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2007. 12. 15.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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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버트 독을 나와 리버풀을 좀 더 돌아보기로 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유명한 리버풀 대성당을 볼 수 있었지만, 너무 이른 아침 찾아가 문이 꽁꽁 닫혔던 Mathew Street를 다시 돌아보기 위해선 리버풀 대성당을 포기해야 했다. 해서, 가는 길에 그저 이곳 저곳 다른 길에 들어가 보는 것으로 리버풀 '시내 관광'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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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버풀의 미술관은 런던 다음이라고 하는데, 그걸 글쎄 이 때는 몰랐다. 알았으면 미술관에 시간을 할애했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일정은 워낙 빠듯했고, 내게 리버풀은 '비틀즈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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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일찍 나선 리버풀 거리. 지도 한 장 들고 무작정 길을 떠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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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버트 독에 가는 길에 만났던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 동상 머리 위에 앉은 것은 익숙히 보아오던 비둘기가 아니라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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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버풀의 횡단보도. 모두 이런 것은 아니었지만, 특이하게도 신호등이 바라보는 맞은 편에 있는 게 아니라 옆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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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쁘장한 빨간 우체통. 그리운 사람에게 엽서도 한 장 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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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건물들이 일단 먹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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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버트 독에서 빠져나오던 오후 12시 반 무렵. 분주한 도시에서 발견한 리버풀 시청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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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이런 골목 골목이 너무 반갑다. 더 싸돌아 다녀보고도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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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버풀의 곳곳. 그리고 다시 도시 한 가운데에서 만난 생뚱맞은 놀이 기구. 런던과 맨체스터에는 대관람차가 있더니, 여기엔 아무런 주변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느닷없이 회전 목마가 있었다. 타는 사람 하나 없이 헛 바퀴 돌고 있었던 것은, 이 놀이기구의 느닷없는 자리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이때가 하필이면 월요일이고 대낮이었기 때문이었을게다. 분명, 그럴게다.
 
calvin.
Posted by the12th
발자국2007. 12. 8.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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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로 이뤄진 the Beatles는 리버풀에서 시작됐다. 링고 스타를 제외한 세 멤버의 고향이 리버풀이었고, 역시 링고스타가 영입돼 들어오기 전 이들이 the Beatles의 이름으로 공연을 시작한 곳도 리버풀이었다. 영국 북서부의 한 항구 도시에서 미약하게 시작한 이 작은 밴드는, 이후 노래 하나로 세대와 국경을 허무는 세계 최고의 밴드이자 전설로 성대히 남게됐다. 리버풀은 그래서 비틀즈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 신화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둘러보기 위해서라도 리버풀은 반드시 찾아가 봐야 하는 곳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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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버풀 Lime Street Station에서 나와 처음 본 이 비틀즈의 사진으로 도배가 된 버스의 모습은, 내가 비로소 다름 아닌 '비틀즈의 고향'에 왔음을 실감케 해주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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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버풀에는 비틀즈의 역사가 시작된 흔적들이 여럿 있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나왔다는 학교도 물론이고, 존 레논이 어릴 적 살았다는 미미 이모네 집도 그럴테고, 그들 노래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Penny Lane도 성지로서 손색이 없겠지만, 순례해야 할 성지를 딱 한 군데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여기 Mathew Street다. 