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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6.07 [기고] 사장님에게는 '다시는'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2. 2014.06.07 길고 깊은 밤입니다.
재활용창고2014. 6. 7. 18:03



 <한겨레21> 1012호에 기고 요청을 받았다. 재미있게도, 회사 선배 두 명으로부터 같은 요청을 전달받았는데, 얼마 전 사내망에 올린 글 때문에 추천받은 것이다. 글은 익명으로 작성됐다. 한겨레 측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회사의 불이익이 있을까 우려해 익명을 제안해온 것이었는데, 어차피 이 시기에는 부장단까지 사장에 반기를 든 상황이니, 불이익을 우려할 상황도 아니었다. 사실 난 그보다도 내 개인이 드러나는 일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다. 누구라도 쓸 수 있는 내용인만큼 "아무개"보다는 "KBS기자"의 이름으로 쓰고 싶었다. 


 어린 시절, 오랜 꿈이었던 한겨레 지면에 내 글을 올리는 일이, 이런 식으로 내가 몸 담고 있는 회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루어진 것은 참 기분이 묘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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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KBS 공사 창립 이래, 아마도 최악이 되었을 그날 밤을요. 그날 밤은 KBS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밤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감춰왔던 곪은 상처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한 번에 터지는 것 같았어요.

 

국가적 대참사의 희생자 유가족들이 항의를 하기 위해 KBS 앞을 가득 채운 광경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충격적인 그림이었습니다. 가슴에 묻은 자녀들의 영정을 품에 안고 KBS를 향해 사과하라고 외치는 모습을, 과연 이전까지 상상할 수나 있었을까요? 특정 진영도, 특정 단체도 아닌 말 그대로 약자 중의 약자’, 우리가 보호하고 위로하고 대변해야 할 피해자들이 우리로 인해 상처를 받고 우리를 원망하며 거칠게 항의하는 모습을 말이에요.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고 국민에게 항의 받는 국민의 방송’, 그 모습이 가장 비극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으로 보여, 저는 그만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충격이 전해졌습니다. 한달음에 달려 나가 사과하고 희생자 유가족들을 위로해도 모자랄 판에, 회사는 도리어 유족들을 기예 문전박대하고 말더군요. 김시곤 보도국장은 물론, 사장님에 대한 면담 요구도 회사는 매몰차게 거부했습니다. 심지어 회사는 보도국 간부들에 대한 일부 유가족들의 폭력 행사를 문제 삼아 공격하는 공식입장을 급히 만들어 배포하기까지 했지요. 비슷한 시각, 보도국에서는 아침 뉴스에 마찬가지로, 유족들의 폭행과 감금을 강조하는 형식으로 리포트를 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여러 사람이 재고를 요청하고 꼭지수를 조정해서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톤 다운된 리포트가 나가긴 했지만, 고압적인 자세로 희생자 유가족들과 싸우자고 덤비던 회사의 대응 방식에 전 또한 그만,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KBS에 대한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자 유족들은 KBS에 대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압박의 대상을 돌연 청와대로 바꿨더랬죠. KBS가 온전한 공영방송이 아니라 청와대의 지시를 따르는 곳이라는 공공연한 사실에 바탕을 둔 결정이었습니다. 애써 국영방송이 아닌 공영방송의 기자가 되고자 했던 저는, 유족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KBS 문제 해결을 청와대에 요구하는 것을 보고는, 맥이 풀려 버렸습니다. 우리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시선이, 우리의 독립성과 공정성 정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일반적인 생각이 여기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하니, 온 몸에 기운이 없어졌습니다.

 

유족들의 판단이 정확했다는 것은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입증되었습니다. 다름 아닌, 사장님 스스로가 몸소 입증해 주셨죠. 유가족들이 KBS 앞까지 찾아와 그렇게 만나고자 했던 사장님이, 일이 그 지경이 돼서야, 청와대 앞으로 직접 찾아가 사과를 했으니 말입니다. 혹여 그 사과가 사장님의 독자적인 결단일지도 모른다는 다른 해석(?)이 나올까 걱정했는지,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은 내가 KBS에 문제 해결을 부탁했다고 밝혀 ‘KBS에 대한 청와대 개입설을 친히 뒷받침해 주기까지 했지요.

 

그에 앞서, 훨씬 더 명료한 얘기도 나왔어요.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자진 사퇴를 알리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사장님이 그간 청와대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KBS의 독립성을 무너뜨려 왔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으니까요. “언론에 대한 어떠한 가치관과 신념도 없이 권력의 눈치만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 온 길환영 KBS 사장은 즉각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말이죠. 김 전 국장은 이어 다른 언론을 통해 사장님이 평소에도 끊임없이 보도를 통제했으며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라고 추가로 밝히기도 했지요. “윤창중 사건을 톱으로 올리지 말라고 한 적도 있다는 구체적인 사례까지 언급하면서요.

