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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9.18 임무 완료
  2. 2012.01.03 용의 해가 가져다줄 미래 4
  3. 2012.01.03 알량한 알권리 2
얄라리얄라2018. 9. 18. 14:11


- 기껏 제일 좋다는 스쿠터 사줬더니, 탈 때마다 바퀴에 불이 안 들어온다고 찡찡.. "알리에서 같은 사이즈의 저렴이 LED 바퀴를 사서 교체해주면 되지 뭐"라고, 처음엔 아주 가볍게 생각했던 거다.


- 그런데, 바퀴를 고정한 볼트가 안 빠진다. 육각렌치로 돌리면 쉽게 풀려야 하는데, 아무리 힘을 줘도 이거 뭐 당최 풀리질 않는다. 그제서야 검색해보니, 마이크로 스쿠터는 안에 본드(!)를 발라놔 바퀴가 잘 안 빠진다는 얘기. 헐. 자전거수리점에서 풀었다는 얘길 보고 집 근처 수리점에 갔지만, 스쿠터를 잘 만져본 적 없는 사장님도 결국 실패. 바퀴 바꾸는 거 구경하겠다고 같이 따라나선 아이는 더욱 시무룩해지고...


- 인터넷 폭풍검색 끝에, 이런 LED 바퀴를 파는 곳에서 "사무실로 가져오면 공임 받고 직접 교체해 준다"는 문구를 발견. 마침 거리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길래, 주말을 이용해 방문을 했다.


- 이전에 이미 마이크로 스쿠터에 애를 먹은 적 있다는 사장님은, 그래도 경험이 있는 분이라 믿음이 갔다. 조금 애를 먹었지만, 드디어 왼쪽 바퀴 하나를 떼는 데 성공! 아, 역시 기술자는 달라. 옆에서 막 입에 발린 칭찬을 하며 이제 문제 없겠지, 얼른 바꿔 달고 집에 가야지, 하던 차였는데...


- 오른쪽 바퀴가 안 빠진다. 심지어 헛돈다. 게다가, 젠장, 육각홈까지 마모가 됐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바퀴를 빼는 건 이제 불가능해진 상황. 안 빠지는 볼트 푸느라 사장님의 손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사장님도 난감해지고, 나도 난감해지고. 아, 그냥 애한테 반쪽 LED 바퀴로 만족하라고 해야 하나..? 했는데.


- "교체 뒤 이 바퀴 더 안 쓰실거죠?" 라고 큰 결심을 한 듯 한 표정으로 사장님이 묻길래, 네, 뭐;; 더 쓸 일은 없겠죠... 했더니 "바퀴를 잘라냅시다" 이런다. 네?? 그리곤 느닷없이 전기톱 장전. 전기톱으로 사정없이 바퀴를 잘라내고는, 바퀴를 단단히 고정하고 있던 볼트마저 무지막지하게 잘라내기 시작. 그런데 이게 쇠잖아. 쉽게 잘릴리 없는 육각 볼트는 정말 오랫동안 버텨주었고, 덕분에 저게 얼른 잘려야 집에 갈텐데..하는 생각 중에 키야, 이놈들 튼튼하게는 만들었네, 뭐 이런 믿음도 아주 잠깐 생기긴 했다. 그렇게 40분 넘는 치열한 사투 끝에, 결국 사장님이 이겼다. 스쿠터 바퀴와 육각 볼트는 수많은 쇳가루를 남긴채 잔혹한 최후를 맞았다.


- 사장님은 사무실에 있는 다른 스쿠터에서 빼온 볼트를 끼워 바퀴 교체를 완성해 주셨다. 이렇게까지 바퀴교체가 어려운 건줄 몰랐으므로, 기왕이면 광폭 바퀴로 바꿔달았다. 또 기왕이면 뒷 바퀴도 LED로 바꾸고. 그렇게 바퀴값+소정의 공임을 드리고 두어시간 만에 힘들게 집에 돌아왔다.


- 그 치열했던 사투의 현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이제 제 스쿠터 바퀴에도 불이 들어온다는 사실에 감격해 당장 시승을 하겠다고 졸라댔다. 즐겨타던 집 밖 트랙에는 비가 오는 상황. 하는 수 없이, 차량 이동이 한가로운 지하3층 주차장으로 내려가 적절히 가드하며 태워줬더니, 신나게 폭주를 한다. 땀까지 뻘뻘 흘려가며 멈출 줄을 모른다. 그러면 된 거다. 임무 완료.



calvin.


