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툰토피아2010. 7. 7. 23:01


 나보다 한 해 뒤에 공장에 들어왔지만, 그는 여러모로 배울만한 친구다.
 조직 문화에 절어 눈치 보기에 급급한 이 공장 분위기와 다르게
 그는 제 할 말을 하는 데 거리낌이란 게 없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선 행동으로 나서는 데 역시 주저함이 없다.  

 주장이 선명하고 읽는 맛이 있는 그의 홈페이지는 내가 (그나마) 자주 찾는 개인 홈페이지 가운데 하나다.
 기자로서도 그는 명민하고 일 잘하는 친구라는 평을 받아 왔다.

 그런 그였지만, 마이크를 놓은 지 2년째다.  
 내근 부서로 편집부에서 1년을 보낸 뒤, 다시 취재부서로 나와야 했을 때
 본인의 강력한 희망과 의지에도 불구하고 재차 편집부에 주저앉혀졌다.
 그의 까칠한 성정을 불편하게 생각한 취재부서의 꼰대들이 아무도 안 받았다는 게 그 이유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 체제 하에선, 그가 취재 일선에 나올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불투명한 전망 때문인지, 공장의 돌아가는 꼬라지에 대한 환멸 때문인지,
 그는 부쩍 자신의 미래에 대해 염세적인 반응을 보인다.
 나는 그의 재능이 한창 꽃피워야 할 중요한 시기를 내근 부서에서 보내고 마는 것이
 그에게도 손실이고 회사로서도 손실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시절이 언젠가는(!) 오기야 하겠지만, 그에게 너무 늦어버릴까 걱정이다.

 마이크를 빼앗기고, 대신 양심의 촛불을 든 그의 모습을,
 그냥 뜬금없이 그려보았다.
 그에게 작은 웃음이라도 주고 싶었던 의도였겠으나,
 너무 "새카만 토인"처럼 나오는 통에 당사자로부터는 면박만 들었다. ^^;;
 참 주책맞게도, 당사자야 어떻게 여기던, 나로선 모처럼 마음에 쏙 드는 그림이 나온 편인데,
 사진 없이 인상에만 기대어 그려댄 통에 구체적인 생김보다는 
 이미지가 내 의도에 부합됐기 때문이다.

 그림의 주인공이 이 캐리커처의 품질에 대해 정색을 하고 고개를 가로 젓는다면,
 뭐, 그냥 '내 머릿속의 재석'이라고 해 두자. 

(포토샵 CS2에서 와콤 타블렛 인튜어스3로 선 작업 및 채색.)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