 

너무 적나라하게 KBS 보도의 위상이 드러난 발언이라, 사실 액면 그대로 믿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김시곤 전 국장이기에 더욱 그랬고요. 하지만 또다시 사장님이 입증해 주셨죠. 김 전 국장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보도국장 자리에,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고등학교 동문인 백운기 시사제작국장을 앉힘으로써, 사장님 스스로 김 전 국장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을 한껏 높여 주었습니다.

 

하필 백운기라니요. KBS에는 여전히 후배들에게 존경과 신망이 두터운 능력있고 성품 좋은 선배들이 여럿 있습니다. 물론 보도국장 감으로도 손색이 없는 분들입니다. 그들을 제치고 백운기라니요. 이미 2009년 김인규 전 사장이 물리력을 동원해 사장실에 진입하던 그 날, 후배들의 저항을 온몸으로 앞서 뚫으며 사장을 호위하던 모습을 또렷이 사진으로까지 남겨, 후배들로부터 조롱의 대상으로 자리 잡은 인물을 보도국의 수장으로 앉히다니요.

 

백운기 국장의 청와대 커넥션은 이미 단순 의혹 제기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백 국장 본인이, 친절하게도, 관용차를 사용하며 투명하게 남긴 기록으로 확인을 해 주셨죠. 보도국장으로 임명되기 직전인 지난 11일 오후 3시 쯤 행선지 청와대로 회사 차량을 타고 나가 누군가를 만나고 온 사실을 말이죠. 이렇게 구체적인 정황증거마저 있는 마당에, 그를 국장으로 임명한 배경을 어떻게 보는 게 이치에 맞을까요? 청와대의 요구를 국장에게 전달하다 사달이 났으니, 아예 청와대와 직접 끈이 있는 보도국장을 임명해 폭로의 가능성을 차단하려 한 것으로 보는 게 상식적이지 않을까요? 아니, 그보다는 이번 인사 역시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그대로 집행했다고 보는 편이 사장님의 행동을 일관성 있게 설명하는 쪽이겠군요.

 

사장님이 제 20KBS 사장으로 결정될 즈음, 일선에 있던 아는 PD에게 사장님이 어떤 분이신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그 PD는 한 마디로 내 후배라면 참 좋았을 사람이라고 평하더군요. 리더로서의 자질에는 물음표가 생기지만, 아랫사람으로서는 선배나 윗사람의 말을 참 충직하게 잘 따르는 사람이라는 평가였지요. 지금에 와서 그 평가를 곱씹어 보니, 저는 왜 권력이 사장님을 선호했던 건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말을 잘 따르는 사람, 자신의 뜻을 잘 관철시키는 사람으로 사장님만한 적임자가 없다 여겼을지 모를 일입니다. 바꿔 말하면, 사장님이 KBS호의 선장이 된 순간, ‘언론사 KBS’로서는 그 자체로 그만큼 불행한 일도 없었던 셈입니다.

 

희생자 유족들 앞에서 사과를 하신 뒤 맞이한 월요일 보도국 회의에 사장님이 참석해 현 난국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셨단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수십 년간 쌓아온 KBS 뉴스의 신뢰가 실추돼 유감스럽다고 하셨다지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하셨고요. “중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보도국 내부적으로 마련하면 수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나름대로 비전도 제시하셨다더군요.

 

그런데 말이죠. 평소와 같았으면 설레었을지 모를 사장님의 말씀에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았습니다. 사장님의 능력이나 재량이 어떨지, 사장님이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더 이상 궁금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냥, 사장님의 존재자체가 공영방송 KBS에 짐이 되고 독이 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사장님에게는 다시는” “앞으로이런 표현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사장님이 그 자리에 앉아 계시는 것만으로도, KBS는 언론사 취급을 받을 수가 없어요. KBS 기자들은 공보처 직원과 다름 아니게 되고요. 누구도 우리의 취재를 순수하게 보지 않을 것이며, 누구도 우리의 보도를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뢰를 먹고 사는 언론사로서 온전히 기능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KBS 사장이 권력의 눈치만을 본다고 온세상 만천하에 알려진 이상, 오롯이 사장님의 존재만으로 말이에요. 기자협회가 긴급비상총회를 열어 94.3%의 찬성률로 사장님과 본부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제작 거부에 나서겠다고 결의하게 된 절박한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장님이 있는 회사에서는 일할 수 없다는 단호한 뜻입니다.