Posted by the12th
얄라리얄라2012. 1. 3. 10:06

 


 2011년은 곤혹스러운 한해였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수신료를 올리기 위해 야당 회의실을 불법 도청했다는 의혹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경찰이 무혐의처분을 내려 주었지만, 이번 선관위 디도스 공격 수사 결과와 마찬가지로, 경찰의 그 수사 결과를 신뢰하는 시청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수신료 인상은 공영방송 운영을 위한 안정적인 공적 재원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대의명분이 분명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가장 대의명분이 없는 방법으로 그 일을 추진하려다 그만 최악의 오명까지 뒤집어쓰고 말았다. 정권은 유한하고 공영방송의 주인인 시청자는 영원한데, 이 짧디짧은 정권이 막을 내렸을 때 대관절 무슨 면목으로 시청자들을 대면하려 하는 것인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한미 FTA 시위 현장에서 방송사들에 향하는 날선 반응들 역시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를 비롯해,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오롯이 홀로 받아야 했던 시위대의 매몰찬 질타를 이제 이웃 방송사와 나눠질 수 있게 돼 도리어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걸까? 시위대의 싸늘한 반응이 너나없이 들이쳤다는 것은 그만큼 그동안 방송 언론 전반이 편향돼 버렸다는 뜻이고, 그건 소속을 불문하고 공정 방송을 지켜내지 못한 방송 기자들에게 반성을 요하는 일이다. 방송 카메라에 대한 시위대의 더 격렬해진 반응은 곤혹스럽다 못해 슬프기까지 했다.

 그런 가운데 종합편성 채널의 무더기 출범은 방송 언론 환경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었다. 한정된 광고 파이를 나누어 먹는 일도 물론 기존의 방송사들 입장에선 걱정의 대상이겠지만, 보수의 경도로 보면 가장 단단한 네 개의 신문사가 종편 채널 네 개를 모두 꿰차고 들어왔으니, 방송 언론 전반의 우경화는 보다 심각해진 셈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채널이 많아진만큼 더욱 치열해질 시청률 경쟁이 결국 선정 보도 경쟁을 야기해 방송 언론 전체를 흙탕물로 만들어 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스럽기만 하다.


 올 한해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일련의 환경들이 새해가 된다고 당장 해결될 리는 만무하다
. 우리 회사는 무혐의 발표에도 도청을 의심하는 시청자들의 눈길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시위 현장에서 방송 카메라는 로고를 가려야 할 것이고, 7개 채널에서 매일매일 보수적인 뉴스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렇지만 희망은 품어볼 수 있지 않을까
? 무엇보다도 그동안 언론 환경을 옭죄어 왔던 이명박 정부의 5년 임기가 이제 마지막 페이지에 접어들었으니 말이다. 최소한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워 볼 한 해로 내년을 맞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물론, 자칫 희망의 싹은커녕, 더 깊은 터널로 들어서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현장에서의 부단한 노력과 치열한 싸움이 더 요구되겠지만 말이다.


 용의 우리말 표현인
미르는 언어학적으로 미리의 옛 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민간 설화 등에 등장하는 용은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거나 점지하는 영험한 능력을 선보인다. 다가올 용의 해는,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안겨 줄까. 새로 다가올 1년은 흥미진진한 일들로 가득 찰 것만 같다.


 방송기자연합회 <방송기자> 2011.송년호 

 

Posted by the12th
얄라리얄라2012. 1. 3. 09:52


쓰나미가 인도네시아 푸켓을 할퀴고 지나갔던 2004년 말, 난 사회팀에서 까라면 까는막내 기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나라 밖에서 벌어진 일이었던 까닭에 사회팀에선 그다지 바쁠 일이 없었는데, 생존자들이 돌아오게 되면서 나도 분주해졌다. 생존자들의 귀국은 그들의 근황과 안녕을 전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쓰나미가 덮쳐오던 실감나는 상황을 전해들을 수 있는 기회이자, 그들이 디지털카메라나 캠코더로 찍은 생생한 그림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돌아오는 날, 난 다른 여러 동료들과 함께 인천 공항에 전진 배치되었다.