그들이 비틀즈의 이름으로 공연을 시작했고, 처음으로 유명세를 타게 됐으며, 그 덕에 그들을 지역 밴드에서 전국구 밴드의 스타덤에 올렸던 매니저 존 엡스타인을 처음 만난 곳이 바로 이 '좁은 골목'에 있는 the Cavern Club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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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에 들어서자 보이는 반가운 존 레논의 동상. 마치 리버풀에 살던 그 시절 자주 오가던 그 골목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듯 벽에 기대 서 있는 모습이다. Cavern Club에서 연주를 하며 명멸했던 수많은 밴드와 뮤지션들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는 벽돌로 된 곳은 Cavern Pub. 입구에 Caver Club에 대한 설명을 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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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골목 맞은 편에, Cavern Club의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곳이 또 있다. "존에게"라는 제목으로 In My Life 가사를 새겨놓아 향수를 자극하는 쇠판을 품고 말이다. 그럼 여기가 역사적인 현장, Cavern Club이었던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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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두 곳 다 '오리지날'은 아니다. 비틀즈를 배출했던 오리지날 Cavern Club은, 사실 비틀즈가 유명해진 이후 문을 닫고 없어져 버렸다. 지금은 그저 당시 리버풀 청년들이 줄지어 입장했던 입구의 자리만 남아 있을 뿐이다. 사진으로 비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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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 세계 록의 역사를 바꾸었던 기념비적인 현장이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사라진 셈이었다.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지금 있는 Cavern Pub과 Cavern Club은 그나마 원래의 Cavern Club을 일부 복원한 형태로 운영 중인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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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thew Street를 벗어나자 보이는 동상과 Eleanor Rigby 현판. 리버풀 곳곳에서 비틀즈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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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틀즈를 알려면 이 곳을 가라 했다. Albert Dock에 있는 비틀즈스토리이다. 9.99파운드의 비싼 돈을 내면, 비틀즈의 역사적 물건들로 꾸며놓은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 각 코너마다 영어로(!) 친절히 설명해주는 헤드셋이 있어 짧은 리스닝 실력으로나마 비틀즈의 역사를 훑는데 도움이 되었다. 촬영이 금지돼 남겨오지 못한 점이 아쉽긴 한데, 사라진 Cavern Club을 그대로 재연해 놓은 공간과 마지막 존 레논의 방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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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관람을 다 하고 나오면, 비틀즈의 감흥에 젖은 상태에서 '시의적절하게' 마주하게 되는 기념품 상점. 예전에 한참 비틀즈에 빠져 있을 때에는 이 곳에서 비틀즈 피규어를 하나 꼭 사고 싶었었는데, 비싸기도 비싸거니와, 이제는 왠지 죄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기념품에 손이 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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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틀즈 스토리에서 벗어나 다시 찾은 Mathew Street.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아직 열지 않았던 the Beatles Shop이 문을 열어 들어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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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지만 여기에도 비틀즈의 흔적이 녹아 있는 물건들이 많아 유료 박물관 못지않은 정취가 흘렀다. 비틀즈 스토리와 달리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오랜 기간동안 운영되면서 쌓인 듯 한 비틀즈 관련 기념품들이 많았던 점과 사람들의 다녀간 자취가 느껴져 좋았다. 자칫하면 종일 여기 눌러 앉아 집에 가지 못할지도 모를 일. 엽서와 존 레논의 동그란 안경 이미테이션을 사들고, 서둘러 1960년에서 2007년으로 빠져 나왔다.