 

저희는 세월호 참사 30일을 맞아 지난 15KBS 뉴스9에서 우리의 지난 보도 태도를 반성하고 스스로 비판했습니다. 방송이 나가는 순간까지, 역시나, 쉽지 않은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시청자들을 바라보며 이번 만큼은 반성의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는 다짐으로 많은 선후배들이 지혜를 모았고, 마침내 시청자들에게 머리를 숙일 수 있었습니다. 지금껏 KBS에 없었던 작지만 큰 변화였고, 이를 통해 우린 KBS 뉴스가 거듭날 수 있는 소중한 계기를 비로소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급기야 보도국 부장들도 사장님께 당장 사퇴하라고 요구하며 후배 기자들과 뜻을 함께 했습니다. 그동안 보도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며 전원 보직 사퇴도 했지요. 보도본부장도 결국 우리의 요구를 받아 스스로 물러나셨고요. 늦었지만 박수받을만한 결단입니다. 이제 사장님만 결단하시면 됩니다.

 

사실 이쯤 되고 보니, 사장님께서 물러나는 문제가 사장님 혼자만의 판단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날 밤, 유가족들 앞에 나가 사과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던 것처럼, 자신의 거취조차 청와대의 오더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지, 그래서 마지막 명예를 위해서라면 지금 물러나는 것이 맞지만 혹시 그러지 못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사장님께서는 취임사에서 유난히 KBS 출신으로서 내부 승진을 거쳐 사장이 된 첫 번째 사례라는 점을 강조하셨지요. 낙하산 논란과 함께 청와대 사전 낙점설이 난무하는 와중에서도, 그래, 그 점 하나는 그래도 상징성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가져본 적도 있습니다. 그 때 사장님께서 하셨던 약속도 새록새록 기억이 나네요. 이렇게 강조하기도 하셨죠.


그동안 KBS로부터 받은 많은 사랑을 모두 돌려드린다는 각오로 KBS를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하고자 합니다. 말을 앞세우기 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겠습니다.”

 

사장님. 지금이 바로 그 약속을 지키실 때입니다. 청와대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사장님 스스로 행동할 마지막 무언가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 될 겁니다. 물러나십시오. 보도국장도 함께 데리고 가주세요. 거듭나야 하는 공영방송에, 사장님과 청와대 하수인들이 있을 자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calvin.


<한겨레21> 1012호

Posted by the12th
재활용창고2014. 6. 7. 17:52



 이 글은 지난 5월 8일 밤, 회사를 지키며 사내망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유가족들과 대치하던 그 새벽에 이 사안을 리포트로 제작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철저히 회사 입장 편에 선 라인업이었다. 나는 리포트를 내 이름으로 제작하라는 지시는 거부할 수 있었지만, 결국 방송이 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 이런 편집 구성으로 뉴스가 나가면 정말 회사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것이라고 부장에게 읍소를 했지만, 부장도 그 결정을 거스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본부장에게 건의해 보겠다" 했지만, 그건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과 다름 없었다. 무력감이 밀려들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이 위기 상황에서 아무 힘이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 멍하니 있다 사내망을 찾았다. 그 기록을 블로그에 담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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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입니다. 

회사에 들어온지 11년째, 

아마도 그 기간 동안 제가 느껴보는

가장 긴 밤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또한, 코비스 게시판에

긴 글을 써 보는 것 역시 처음이네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지적되고 있는 보도국장의 발언이

와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당시 그 발언의 현장에서 

직접 들은 당사자의 얘기에 의하면 말이죠.

우리 언론이 흔히 했듯이 맥락 거두절미하고 

자극적인 특정 발언이 "보도"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게 다일까요?

정말 그 말 한마디로 이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오늘의 이 일에 앞서 

안산 현장에서 일찌감치 유가족의 싸늘한 반응을

체감했던 입장에선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고 이후 우리 뉴스의 보도에 대한 

실망감, 불만, 분노가 켜켜이 쌓여오다

국장이 했다는 자극적인 표현이 촉매제가 돼

폭발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온당합니다.


우리 뉴스가 문제가 없었다고요?

수뇌부에서는 "문제가 된 점도 있지만 

대체로 잘 보도했다"고들 하시죠.

같은 말이지만 저는 달리 할게요.

"대체로 잘 보도했지만 

문제가 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고요.

그리고 그 문제들이 당사자인 유가족들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다고요.


40기 후배들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분이 계시더군요.

이제 갓 회사에 입사한 41기 후배들은 어떨까요?


얼마 전에 41기 수습기자 후배들에게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KBS, MBC, SBS, 그리고 이번 사고를 계기로 

화제가 되고 있는 JTBC의 세월호 관련 보도를

모두 모니터링해 보고 비교 분석한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했죠.

이 친구들은 우리 뉴스를 어떻게 보았을까요?


놀랍게도 대부분 비슷한 시각,

그러면서도 정확한 시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친구들, 회사에 갓 들어온 터라 

회사에 대한 자긍심이 무척 강한 상태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들어볼 필요가 있겠죠.


