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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4 '궁핍'과 범죄 사이 (한국일보)
삽질2009. 9. 24. 16:11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엄정하게 해라." 내 말이. 사실 정운찬을 둘러싼 각양각색의 의혹들은 낙마감이 아니라 수사감이다. 정운찬에 대해 한 마디 쓰려다, 구구절절 내 마음과 같길래 삽질해 온다. 그나저나 천성관은 왜 수사하지 않는거냐?

 서화숙 편집위원은 '미네르바 패러디 칼럼'으로 유명해졌던 그 사람이다. 조곤조곤 옳은 말을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똑부러지게 하는 글의 결이 마음에 든다. 관심가지고 챙겨볼만한 칼럼이 생겼다.

cal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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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쓴 글을 모아 낸 책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박연차씨의 돈을 받아쓴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고 온 권양숙씨가 했다는 말 때문이었다. "(정치인이란) 먹고 살 것도 없는 사람들이 큰 소리만 뻥뻥 쳤지 뭐가 있어요. 돈이 있어요? 힘이 있어요?" 전직 대통령이 받는 연금은 대통령 급여의 95%라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다달이 1,700만원쯤을 받았다. 가구당 평균소득이 330만원인 나라에서 권양숙씨가 설마 스스로 돈이 없다는 표현은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내내 찜찜했다.

 정운찬 총리 후보의 청문회를 보고 있자니 경악할 지경이다. 작년에 미국에 갈 때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이 '궁핍'하게 지내지 말라고 1,000만원을 줬다는 것이다. 작년 정운찬씨의 수입은 서울대 교수와 외부 강의 강연 인세 수입에 어느 회사 고문까지 맡아 4억원이 넘었다.
 
 청문회를 통해 인정한 수입이 그랬다. 그런데 그게 '궁핍'이라니. 이 돈을 처음에 '소액'이라고 표현할만했다. 게다가 그 돈은 뇌물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그는 백 회장과는 "형제처럼 지내는 사이"라고 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했더니 박연차씨에게 돈을 얻어쓴 사람들이 한결같이 한 소리였다.

'형님' 백성학, 박연차와 다른가

 정운찬씨처럼 저자와 외부 강사, 고문으로 잘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서울대 교수 한 가지만 해도 궁핍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작년에 서울대 교수로 받은 연봉은 1억92만430원이었다. 뭐가 아쉬워서 남의 돈을 얻어쓰며 탈세를 할까. 민주당 강운태 의원이 지적한대로 3년간 수입은 9억원인데 지출은 9억4,000만원이면서 저축은 3억2,000만원을 했다면 도대체 3억6,000만원은 어디서 난 것인가. 국가공무원법을 어기고 사기업의 고문을 맡은 것도 돈이 아쉬워서인가. 그렇게까지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다면 남몰래 살 일이지 어쩌다 총리는 하겠다고 나서서 민낯을 드러내는지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할 지경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불법과 탈법으로 얼룩진 인생을 공직자로 기어이 만들겠다는 정부이다. 정운찬씨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번 개각 대상자 가운데 깨끗한 이는 김태영 국방장관 한 사람 뿐이다. 나머지는 위장전입이요, 다운 계약서에 따른 탈세요, 병역면제 의혹으로 성한 사람이 없다.

 이귀남 법무장관 후보자는 심지어 남동생과 처남의 집에 아내 이름으로 매매예약가등기가 걸려 있으니 실질적인 소유주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 공직을 트집잡히고 싶지 않아서 진짜 내용을 숨기고 있다면 문제가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국무위원들 수준을 보고 10년간 끌어올린 공직자의 수준을 단번에 떨어뜨렸다고 썼지만 이번 개각은 그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내렸다.

탈법 총리 장관 안될 일

 그러면서도 이 정부는 말끝마다 법과 질서를 외친다. '형제처럼 지내는' 박연차씨에게 돈을 얻어썼다며 전직 대통령의 가족을 꼼꼼히 수사했다. 그래, 역사는 그렇게 진보한다.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엄정하게 해라. 백성학 회장은 '아우'인 정운찬씨에게만 돈을 건넸는지, 건넨 돈은 1,000만원이 전부인지, 다른 사람에게도 건넸는지 당장 검찰 수사부터 시작하기 바란다.

 미네르바를 구속하고, 박원순씨를 명예훼손으로 걸면서 국민들한테는 법에 보장된 인권조차 보장해주지 않는 정부가 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을 각료로 임명한다면 권력을 쥔 자들은 법 위에 군림하고 시민들은 법 테두리 밖으로 내던져진 공포정치와 다른 게 무엇인가.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흠집내면서 스스로를 차별화하고 싶겠지만 당신들이 대답해야 할 상대는 과거 정부가 아니라 진실하게 살아온 대다수의 국민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로 궁핍해도 범죄로 가지 않는다. 그 사이에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양심없는 공직자들이 양심있는 시민들을 이끌 수 있을까. 임명동의안에 거수기 노릇만 하겠다면 한나라당 역시 대답해야 한다.
서화숙/ 한국일보 편집위원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