calvin.
Posted by the12th
발자국2007. 12. 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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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리버풀은 영국을 대표하는 항구도시로 이름을 날렸더랬다. 그러다 1960년대에는 the Beatles 덕분에 일약 브릿팝의 고향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세계적인 축구 클럽을 가진 도시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 도시에는 붉은 색의 리버풀 FC와 에버튼 FC가 더비를 이루며 존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리버풀 FC인데,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전통 라이벌이자 EPL의 빅4 가운데 한 팀으로 손꼽이기 때문이다. 난 이 팀을 마이클 오웬이 뛸 무렵 응원하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로 응원 팀을 옮겼는데, 최근엔 'el nino', 페르난도 토레스 때문에 다시 호감이 들기 시작하는 팀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극성스럽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서포터즈인 the Kop의 존재때문에라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클럽이다. 리버풀에 도착한 일요일에는 마침 아스널과의 경기가 있는 날. 아침 리버풀에 도착하자 마자 리버풀 FC의 홈구장 앤필드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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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이 있긴 하지만 리버풀 지하철은 런던의 것처럼 노선의 망이 촘촘하지 못하다. 여행객들에게는 심지어 불친절하기까지 하다. 리버풀은 맨체스터에 있는 전차가 다니지 않는다. 이 곳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은 따라서 버스일 수밖에 없는데, 사전에 준비를 잘 해간 덕분에 앤필드까지 가는 버스를 잘 찾아 탈 수 있었다. 버스를 타자 이 버스가 앤필드에 향하는 버스임을 확인시켜 준, 리버풀 FC 홈 저지 레플리카를 입고 있는 부자 응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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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버풀 Lime Street Station 부근에서 버스로 20여 분 달리면 Anfield라는 곳이 나온다. 이 곳에 앤필드 구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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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자 좁은 왕복 2차로 도로 옆에 바로 경기장이 서 있었다. 경기장 옆과 뒤쪽은 죄다 주택가였고. "이게 다야?" 소리가 절로 날만큼, 앤필드는 자그마했다. 올드 트래포드와 너무 비교가 됐다. 그냥 동네 경기장 같은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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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드 트래포드를 지키는 게 맷 버스비라면, 앤필드를 지키는 건 빌 샹클리이다. 맷 버스비처럼 빌 샹클리 역시 리버풀 FC의 전성기를 이끈 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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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켓 오피스도 규모가 달랐다. 올드 트래포드에는 별도의 건물이었는데, 여긴 무슨 멀티플렉스 박스 오피스같이 생겨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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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버풀 FC의 클럽 스토어. 메가스토어보다 약간 작다 싶었는데, 기념품의 종류는 더 다양하고 아기자기하다. 무엇보다도 스폰서사인 아디다스의 디자인이 훌륭하다. 가장 응원하는 팀이 아님에도, 도리어 리버풀의 기념품을 그만 덥썩 사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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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장 주변 풍경. 도무지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 가운데 한 곳의 홈구장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규모와 적막감이었다. 뭐 이런 촌구석에 이런 경기장이 다 있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뉴 앤필드를 짓고 있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앤필드의 규모가 이 정도이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맨유:미들스브로 경기를 진작에 예매한 것과 달리 난 이 날 리버풀 경기를 예매하지 못했다. 한국의 구매 대행 사이트는 이날 경기가 아스날과 하는 빅매치라는 점을 들어 한 경기에 40만원을 불렀다. 아무리 빅 매치여도 한 경기에 들이는 돈으로는 너무 과하다 싶어 포기하고, 혹시라도 암표를 구할 수 있으면 구해볼 참이었다. 경기 시작 한참 전에 주변을 배회하고 있자니 그렇잖아도 주머니에 손꽂은 아저씨들이 "you need a ticket?"하며 다가온다. 100파운드 쯤이면 흥정을 해볼 셈.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당연하다는 듯 200파운드를 부른다. 암표 구할 생각을 바로 접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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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켓이 없다고 앤필드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야 있나. 처음의 계획은 암표를 저렴하게 구해보고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the Kop과 함께 펍에서 맥주를 마시며 경기를 보는 것. 앤필드 주변의 펍 지도까지 준비해 갔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구장 앞에 널린 게 펍이었기 때문이다. 정오 오픈 시간에 맞춰 줄 지어 기다리다 펍에 들어가는 사람들. 난 앤필드 바로 맞은 편에 있는 펍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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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들은대로 구석구석에 자그마한 TV 수상기가 있었다. 최근 텔레비전 브라운관 기술의 발전을 외면할 수 없었는지, 두 대의 대형 평면 LCD TV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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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 이 날 서머타임이 해제돼 경기 시작 시간은 오후 5시. 펍에 들어간 시간이 오후 1시 무렵이었는데 이미 펍은 초만원이었다. 정신없는 바에 가 2.5파운드짜리 생맥주를 들고 어정쩡한 곳에 기대어 앉았다. 다들 축구 시작 전 맥주를 연료 삼아 부어주며 경기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아자씨들은 물론, 아줌마들도, 동네 대머리 할아버지도, 백발의 동네 할머니도 기냥 죄다 빨간 색 리버풀 홈 저지를 입고 나와 맥주를 마셔대고 있었다. 말하자면 축구를 하는 날은, 자연스럽게 마을 잔치가 벌어지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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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저쪽 구석 한 쪽에서 일군의 아자씨들이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낮술이 과하셨나? 했더니, 리버풀 FC의 응원가를 부르며 '전의'를 불태우는 것이다. 경기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자 온 펍이 모두 노래소리로 가득찬다. 팀 응원 노래와 각 선수들의 이름을 붙인 응원가들을 선창하면 모두가 노래를 불렀다. 박수를 치고 구호를 외쳤다. 아 글쎄 경기가 아직 몇 시간이나 남았는데 말이다. 이러다 경기 전에 진이 다 빠지는 거 아니냐고 우려가 들만큼 참으로 열정적으로 응원을 해댔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영국의 계급사회가 유지되는 데에는 축구도 한 몫을 한다고. 노동자들이 일 주일동안 일을 하느라 쌓였던 스트레스를 주말 축구 경기 하나에 모두 풀어버리는 것이다. 결국 불만을 해소하는 창구로 축구가 이용된다는 얘기였다. 뭐 꼭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솔직히 우리나라같이 불야성을 이루는 유흥 문화가 발달해 있지 않고서야, 일 주일에 한 번 축구를 핑계삼아 놀아보고 스트레스 풀어버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겠지 싶었다.