공항은 아예 기자들에 의해
점령돼 있었다. 하지만 기자로 인산인해를 이뤄도 상관없는 공항 로비와 달리, 검색대 너머 공항 CIQ는 출입이 제한돼 있었다. 그 많은 기자들이 그 많은 장비를 이끌고 공간이 넉넉지 못한 CIQ를 점령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기자단은 풀(pool)을 꾸리기로 했다. 한 팀이 촬영한 그림과 인터뷰를 모든 방송사가 같이 나눠 갖는 식이다. 공항 출입기자들끼리 인력 조정을 논의한 끝에 다른 회사의 촬영기자 선배와 함께, 내가 CIQ에 들어가기로 결정이 됐다.
 

우리의 임무는 푸켓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온 부상자의 촬영과 인터뷰였다. 푸켓발 비행기가 도착하고, 우리는 비행기 트랩 바로 앞에 진을 치며 부상자를 기다렸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한 여성 승객이 기내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침대에 실려 나왔다. 상태가 많이 좋지 못했던지, 그녀는 그대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보내질 계획이었다.


물벼락의 지옥 속에서 사투를 벌인 끝에 살아돌아온 그녀에게
, 촬영기자는 일단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담요로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 찍는 걸 알 수도 없을테고, 더욱이 초상권 운운할 일도 없으니 사전 양해를 구하는 일은 가볍게 생략되고 말았다. 그림이 어느정도 확보되자 내가 제 역할을 할 차례였다. 난 마이크를 바짝 갖다대고 묻기 시작했다.


쓰나미 당시 상황이 어땠죠?”
……
뭘 보셨어요?”
……
기억나시는 거 있으면 얘기 좀 해주세요.”
……
정신이 드셨을 때 어떤 상황이었나요?”


방송사들 대표로 취재하고 있었으니 책임감이 더 컸던 것인지도 모른다
. 난 이렇게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이 여인이 인터뷰에 응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고 느꼈음에도, 자못 매몰차게 그녀를 몰아부쳤다. 수차례 몰인정한 질문 끝에, 결국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으니까 제발 그만 좀 물어보세요


동시에 그만 펑펑 터져 버린 그녀의 울음소리
. 난 순간 마치 뭔가에 뒷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서야 생각했다. ‘내가 대관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하고.


이런 종류의 경험은 나 혼자만에 국한되지 않는다
. 어떤 후배는 경찰의 안내로 어떤 사건의 피의자 집 앞까지 찾아갔다가, 피의자의 아무 죄 없는 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는 영혼이 조금씩 깎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노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또 다른 후배는 성범죄를 당하고 무참히 살해당한 한 소녀의 집에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며 부모에게 인터뷰를 청했다가 모진 꼴을 당하기도 했다.


방송 기자들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취재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유혹사이에서 갈등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입사 초기 방송은 그림이고 방송은 살아있는 녹취라고 교육받으면서, 취재 대상에 대한 배려보다 생생한 취재의 결과물에 집착하게 되는 까닭이다. 사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나면 인간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좋은 취재력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지만, 매일 결과물에 의해 깨지고 혼나는 수습 시절에 그런 걸 알려주는 이는 별로 없다.


갈등의 끝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는 전가의 보도는
국민의 알 권리이다. 내가 하는 일이 결국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취재 과정에서의 일부 부도덕한 일은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라고 자위하는 것이다.


이번 천안함 침몰 사고에서도
, 난 불편한 화면을 마주한다. 비통함 속에서도 찍지 말라는 뜻으로 카메라를 향해 손사래를 치는 실종자 가족들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방송되고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연 어떤 시청자가 이런 장면까지 보고 싶어하는 것일까. 우리는 사실 실체도 없는 시청자들의 알 권리를 핑계 삼아 자신들의 직업의식을 채우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만에 하나, 그것을 요구하는 시청자가 있다손 치더라도, 방송에 의해 훼손당하는 이들의 인권에 비하면 그것은 도리어 알량한 알 권리여야 하는 게 아닐까.


언론중재위원회NEWS <언론 사람> 2010. 4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