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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2009. 12. 24. 21:39


 여행은 떠나는 일이다. 집에서 떠나고 도시를 떠나고 여행지에서 여행지로 떠나고... 그래서 이동하는 과정 역시 여행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사진 속에 유난히 이동 수단이 많이 담긴 것 역시 여행의 그런 성격을 말해준다.



 일본에 도착해 처음 도전해 본 이동 수단, N'EX 다. JR특급 나리타익스프레스로, 나리타공항에서 도쿄 시내로 들어가는 쾌속선이다. 좌석이 배정돼 있어 편도가 무려 3천엔이다. 그러나, 여행객은 이걸 다 낼 필요가 없다. 스이카넥스를 사면 되니깐.


 교통카드인 스이카넥스다. 나리타 공항의 서비스센터에서 해외 여행객들에게만 파는 카드인데, N'EX 편도를 1500엔에 해주고 2000엔짜리 시내 교통카드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총 3500엔인데, 500엔은 보증금이라 돌아갈 때 카드를 반납하면 돌려준다.

 스이카는 우리나라의 T머니카드 같은 개념이다. 지하철과 버스 요금을 처리할 수 있고, 일부 편의점에서도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보통 마지막에 자잘하게 남는 잔돈을 어쩌지 못하고 일본에 흘린채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우리도 마지막에 200엔 정도인가 남아서 난감해 했는데, 편의점에서 초콜릿 같은 주전부리를 사는 것으로 잔액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일본에 단돈 1엔도 흘리고 오고 싶지 않았더라, 이거지. 


 일본 지하철 역사의 안내 표지판에는 친절하게도 한글이 적혀 있다. 친한파 미유키 여사 덕분인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한글의 존재 자체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구석이 있다. 사실 저 정도는 한자만으로도 우리나라 사람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우리나라 지하철 표지판은 일본인들을 배려했던가? 물론 일본인들 역시 한자만으로도 표지판을 식별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한글을 사용하듯이, 우리나라가 히라가나를 역사 표지판에 새겨놓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식민지의 아픈 경험 때문이다. 정서적 반발이 만만치 않을테고, 그게 불보듯 뻔한 마당에 히라가나를 쓰자고 덤벼들 정책 입안자들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한글 표지판을 보면 뿌듯하고 자랑스러울 일일까? 우리나라의 국력이 이만큼이나 된 것같아 기쁘고 마냥 즐거울까? 우리나라 지하철 역사에는 발붙이지 못하는 히라가나에 비해 한글이 버젓이 자리잡은 현실에 만족스러운 것이냐? 정작 이기고 있는 건 일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 관광객 유치에 더 적극적이니까. 한국 사람들을 위한 편의 시설은 한국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 돈을 남기고 떠날 것이다. 우리나라에 일본인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더 있다면, 마찬가지로 일본인들도 더 많이 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덕분에 자존심은 좀 지킬 수 있는지 모른다. 



 전철은 가장 도시다운 교통수단이다. 그래서 도시의 복잡함이 배어있다. 서울의 전철도 그렇고, 워싱턴DC의 전철도 그렇고, 가장 오래됐다는 런던의 전철도 그렇다. 도쿄의 전철도 그렇다. 하지만, 아마도 도쿄의 전철만큼 복잡한 전철은 없을 것이다. 노선마다 운영하는 회사가 달라 환승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여러개의 노선이 역에서 열차를 갈아타려면 역사를 나와서 다른 역사를 찾아 가 또다시 요금을 내고 타야 한다. 새삼 우리의 지하철 시스템이, 더욱이 버스와 함께 환승할 수 있기까지 한 서울의 교통 시스템에 안심이 됐다. MB 만세.




 도쿄엔 이런게 더러 있었다. 스카이 워크. 무빙워크인데, 굳이 '스카이'를 붙인 건 고가 무빙 워크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전철 역사를 어떤 번화가 앞에 짓지 않고 좀 떨어져 있다 보니, 사람들이 즐겨 찾는 번화가까지 가게 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던 거다. 스카이워크 아래를 보니, 세상에나 고속도로가 가로질러 있었다. 공중을 그냥 휙 가로질러가는 길이다.

 

 오다이바를 가게 되면 타야 하는 수상버스. 은하철도 999의 캐릭터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배라고 하는데, 뭐 그냥 배였다. 그냥 평범한 유람선으로 보이지 않게 했을 뿐, 그냥 배였다.



도쿄에서 머물렀던 신주쿠워싱턴호텔. 싸고 신주쿠역과 가까운 곳을 골라잡았는데, 정말(!) 작았다. 캐리어가방을 둘 데가 마땅치 않았을만큼, 침대와 데스크와 화장실이 전부였던 콤팩트 사이즈의 호텔이었다. 특히 화장실... 무슨 비행기 기내 화장실인 줄 알았다. 컨테이너를 짜서 넣어놨더구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작고 실용적인 걸 강조하는 일본인들의 정신이 깃든 것 같았다. 저 건물의 촘촘한 창문들을 보라. 벌집이 따로 없다.




 도쿄에서 하코네로 우리를 실어나른 로망스열차. 온천지대이다 보니, 할머니들이 오니기리를 싸 와서 온갖 수다를 다 떠시더라.


 하코네유모토 역에 내리면 등산 열차로 갈아타야 한다. 하코네 프리패스를 사면 하코네 지역의 모든 탈 것은 해결된다. 등산열차를 타고 구불 구불 올라가 고라역에서 내린다.


 이게 고라에서 타게 되는 케이블카. 남산의 케이블카를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런건 또 따로 있다. 단선이고 유일하게 한 곳에서만 교차할 수가 있다. 정확히 정해진 시간에 역에서 타야 한다. 단선이다 보니 양쪽으로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잘못 내리면, 건널목이 없다. 다음 케이블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이 열리면 차를 가로질러 이동해야 한다. 

 우리가 묵어야 할 료칸은 나카고라역에 있었는데, 안내서에 왼쪽으로 내리라고 그래서 내렸다가 낭패를 봤다. 왼쪽이 아니다. 오른쪽으로 내려야 한다. 다음 열차가 왔을 때 잽싸게(!) 오른쪽 방면으로 옮겨가서야 료칸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케이블카라고 부르는 이것은, 로프웨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조운산역에 내리면 이런 로프웨이를 탈 수 있다. 이걸 타면 산 자락을 듬성듬성 건너 뛰어 원하는 오와쿠다니 같은 행선지로 갈 수 있다.



 로프웨이를 타고 마지막에 당도하려 한 곳은 아시노코. 거기서 범선을 탈 계획이었지만, 간발의 차로 마지막 배를 놓치고 말았다. 저기 멀리 보이는 게 마지막 배.... 다시 버스를 타고 료칸을 찾아갔다.



 급격한 경사의 케이블카 역. 그렇다. 여긴 산악지대인 것이다.



 다음 날 케이블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길. 풍경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5일만에 다시 찾은 나리타 공항. 여행을 떠났던 우리는, 그렇게 일본을 떠났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