럼 생겼다. 심지어 여기엔 자유의여신상 이미테이션까지 있다. "아니, 왜 일본까지 와서 자유의여신상을, 그것도 겨우 짝퉁을 보냐"는 심뽀로 자유의여신상은 살짝 무시해 주었다.
비너스포트는 쇼핑몰 실내 매장의 천장을 실제 하늘처럼 만든 걸로 유명하다. 시간이 지나 어두워지면 석양도 생기고 그런단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맛난 것과 쇼핑'이었다. 반려자는 오랫동안 벼르며 참아왔던 싸고 질 좋은 화장품, 각종 편의용품들을 드럭스토어에서 사들였다. 만다라케에서 인형을, 지브리미술관에서 캐릭터 생활용품 따위를 사갖고 왔다. 유명하다고 해서 들러본 돈키호테는 너무 싸구려 잡화상처럼 후졌다. 쇼핑의 낙원이라는 긴자에는 가지 않았다. 반려자는 스스로를 알뜰하다고 대견해 했다.
우리가 결혼 1주년을 자축하기 위해 일본을 찾았던 11월 22일은, 마침 '부부의 날'. 여행의 의미가 더해지는 것 같았다.
calv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