 그렇지만, 수염이 덕지덕지 나고 배가 불룩 나온 아자씨들이 축구 유니폼을 입고 기존 노래에 선수 이름을 중심으로 개사한 노래를 땀을 뚝뚝 흘리도록 불러대며 결연한 표정을 지어대는 거, 이방인으로서 재미는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름다운 풍경은 절대 아니었다.

 저 유명한 'You'll never walk alone'을 합창하는 the Kop. 대략 펍 분위기가 이런 분위기였다. 잘 들어보시라. "유 윌 네버 워크 얼론"이 아니라 "알론"이다. "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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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주를 살 때만 바에 가면 된다. 마시고 난 술병이나 파인트 잔은 그냥 아무데나 두면 된다. 아르바이트생처럼 보이는 앳된 소년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니며 병과 잔들을 수거해 가니 말이다. 내가 붙인 이 소년의 이름은 '리버풀 쌀자루 소년'인데, 내가 있는 쪽 테이블에 와 주인 몰래 살짝 살짝 앉아 쉬었다 가기도 했다. 한쪽 구석에는 병 깨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심지어 저 파인트 잔도 잔 값보다 인건비가 더 들어가 그냥 병처럼 다뤄진다고 한다.

 열심히 일 하는 리버풀 쌀자루 소년과, 테이블에 널브러진 잔 앞에 좌절하는 리버풀 쌀자루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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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시작 시간이 되어 가자, 응원가를 주도하던 일군의 아자씨들을 비롯해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빠져나갔다. 그들은 경기 티켓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제서야 펍에는 숨통 트일만큼의 공간이 생겼다. 남은 사람들은 티켓이 없는 사람들. 단촐하지만 경기장 안 못지 않은 팽팽한 긴장의 분위기 속에서 경기가 펼쳐졌다.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1:1 무승부. 제라드의 프리킥 골 때는 정말이지 떠나갈듯한 환호성으로 가득찼었고, 파브레가스의 종료 직전 극적인 역전골 때는 탄식이 땅 깊이 파고 들었다.
 
 중간에 카메라가 1주일 뒤의 아스날 전을 준비하기 위해 구장을 찾은 퍼거슨 감독을 비춘 적이 있었는데, 맨유와 라이벌임을 확인하는 듯 그만 온갖 욕이 텔레비전으로 쏟아져 들었다. 나는 내심 반가운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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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뒤 펍을 빠져나왔다. 그때부터 또한 펍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경기의 아쉬움을 달래며 또 술을 마시기 위해서일테다. 경기는 겨우 두 시간이었지만, 경기 전에는 흥분을 고조시키기 위해 경기 뒤에는 경기의 여운을 되새기기 위해 사람들은 술을 마신다. 그게 그들에게 축구의 의미인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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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이 내린 앤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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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시간, 허기가 져 영국애들을 쫓아 중국인들이 하는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 내가 시킨 건 소시지 & 칩스였는데, 이게 다였다. 정말 소시지와 감자칩을 주고 그 위에는 소스로 카레를 부었다. 감자 칩은 너무 튀겨 딱딱하기까지 했는데, 영국 애들은 먹을 게 그렇게 없었는지, 난 반이나 먹고 버리고 만 감자칩을 우적우적 맛있게도 먹고 있었다. 여기다 김밥천국 차리면 잘 되겠다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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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매주 어김없이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축구 경기가 열리는데 빠져나가는 길은 왕복 2차로가 전부였다. 교통 체증은 불보듯 뻔한 일. 더욱이 버스에 탈 사람도 폭주하는 상황이어서 이 곳을 빠져나오는 데 경기 끝나고도 무려 1시간 반이나 더 걸렸다. 이런 일이 거의 매주 반복될텐데도, 길을 넓힐 생각을 안 하는 걸 보면, 참을성 하나만큼은 정말이지 인정해줄 만 하다.
 
 리버풀의 야경을 둘러볼 욕심도 없지 않았으나, 앉을 자리 열악한 조건에서 하루를 보내는 통에 허리가 아파와 그냥 숙소로 향했다. 리버풀의 첫 날은 그렇게 옴팡 리버풀 FC와 앤필드, the Kop과 함께 했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