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에서 묵었던 곳은 Days Hotel이라는 곳이다. 한국에서 숙소를 정할 때 최우선 고려 사항은, 싼 숙박비도 숙박비였지만, 찾아가기 쉽도록 기차 역과 최대한 가까운 곳이었다. 그렇지만 맨체스터에 도착하던 날 밤 9시 반이 넘어 이 호텔을 찾아야 했을 때, 난 적잖이 애를 먹어야만 했다. 내 방향감각도 무척 둔했지만, 낯선 도시에서 후미진 골목을 뒤져야 나오는 호텔을 찾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골목마다 붉은 조명의 술집과 술 취한 사람들은 어찌나 많던지, 나도 모르게 바짝 긴장을 해야 했었다. 설상가상으로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허리의 통증은 점점 심해져 왔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이 호텔을 찾아냈을 땐 정말이지 호텔 지배인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난 전날 밤 나를 쫄게 만들었던 그 분위기의 원인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게 금요일 밤이었기 때문이었고, 이 곳이 다름 아닌 대학 캠퍼스였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맨체스터 종합대학의 건물들로 둘러싸인 동네였고, Days Hotel 역시 맨체스터 컨퍼런스 센터의 이름을 갖고 주로 학생과 교직원들이 세미나 등을 할 때 사용하는 숙소였던 셈이다. 숙박비가 비교적 저렴했던 까닭 역시 거기서 찾아낼 수 있었다.
내가 맨체스터에서 이틀 밤을 잤던 428호실. 앞서 설명한대로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위해 관리되는 방이어서 그런지 비교적 시설 또한 좋았다. 하릴 없는 밤에는 모처럼 텔레비전도 진득하니 볼 수 있었는데 리버풀로 떠나기 전이었던 토요일 밤에 했던 영화는 공교롭게도 비틀즈가 출연하는 <Help!>였다.
호텔 내부 풍경. 컴퓨터를 쓸 수 있는 방도 있어서 간단한 이메일 확인과 안부 인사를 전하는 일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정도만 가능했다. 너무 느려 터져서 더 이상 하다간 제 명에 못 살겠다 싶었다. 열쇠 키 사용 방법을 잘 몰라 헤매는 내게 친절하게도 방 까지 찾아와 줘 사용법을 설명해주었던 이 호텔 직원은 뚱뚱한 맨체스터 사람이었는데, 내가 맨체스터유나이티드 경기를 보러 맨체스터를 찾았다 말을 하자 슬쩍 맨체스터유나이티드가 지길 바란다는 염장질을 놓기까지 했다. 맨체스터시티 팬이었던 것이다. 떠나는 날 아침, 그를 보고 득의양양하게 부러 "우리가 이겼다!"고 말을 던지고 빠져나왔다.
역시 리버풀의 기차 역에서 가장 가깝고 싼 곳으로 골라 잡은 Lord Nelson Hotel. 맨체스터의 Days Hotel과 달리 역 뒷문으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친절한 호텔이었다. 체크인 시간보다 한참 이른 시간에 호텔에 도착했는데, 체크인 해도 되냐 물었더니 방 번호를 한 번 보고는 가능하다고 한다. 불 나면 도저히 살아서 나올 수 없을 것처럼 복잡하게 생겨먹은 복도를 지나 방을 찾아 들어갔다. 영어로 된 그 복잡한 길 설명을 어찌 알아들었는지 내 자신이 기특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맨체스터에서 묵었던 호텔보다 싸기도 좀 쌌지만, 시설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났다. 텔레비전을 침대 옆에 놓은 센스라니... 게다가 벽에 붙지 않은데다 스프링이 마구 튀는 어정쩡한 침대 역시 가뜩이나 휑한 홀로 여행객의 마음을 더욱 휑하게 만들었다. 이 방의 압권은 '난방'이었는데, 난방기가 한 밤중에 느닷없이 꺼져 새벽 냉기를 온 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던 덕분에 그만 덜컥 영국 여행 기념으로다가 '리버풀 감기'를 얻어 달고 돌아와야 했다. 그 독한 리버풀 감기는 한국에 돌아온 뒤로도 아주 오랫동안 영국 여행을 온 몸으로 추억하게 만들어 주었다.
영국에서 뭘 먹고 살았나도 정리하고 넘어가야겠다.
영국의 전통 음식으로 첫 손에 꼽히는 Fish & Chips. 대구를 튀긴 것에 감자 튀김을 함께 얹은 게 다다. 녹색콩을 곁들이는데, 이게 있어야 느끼함을 씻어낼 수 있다. 생각보다 맛과 든든함이 썩 괜찮았다.
맨체스터의 호텔에서 하루만 조식을 해결하기로 했다. 기왕에 먹는 거 부페로 신청했는데, 8파운드짜리니 '호화' 부페다. 하지만 결국 먹은 건 이런 수준. 하루만 신청하길 잘 했다.
기차 역에서 막간에 출출함을 달랜 커피와 샌드위치. 샌드위치가 태어난 본고장 샌드위치로는 좀 부실한 인스턴트 샌드위치였지만, 맛은 그런대로 좋았다. 슬라이스 햄이 가득한 게 마음에 들었다.
<빌리 엘리엇>을 보기 전에 무엇으로 끼니를 때우나 걱정하고 있을 때, 그 걱정을 단번에 날려준 세계 만국 공동의 식당, 맥도날드. 세계인의 입맛을 획일화 해 주어 그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음식 맛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니, 이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니겠냐? ㅋ
영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먹은 영국의 또다른 '전통 음식' Jacket Potato. 삶은 통감자 위에 각종 양념을 얹어 감자와 함께 으깨거나 버무려 먹는 음식이다. 감자 칩에 통감자에, 영국 애들이 감자를 얼마나 좋아라 하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감자 캐 먹어 온 강원도가 그렇듯, 얘네도 음식 문화란 게 빈약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