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툰토피아2010. 1. 5. 22:46


 김현석 선배는 내가 미디어포커스에 있을 때
 그 프로그램의 앵커이자, 기자협회장이었다.
 
 MB가 권좌에 오르고
 공영방송 사장을 끌어내리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했을 때
 그는 앵커직을 내던지며 "싸우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해 8월 8일, 
 권력이 공권력까지 동원해 공영방송 사장을 해임하던 날
 그는 정말 사활을 걸고 맨 앞에 섰다. 
 그를 따르던 후배들은 그 뒤에 섰다.
 그런 그가 기어이 공영방송을 접수한 저들에게는 
 눈엣가시였나 보다.

 이병순 체제는 김 선배에게 '파면'을 내렸다.
 그건 그에 대한 징계라기 보다는 저항하는 기자들을 향한 메시지였다.
 "까불지 말라, 잠자코 있어라, 비겁해지거라."
 제작거부까지 한 끝에 결국 김 선배의 파면은 막았지만
 그건 사실 우리의 승리가 아니었다.

 '정직 3개월'선에서 우리가 타협하면서
 저들은 우리가 가진 결기의 강도를 확인했을 뿐이고
 결국 저들이 노리는대로 '비겁함'은 우리 안에 확산돼갔다. 
 
 난 그 때 우리가 끝내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김 선배를 이용한 '도발'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본다.
 그 때 우리가 충분히 강함을 보여주지 못한 까닭에
 저들이 다시 김 선배를 통해 우리를 다스리려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후 전개될 싸움은
 새로운 싸움이 아니라,
 그 때 마저 하지 못한 싸움이 되어야 한다.
 어설프게 타협하거나 물러섰다간
 아예 기자의 영혼을 저당잡힐 수도 있음을 가정하고 결연하게 싸워야 할 일이다.

 김 선배가 마지막으로 하려고 했던 프로그램의 제목은 "해직자의 겨울"이다.
 귀양이나 다름없는 지역 발령을 받은 그의 겨울이
 모쪼록 따뜻했으면 좋겠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