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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리얄라2008. 4. 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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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리시청 홈페이지에는 구리 지명의 유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일제 시대 때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옛 지명 구지면의 '구'와 망우리면의 '리'를 합해 구리면을 만들었고 그게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 지명인 구지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한데, 육지가 강으로 돌출한 곳을 뜻하는 '곶'이 '고지'로 불리고 이게 한자로 표기되는 과정에서 '구지'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구리시는 서울 바깥 쪽, 한강 상류에 위치해 있는 참이다.

 구리로 이사를 갔다. 벌써 한 달도 전의 일이다.

 서울 집에서 광장동을 경유해 조금만 나아가면 구리가 나오는데, 부모님은 이 곳이 지리적으로나 생활 조건면으로나 유리하다고 생각해 5년전 쯤 아파트를 분양받았었다. 그간 전세를 놨더랬는데, 이번에 세입자를 내보내고 그 아파트로 전격 입주한 것이다.
 
 사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막 올린 새 집을 살아보지도 못한 채 고스란히 남에게 내줘야 하는 것에 대해 진작부터 아쉬워 했더랬고, 그 동안에도 틈틈이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는 의사를 불쑥 불쑥 피력하긴 했었지만, 모두 희망이 섞인 '말'들에 불과했다. 마음같지 않은 여건 탓에 '행동'으로는 이어질 일이 도무지 아니었던 까닭이었다.

 5년동안 희망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던 그 '여건'이 달라진 것은 (결단코) 아니었지만, 이번엔 부모님의 결단과 실천력이 견고했다. 결정을 내리자, 뒤도 안 돌아보고 그대로 일을 추진했다. 이사에 대한 다른 생각이나 걸림돌이 될만한 조건들은 그냥 사뿐히 즈려 밟는 민첩한 추진력이었다. 그 덕에 내가 잠시 멍한 기분이 드는 사이만에 이사는 완료되었다.

 이사 논의 단계에서부터 좀 이상한 이사라고 생각했던 나로선, 한 달 넘게 새 집에서 지내는 와중에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 가뜩이나 집과 회사 사이의 거리가 멀었는데 더 멀어져 버렸다. 기름값 부담도 커지고 이동 시간도 더 계산해 줘야 한다. 지금이야 내근 부서라 감당할 만 하지만, 취재 부서에 나간 다음이 걱정이다. 대중교통 이용 방법이 낯설어 차량 사용 빈도도 더 많아졌다. 동네나 집 주변 환경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구리에서 집 밖으로 나가 본 적이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이 이사는 '두 집 살림'을 전제로 한 '무모한 이사'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서울 집에 그대로 남게 되었고, 나머지 가족들만 구리로 옮겨간 것이다.

 서울 집은 서울 집대로 그대로 남겨둔 채 구리에 또다른 살림을 벌였다는 말이다. 때문에 냉장고와 세탁기와 가구와 소파 등 많은 세간 살이를 모조리 새로 사다 채워놓아야 했다. 어머니는 한 달에 두번 씩 주말에만 구리에서 함께 '살기로' 했다. 가정이 절단난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이혼이나 별거 상태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저간의 사정은 이러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집은 어머니가 치는 하숙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참이었는데, 당장 어머니가 하숙을 그만 두시면 소득의 대부분이 끊기는 상황이다 보니 서울 집을 팔아 치우고 소득이 없는 아파트에서 살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정 탓에 구리 아파트로 이사를 언감생심 희망만 해 왔던 것이었는데, 더 늦어지면 영영 비좁은 서울 집을 벗어날 수 없겠다 싶었는지 부모님은 마침내 '두 집 살림'의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이사를 감행해야겠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넓은 아파트에서 살아보는 것은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오랜 '로망'이었다. 여건이 좋아졌다면 지긋지긋한 하숙을 그만 두고 꿈 꿔오신 대로 다 함께 오손도손 살았겠지만, 그러자면 또한 자식들이 출가한 다음 쯤이 되기 때문에 이룰 수 없는 희망 사항이 되고 말 터였다. 그런 저런 상황을 고려하다 보니 지금만이 유일한 기회라고 여기신 모양이었다. 어머니에게는 겨우 한 달에 두어번 그것도 주말에나 이뤄지는 반쪽짜리에 불과하지만, 로망을 현실화 한 것이다. 당장 내가 겪는 불편에 대한 불만 따위는 잠시 접어둬야겠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