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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17 허세욱과 아저씨 (my cahier) 4
삽질2007. 4. 1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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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에 반대해 분신한 허세욱씨의 한강성심병원 앞 임시 분향소 ⓒ 한겨레 이종근


 결국 그는 세상을 떴다.

 일주일 전, 대학로 집회 현장에서였다. 그와 평소 교류해왔다던 서점 주인 아저씨가 연단에 올랐다. 아저씨(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동안 못 봤었는데, 아저씨는 그 사이 별로 늙지도 않았더군)는 그의 쾌유를 빌면서 자기가 써온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 글은 두 사람 사이의 살가운 일화를 통해 허세욱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활동가였는지 설명하고 있었다. 서점 아저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허세욱을 원망하기도 했다. 왜 그렇게, 제 몸에, 불을 지르셨냐고.

 그리고 그 목소리는 결국 노무현 정권을 겨냥했다. 나는 기억한다. 노무현이 '개혁 진영의 희망'으로 불리던 옛날, 그는 우리 학교에 강연을 하러 왔었다. 당시 그는 '현실 지분'이 거의 없는 정치인이었고, 강준만은 그런 그를 띄우기 위해 슬슬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었다. 노무현의 강연이 열리던 대형강의실에는 서점 아저씨도 함께 있었다. 그는 노무현을 소재로 삼은 몇몇 책들을 자기 서점에서 가져와 판매하기도 했다. 그는 노무현을 꽤 열심히 지지했었던 것 같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노무현을 정면으로 겨냥하며 성토하고 있다. 그는 아마도 '정치적 환멸' 같은 걸 느끼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은 지난 5년 동안 수많은 '서점 아저씨'들을 만들어냈다.

 나는 그때, 그러니까 서점 아저씨가 연단에 올라 글을 읽어내려가던 그때, 살짝 눈물이 나오려 했다.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을 봐 감정이입이 더 쉽게 이뤄졌는지도 모르겠고, 아님 아저씨의 낭독에 맞춰 흘러나오던 음악이 구슬펐기 때문일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잠시, 그리고 살짝, 내 직업의 본분을 잊을 뻔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아주 가끔씩 이런저런 '현장'에서 나의 '본분을 잊을 뻔'할 때, 어떤 다행스러움을 느낀다.

groove
(http://www.mycahier.com/bbs/zboard.php?id=my_saying&no=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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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세욱 씨의 죽음은 뉴스에서 조용히 '처리'됐다. 그가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낮에 하는 무슨 프로그램에서인가, 허세욱 씨가 어떤 사람인지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는 혼자 사는 평범한 택시 기사였으며 철거현장에서 철거반원들에게 맞아 끌려나가는 어떤 여성 빈민 운동가의 모습을 보고는 충격을 받아 사회 운동에 눈을 돌리게 됐다고 했다. 이후 그는 줄곧 적극적인 사회 운동에 나섰고, 끝내 타결 직전에 이른 한미 FTA를 자신의 죽음으로라도 막으려 했던 것이라고 프로그램은 전해줬다.
 
 뉴스에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마도 뉴스만을 통해 비쳐진 그는 그저 자기와 직접적인 연관성도 없는 한미FTA에 반대해 자기 몸에 불을 붙인 '과격하고' '이상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전태일의 죽음은 신문에서조차 1단짜리 단신감이었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슨 연유로 자기 몸에 불까지 붙이게 됐는지 알리고 그리하여 그를 "열사"로 칭하도록 한 것은 언론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 때 그 때 벌어진 일들의 사실을 나열하고 기록함으로써 역사를 남긴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정작 중요한 뉴스를 외면하거나 놓치고 지나갈 때가 더 많다. 기록해 남겨져야 할 일들을 쉬이 넘기고, 남겨지지 말아야 할 것들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