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XY L'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03.27 "빨간 딱지"
  2. 2010.05.26 봉하마을에 가다 8
  3. 2010.01.05 그가 있는 2010년
만지작2011. 3. 27. 22:14

 

 내가 처음 손에 쥔 디지털 카메라는 캐논의 IXY500이었다. DSLR이라는 개념 조차 생소하던 시절이다. 카메라를 잘 아는 누군가가 "디카는 캐논과 니콘"이라고 하길래, 두 브랜드의 제품들을 유심히 살폈는데, 이 녀석이 눈에 '쏘옥'하고 들어온거다. 나카타가 모델이었던 광고에서였는데, 정말 폼이 났다. 쓸데없는 장식 없이 반듯하게 각진 심플한 디자인이 특히 너무 좋았다, 남대문 수입상가에서 일본 내수품으로 건졌다.  캐논 특유의 색감도 좋아서, 하늘이나 풍경 사진이 특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주 오랫동안,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도 여행에서 즐겨 추억을 기록하던 친구였다.


 IXY500에 완전히 만족해 하고 있을 때, 이 녀석이 꽂혔다. 캐논 IXY L. 사실 누나가 먼저 샀는데, 카메라 사는 데 따라 나섰다가 나까지 홀딱 반하고 말았다. 특히 앙증맞게 작은 사이즈가 언제나 주머니에 카메라를 넣고 수시로 사진을 찍고자 하는 내 의도에 부합했다. 광학줌이 없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곤 했는데, 덕분에 단렌즈 특유의 선명한 사진을 만들어내 주곤 했다. 아직도 내 수중에 있는 애장품이다.



 카메라에 있어서 난 늘 캐논빠였는데, 캐논을 벗어나게 만든 첫번 째 카메라는 코닥의 EasyShare v705다. 정말이지 획기적인 카메라였다. 렌즈를 두 개 장착해 기존의 똑딱이가 보여줄 수 없는 광각을 표현해 주곤 했다. 그 광각으로 재미있는 사진도 연출할 수 있었고, 3번에 나눠 찍고 나면 알아서 붙여주는 특유의 파노라마 기능도 있어 사진 찍는 재미를 더해줬다. 블루투스도 탑재돼 무선으로 사진을 인쇄한다거나 전송할 수 있었는데, 당시엔 보편화돼 있지 않은 무선 신호다 보니 난 사용해 보질 못했다. 이후 새로운 똑딱이들이 나올 때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수 있었을만큼, 대단히 뛰어난 제품이었고 평생을 함께 하고 싶었던 물건이었지만, 어느날 갑자기 고장이 나 버렸다. 서비스센터에 갔더니 렌즈 고장인 듯 한데, 어느 렌즈 고장인지 몰라 두 개 다 갈아야 하는 통에 무려 수리비가 30만 원이 넘게 나온다는 말에, 수리를 포기하고 안락사 시켜 주었다. 


