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하도 많이들 보길래 뭐가 다른 게 있나, 싶어 기예 보았다. 보고 났는데, 역시나 새로운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그냥 역사책을 스크린에 잘 펼쳐놓은 영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영화적'으로는 그래서 이 영화가 그렇게 뛰어난 영화인가 싶다. 역사에 구체적으로 남기지 못한 디테일한 대사와 행동들은 영화적 상상력으로 메운 것이겠지만, 큰 얼개에서는 그냥 역사에 기대어 버려 감독이 태만하다 보일 정도였다. 같은 역사적 사실을 스크린에 옮겨 놓았더래도, 크리스토퍼 놀란처럼 플롯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과감한 상상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감독이 가미한 것은 마지막 극적 효과를 위해 전두광과 이태신의 시내 대치 장면을 넣은 것 정도일텐데, 실제 역사의 드라마가 주는 힘에 비해 결정적이거나 인상적인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외려 사족 같은 장면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교육적' 효과가 있었던 거다. 타깃은 나같은 역덕 꼰대가 아니라 저 시절 역사를 잘 몰랐던 젊은 세대였다. 누군가에게 전혀 새롭지 않은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신선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이 커다란 간극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역사 교육의 문제였던 것일 수도 청산하지 못했던 정치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꾸준히 얘기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언론의 문제 때문이지는 않을까.
사람들이 반란군보다 그들을 진압하지 못한 "똥별들"의 무능함에 더 열받아 했다고들 하던데, 역사를 되돌려도 어쩌지 못할 일이었다. 권력을 찬탈하려는 자들은 전방의 부대를 서울로 향하게 할만큼의 뚜렷하고도 강렬한 의지가 있었지만, 그들을 막으려는 자들에게는 그런 게 있을리 없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체제를 떠받치던 군벌들에게는 민주주의가 그렇게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니었다. 심지어 이태신 조차, 그저 '총장님'을 잡아가면 안 되고 반란을 일으키면 안 된다 정도의 의지였지 어떤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분연히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 민주주의를 목숨 걸고라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총칼이 없던 시민들이었고, 그래서 결국엔 광주 시민들이 마지막까지 저항하다 희생되고 말았다. 당시 군 수뇌부에게 자신들이 지켜내야 할 것이 민주주의를 희구하는 국민들이었다는 의식이 있었다면, 그래서 자신들이 뚫리면 국민들이 학살당할 수 있다는 자의식이 있었더라면, 저렇게 허망하게 하룻밤 사이에 전두광 일당에게 권력을 내주지 않지는 않았겠나. 자신들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총칼을 내어준 후과가 너무나도 컸다.
전두환은 한국 현대사 최악의 빌런이다. 그는 국민 투표를 거치지 않은 채 대통령이 돼 정통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사실상 유일한 인물이다(최규하도 있긴 하지만 임기가 짧았으니 무의미하고). 그의 정치적 치적은 단임제를 만들어 지켰다는 것이지만, 2인자를 인정하지 않고 홀로 왕이 되고자 했던 박정희와 달리, 그것조차 그가 하나회 세력을 통한 군벌 집권 체제를 만들었다고 생각했기에 시도할 수 있었던 일이었을 뿐이다.
대대로 전두환을 연기한 이들이 있었다. 박용식은 오로지 외모 때문에 전두환 정부에서 핍박도 받고 전두환 퇴임 이후에는 전두환의 연기를 맡기도 했는데 실은 너무나도 유순한 인상 때문에 전두환을 그려내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덕화는 지나치게 카리스마를 뿜어대는 통에 전두환을 미화한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황정민의 캐스팅은 처음엔 좀 의외였는데, 다소 왜소해 보이는 체구로부터 오는 핸디캡을 신들린 연기력으로 커버해 내었다. 아마도 반란수괴 전두환의 야비함을 그처럼 적나라하게 연기해 낼 배우는 앞으로도 등장하기 힘들 것이다. 다만, 황정민조차 전두환 특유의 거만한 모습은 드러내지 못했다. 야비하고 탐욕적이고 거들먹거리고 파렴치한 그 모습을 누군들 어찌 다 담아낼 수 있겠는가. 앞으로도 보기 힘든, 또 나와서는 안 될 악인이다.
지옥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그의 영혼이 영원히 고통받길 간절히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