요컨대, 우리 뉴스는 밖에서 보았던 것보다

심층적이고 사고의 원인도 잘 지적했고, 

편집 구성도 좋고,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제작도 잘 됐고,

타사 뉴스에 비해 전반적으로 잘 제작이 됐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소홀했고

정부 특히 청와대에 대한 문제제기는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편향적인 시각일까요?

JTBC에 대해서는 또한 정확하게

앵커의 힘이 크고 현장 목소리를 잘 전달하려 했지만

너무 감정에 치우쳤고, 개별 리포트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평가했습니다. 


41기 후배들이 우리 뉴스에 대해 지적했던 부분만 

몇몇 문장을 직접 인용해 보죠.


"사건 관련자 및 책임자들에 대해 고루 보도하고는 있으나

청와대는 유독 그 대상에서 빠지는 경우가 잦다... 

이러한 경향은 시청자들이 더욱 KBS뉴스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의료 지원이 시급하다는 기사는

적절했으나, 바로 이어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의료진을 보강하라고 지시했다는 단신이 이어진 것은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는 것과 같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KBS는 특히 당국이 대규모 구조작업을 시행한다는 점을

4사 중 가장 크게 강조했다 (경비함정 81척, 헬기 15대,

특전사 150명, SSU 170명, 200명의 구조인력, 어선 수십척 등

4사 중 수치가 가장 컸음)"


"해경을 비롯한 구조 당국의 초기 대응이 미흡했던 점

혹은 해경과 언딘 및 세모 그룹 간 유착 관계에 대해서는

비판적 관점을 견지했던 반면 사고 대처과정에서

정부 측 인사들의 여러 실책성 행동들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상대적으로 진도나 안산 소식 등 현장 소식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두 차례 이시각 현장 꼭지와 한 희생자 

스토리가 아니었더라면, 생생함, 우리 국민에게 와 닿는

실질적인 이야기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보도의 연성화가 아닌, 상대적 약자라고 여겨지는

세월호 관련 가족들의 입장을 이야기해주는 리포트가

필요하지 않나 자문해 봤습니다"


실종자 가족들, 그리고 이후 결국 유가족이 된 

그들이 일관되게 언론에, KBS에 요구한 것은 

자신들이 눈으로 보고 있는 사실을 

보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빠른 구조를 독려하고 지지부진한 정부를 

혼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뉴스는 편집이나 제작 등 만듦새에 있어서 

높은 수준을 보여줬지만, 막상 희생자 가족들이

요구하는 것은 들어준 게 거의 없습니다. 

정부의 발표를 확인 없이 인용보도 했고,

정부의 실책을 비판하지 못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말에

박수로 화답했습니다"와 같은 몇몇 리포트로

도리어 그들을 더 분노케 했을 뿐이었죠. 


이번 사고의 보도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런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대한 도의적인 사과를 담은

리포트라도 방송하자고 수차례 제언했었습니다.

일부 오보에 대해 앵커가 사과멘트를 하도록 하자고도

제안해 봤습니다.

하지만 무엇때문인지 

우리는 시청자에 대한 사과에 무척 인색했고 

지금껏 공식적인 사과는 한 마디도 KBS에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죽어간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사과하는 와중에도 말이죠.


도의적으로라도 고개를 숙이며 나아갔다면

희생자 가족들의 분노는 저만큼 커지지 않았으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도 수신료를 내는 우리 회사의 주인인데

사과 한 마디도 아까워 하는 우리는 

그들에게 너무 교만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오늘 우리는 

"조문 갔던 보도본부 간부들이 폭행·억류당했습니다"는

제목으로 회사의 공식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저는 우리 회사가 정말 어디로 가는건지 

참담하고 또한 불안하기만 합니다.


몇 해 전부터 후배들 사이에서

"난파선에 올라탄 거 아니냐"는 

자조섞인 우스개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세월호가 침몰하는 모습을 

제 눈으로 보고나니,

그 말의 의미가 시각적으로 너무나도 잘 와 닿습니다.

저를 비롯해 후배들의 불안감은 너무 큽니다.

어찌보면 선배들이야 정년퇴직으로, 간부 임기 만료로 

'퇴선'하면 그만일 수 있습니다.

객실에 남아 있는 후배들은 어떤가요?

"KBS는 좋은 회사다"는 안내방송을 믿고 그냥 있어야 하나요,

아니면 조금이라도 젊을 때 침몰하는 회사에서 뛰쳐 나가야 하나요?


그렇게 되기 전에, 후배들은

앞으로 오래오래 회사 다녀야 하는 입장에서 

내 회사 침몰하는 것 막아 보자고,

눈물 흘리며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애써 비어있는 평형수를 꾸역꾸역 채워넣고 있는게 아닌지요?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