 IXY500 이후, 디자인 다변화로 그만 캐논다운 디자인이 없다고 여겨질 즈음, 디자인 하나로 혹하게 만들었던 IXY10이다. 캐논 특유의 심플하고 강렬한 디자인이 살아있다. 집에서 가족들이 쓰던 IXY500을 팔아치우고, 돈을 조금 보태 이 놈을 영입해 들였다. 아끼던 v705를 제끼고, 나의 영국 여행을 함께 해줬다. 하지만 내 손에 쥔 것은 얼마 되지 못하는데, 가족들이 쓰던 카메라를 팔고 들인 녀석이라 애초부터 가족들에게 입양될 처지였던 까닭이다. 현재 어머니께서 쓰고 계시지만, 여전히 탐나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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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똑딱이로만 찍어 왔다. 작고 가볍고 사진 찍는 게 간단해서다. 사진을 찍을 때 뭘 복잡하게 생각하는 게 난 싫다. 그냥 괜찮은 구도, 좋은 시선을 담을 수 있겠다 싶을 때 무심코 카메라를 피사체에 대고 '찰칵'하고 찍는 게 내가 생각하는 '사진'이라는 거다. 노출이니 조리개값이니 화이트밸런스니, 이런 걸 고민하고 계산해 가며 찍고 싶지 않다. 그러니 내가 DSLR에 관심이 없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DSLR의 그 부피감은, 연출된 상태가 아닌 일상 생활 속의 찰나를 원하는 내게 너무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똑딱이는 작고 가볍고 찍기가 쉬운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최근 아끼던 카메라들이 하나 둘 내 손을 떠나면서, 그냥 스마트폰 카메라로 대체되고 말았다. 500만 화소에 늘 함께 한다는 편의성 면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도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똑딱이 때에도 느꼈던 바이긴 하지만, 너무 얕은 심도는 늘 아쉬움을 남겼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괜찮은 구도의 '나만의 작품 사진'을 보면서, 조금만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스믈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뿌연 질감을 벗어나 조금만 사진의 퀄리티가 높으면 내 사진도 꽤 괜찮을텐데, 하는 욕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목마름이 있던 차에, 누나가 카메라를 산다기에 관련 정보를 좀 찾다가 그만 꽂히고 말았다. 미러리스 카메라, 이른바 '하이브리드 카메라'에 말이다. 특히 소니의 NEX-5에 홀딱 반하고 말았는데,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원하는 앙증맞도록 '작은 사이즈'가 마음에 쏙 들었다. 저렇게 작은 사이즈로 고품질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다니, 정말 세상 좋아진 거다.

 하지만 누나는 내가 반한 NEX-5는 거들떠도 안 보고 파나소닉의 Lumix GF2를 샀다. 카메라 지름신이 내린 나는 괜히 갈등하기 시작했다. NEX-5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봤다. 그런데 한결같은 평가들이, 렌즈가 좀 별로란다. 아직은 적은 렌즈군에 그나마 있는 렌즈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반면 GF2는 렌즈에 대해 좋은 평가. 누나의 선택은 기능적으로 본다면 탁월했던 셈이다. 다만, 난 그 디자인이 끝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방향을 틀었다. 하이브리드 대신 '하이엔드' 컴팩트 카메라로 말이다. 이미 내가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였지만 가공할만한 가격에 그만 포기했던 카메라가 있었다. 라이카 D-Lux4. 파나소닉의 Lumix LX3와 쌍둥이 카메라인데 디자인과 라이카 딱지 하나로 곱절의 가격 차이가 나는 그 제품. 후속 모델이 나와 값이 떨어지면 노려보려고 했는데,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후속모델인 D-Lux5가 나오자, D-Lux4는 눈 밖에 나고 말았다. 역시 무서운 가격... 하지만 점점 더 심해지는 갈증... 그러다 결국 질렀다. 복지 카드로 단칼에 질러 버렸다.


 아직 매뉴얼을 한 번도 채 완독하지 못할만큼 기능이 꽤 많다. DSLR만큼은 아니겠지만 기능들을 충분히 숙지하고 그에 맞춰 생각하며 써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결국 똑딱이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점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라이카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 가슴을 뛰게 하는 "빨간 딱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사진을 볼 때부터 마음에 품었던 그 브랜드. 연장이 좋은 목수를 만드는 건 당연히 아니겠지만, 최소한 자신감을 부여하지는 않겠나. 나도 대가처럼 찍고 싶다. 나도 대가처럼 찍을 수 있다.
 
 늘 함께 하면서 일상을 기록하고 남길 것이다. 그리고 그 찰나들을 블로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면 좋겠다.

calvin. 
Posted by the12th
발자국2010. 5. 26. 17:26


 봉하마을에 갔다.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 이후 가보고 싶어 벼르고 벼르던 길이었는데, 그의 생전에 가보지 못하고, 그의 사후에도 그만 일을 핑계로 찾아가게 됐다. 취재파일 방송일인 23일은 정확히 그의 서거 1주기이고, 그래서 내가 관련 아이템을 하겠다고 나섰다.



 새벽의 정토원. 작은 암자일 것이라는 생각은 얼추 맞았지만, 생각보다는 주변 환경이 예쁘고 좋았다. 새벽 그림이 안 좋을까봐 걱정을 했는데,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오면서 연등을 달아 다행이었다.


 정토원에서 바라본 봉하마을. 예전에 사저가 마을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묘역이 중심이 된 것만 같다. 우리가 갔던 당시에는 한창 공사 중이라 안에서 참배하지도 못했다.


