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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26 [음반] 가장 보통의 언니네이발관 2
만끽!2008. 10. 26. 02:56













 
 이제와 생각해 보면, 원인은 '부담감'이었다. 처음엔 그저 좋아서 자기들끼리 한 번 놀아본 음악이었는데 그 음악에 (의외로!) 행복해 했던 인간들이 (의외로!!) 적지 않았던 거다. 괜스레, 거창히, 프로로서의 음악 활동 본격화를 선언하며 오버로 모습을 드러내고 나자, 더이상 즐겁게 놀 수 있는 음악이 아니게 되었던게다. 아무래도 음반 판매고와 티켓 판매량을 신경쓸 수밖에 없었을테고, 어깨에 과도한 힘이 모이면서 온 몸도 뻣뻣하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3집 <꿈의 팝송>과 4집 <순간을 믿어요>에 언니네이발관 답지 않게 후까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던 것은, 그래, 그 '부담감' 때문이었던 거다. 

 애초에 잔뜩 가지려고 하는 것은 이 밴드에 어울리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원래 딸랑거리던 기타 리프 소리가 그랬듯, 언니네이발관은 없이 시작했던 것이 매력이었기 때문이다. 버리고 놓아 둘수록 갖게 되는 무소유의 진리를 이제 다시 깨닫게 된 것일까?

 <가장 보통의 존재>. 언니네이발관이 오랜 장고 끝에 들고 나온 다섯 번째 앨범의 제목은 그냥 '보통의 존재'도 아닌 '가장 보통의 존재'다. 이 앨범의 타이틀 곡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건 마치 그동안잠시 손에 쥐고 있었던 것들을 떨쳐내려는 선언으로 들린다. 프로페셔널한 사운드로 일반 음악 대중에게 어필해 성공가도를 달리려는 집착 같은 것을 내 놓아 버리려는 것으로 읽힌다.

 '가장 보통의 존재'가 되고 난 뒤의 언니네이발관은, 우리가 추억하던 그 언니네이발관이다. 어깨에 잔뜩 쌓인 부담감도, 뭔가 보여주겠다며 덤비는 후까시도, 시장에 대한 눈치도 없이 즐겁게 음악하는 모던록 밴드다. 그들의 팬들 역시, 굳이 이들을 알리고 띄울 필요도, 부러 애써 이들의 음악을 이해해 주려할 의무도 없이 '가장 보통의 존재'가 되어 그들의 음악을 같이 즐겨주면 될 일이다.

 타이틀 곡 '가장 보통의 존재'는 스스로의 제목처럼 특별함이라곤 없는 멜로디 라인으로 역설적이게도 제법 보통 이상의 노래가 되었다. 기승전결도, 노래의 클라이막스도 없는 그저 나지막히 읊조리기만 하는 노래지만 묘한 끌림이 있어 한 번 들으면 귀에서 떼 놓게 되지 않는다. 언니네이발관의 처음 노래들마냥 말이다.

 가장 보통이어서 범상치 않아지는 매커니즘의 핵심에는 이석원의 보컬이 있다. 이석원의 보컬에는 표정이 없다. 좋든 슬프든 기쁘든 괴롭든, 그 어떤 감정도 묻어 있지 않다. 처해있는 상황에 초연한 듯, 관심없는 듯, 또는 지친 듯할 뿐이다. 

 그건 말하자면 '체념'의 정서다. 상실감의 토로나 슬픔의 호소 또는 울분의 표출이 아닌 그저 만사를 포기한 체념 말이다. 어찌 해볼 의지도 희망도 없이 그저 막연히 손을 놓고 있는 '체념'은 극도의 슬픔인 동시에, 언니네이발관의 이번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다. 

 아마도 '미움의 제국'이나 '인생의 별'을 넘어서는, 언니네이발관 베스트 트랙으로 자리매김 할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에서도 체념의 정서는 지독히 배어 있다. 너무 짙게 배어 있어 듣다 보면 가슴이 아려올 정도다. "이제 모든 걸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을 땐 체념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정적인 사운드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것' 역시 체념을 노래하고 있다. "아름다운 것을 버려야 하"는, 사랑을 잃게 되는 그 순간에도 자신은 슬픔을 느끼는 주체가 아니다. ("슬픔이 나를 데려가 데려가") 

 '가장 보통'과 '체념'을 노래한 언니네이발관의 5집 앨범은, 올해 가요계 최고의 음반으로 손꼽히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지만, 걍팍해지는 세상 살이 속에 있다 보니, 어쩐지 그것이 일종의 '시대 정신'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the best track : 너는 악마가 되어 가고 있는가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