 새벽 일을 마치고 봉화산을 두루 돌아보았다. 정토원의 선진규 원장께서 자랑해 마지 않던 호미든 관음상. 그 뒤편에 이 상을 세우는 데 힘을 보탠 사람들의 이름들이 쓰여저 있는데, 노 대통령과 그의 형 이름도 볼 수 있다.


 말이 없는 부엉이 바위. 어째 그 묵직함과 한결같음이 그를 닮은 듯도 보인다.


 복원된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 고인의 뜻은 죽어있는 생가가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을만큼의 생가라고 하는데, 곳곳에 관광객들의 접근을 막는 팻말이 있었다. 내부의 물품들이야 대개 이미테이션들인 마당이라면, 고인으 뜻 마냥, 누구나 들어가 보고 앉아보고 누워보고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너무나도 인상적이고 아름다웠던 화포천과 생태연못.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만으로도 물은 스스로 생명력을 확보한다. 정부의 4대강 접근과 정반대의 해법으로 노 대통령은 이 샛강을 살려보겠다고 한 건데, 결과는 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사람은 그저 이 대자연의 품 안에서 양심적으로 농사를 지어 먹고 살면 그 뿐. 그게 또한 봉하마을 생태농업의 정신이라고 한다.

 취재 중 구형 똑딱이로 짬짬이 찍은 거라 사진이 턱없이 모자라다. 언젠가 스스로 참배객이 되어 다시 한번 찾아와 봐야겠다. 봉하마을은 충분히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가 볼만한 곳이었다. 멋진 산이 있고, 아름다운 하천이 있고, 따뜻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바로 그가 잠들어 있는 곳, 그를 만나 볼 수 있는 곳인 까닭이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찰나2010. 1. 5. 23:53

 난 책상 달력 욕심이 좀 있는 편인데, 올해엔 그런 욕심을 부러 내지 않아도 되었다. 연말이 되자 공짜 달력들이 밀려들었던 까닭이다. 디자인을 엄선해서 내 방에 하나, 사무실 책상에 하나 챙겨 놓았는데, 그만 해도 충분했건만 부러 돈을 내고 책상달력을 하나 더 사게 되었다.
 
'노무현 달력'. 그 유혹을 어찌 이길 수 있단 말이냐. 책상 위에 그의 사진을 올려놓고 보고 싶다는 생각보다도, 2009년에 몰(歿)한 그의 존재 의미를 2010년까지 연장하고 싶었다. 2010년에도 그의 의미를 찾아 내 곁에 두고 싶었다. 새해도 그와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지 않고선, 한해 살이가 좀 힘겨울 것만 같이 느껴졌다.


 정겨운 노무현재단 로고. 포장조차 애틋하다.


 노란색 봉인을 뜯으면 그와 함께 할 1년이 나온다.


 "이제 우리가 할게요!" 그런 다짐까지 함께 담아...


 지금의 1월을 함께 하는 대통령 재직 시절의 노무현. 첫장에 있는 그의 처음 약속, 그는 지켰다.


 3월의 노무현. 이 사진을 포함해 다양한 그리운 그의 모습이 매월 담겨 있다.


 5월의 노무현. 그의 마지막 글귀가 남겨져 있고...


 그리고 선명히 새겨진 '그 날'.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날을.


12월의 노무현. 그의 바람, 그것 역시 이뤄졌다.


 난 아직도 그 선거 마지막날 TV 광고 영상을 보면 코끝이 찡해진다. 물론, 그런 광고에서의 듣기좋은 말들은 표를 얻겠다는 목적이 분명한 소리다. 하지만 난 얄팍한 수가 읽히는 그런 광고에서조차, 그처럼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니, 아마 앞으로도 두 번 다시 그런 이는 없을 것이다. 그건 노무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의미가 올해로 머무르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달력 하나에 그의 의미를 담는 것은 형식적인 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에겐 이런 형식도 필요하다. 특히 올해를 반격의 계기를 만드는 한해로 만들자면, 매일 매달 의지를 다져낼 상징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도 노무현 달력은 내 책상 위를 차지한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