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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듦2010. 6. 3. 15:04


 고백하건대, 나도 알지 못했다. 변명을 하자면, 그게 죄다 엉터리(!) 여론조사 때문이랄까. 먹물들은 여론조사를 의심없이 받아들여 미리 비관론부터 뿌려댔지만, 유권자들은 자신의 판단을 내리는 것에 흔들리지 않았다. 노무현의 믿음, "인간은 안 변하지만, 인류는 진보한다"는 그런 믿음이 다시 입증된 것이라고 해야 하나. 개체로서의 유권자는 수많은 오판을 할 수 있지만, 유권자 대중은 결국 옳은 결정을 내리고 만다. 그걸 다시 확인한 선거였다.

1. 한명숙

 개인적으로 한명숙에게 서울시장 자리는 '계륵'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차기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여야 한다고 여겼던 까닭이다. 잠룡이 멸족한 민주당에게,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통성을 잇고, 흠결이 없으면서도, 충분한 행정 경험을 지닌 검증된 리더는 한명숙 뿐이다. 더욱이 한나라당에서 나올 가장 강력한 대권 카드가 박근혜라면, '최초의 여성 대통령' 자리를 두고 겨룰만한 카운터 파트너 역시 한명숙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한명숙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몬 것은 정권과 검찰이었다. 한명숙은 자의보다는 자신을 옥죄어오는 외부의 압박에 내몰려 지방선거에 나서게 되었다.

 한명숙의 당선을 고대하면서도, 난 못마땅함을 느껴야 했다. 한명숙이 시장에 당선된다면, 야권은 유력한 대선 카드를 잃게된다. 다음 대선은 다시금 지리멸렬한 패배로 귀결될 것이었다. 시장이 된 한명숙이 임기 도중에 대선에 뛰쳐나오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무책임하게 제 임기도 채우지 못하는 이를 유권자들이 선택할 리 만무하다. 시장 임기를 마친 뒤 차차기를 노리기엔 한명숙의 나이가 너무 많다. 서울시장은 한명숙에게 먹을 수도 뱉을 수도 없는 자리이자, 족쇄가 될 수도 있었다.

 정작 유세 과정에서의 한명숙은 한계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상대를 공략하는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등떠밀리듯 출마한 자리라 준비와 대비도 부족했다. 오세훈과의 여론조사 격차는 좁혀지기는커녕 점점 벌어졌다.

 만일 그대로 참패를 했다면, 한명숙의 정치생명은 그걸로 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명숙은 '대세론'을 비웃으며 오세훈의 턱밑에 칼끝을 들이대는 인상적인 선전을 펼쳤다. 한명숙은 서울시장 자리를 거머쥐지 못했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고 동시에 자신의 정치 생명 가능성을 차기 대권 도전으로까지 연장했다. 선거를 치르면서 스스로 보완해야 할 점을 확인했다는 것은 대선 예행 연습 차원에서 좋은 효과를 거뒀다. 이번 선거에서 거둔 학습효과는 더 큰 선거에 나서게 될 한명숙에게 가장 영양가 높은 자산이 될 것이다. 

 서울시장에서 진 사람이 어떻게 대선을 노릴 수 있겠느냐는 말은 하지 말기 바란다. 부산시장과 국회의원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대통령이 되고 말았던 노무현의 전례가 있다.

 야권은 살을 베이고 뼈를 노리게 된 형국을 맞았다. 그들은 오늘의 서울시장을 잃은 대신, 내일의 유력한 대선 후보를 얻었다. 한명숙의 존재는, 이번 지방선거의 가장 흥미진진한 관전 포인트이자, 차기 대선에서의 가장 매력적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2. 유시민

 심상정의 '살신성인'이 무색할 정도의 패배였다. '정부의 노골적인 북풍 몰이'를 패배 요인으로 핑계삼기에는, 강원도에서 이광재의 승리가 설명되지 않는다. 그 자신의 표현대로, 경기도에서의 패배는 유시민 개인의 한계이자 참여당의 현 수준에 따른 것이다. 

 토론만으로 도지사가 결정됐다면 유시민은 김문수에 낙승을 했을 것이다. 토론에서 여실히 드러났듯 유시민은 뛰어난 사람이다. 식견과 언변, 자세, 열정 어느 것 하나 김문수에 앞서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 자신이 몇해 동안 쌓아올린 그 이미지-지나치게 까칠하고 선명해 정치적 찬성자를 제외하고는 등을 돌리게 만드는 그 이미지로 인해, 경기도민들은 그가 경기도 행정수반의 자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앞으로, 유시민이라는 인재의 쓰임새를 차분히 생각해 볼 때이다. 그에겐 경기도지사 야권 후보 단일화를 이뤄냈던 것과 같은 개인적 역량과 기적의 기운이 있다. 그걸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나도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유시민의 쓰임새에 따라서 다음 대선이 해볼만한 싸움이 되느냐, 해보나 마나한 싸움이 되느냐로 갈릴 것 같다.

3. 우광재 좌희정,그리고 리틀 노무현

 유시민과 한명숙의 패배가 주는 아쉬움을 희석시킬만한 값진 승리는 이광재와 안희정, 김두관의 승리다. 이들의 승리는 노무현의 가치가 비로소 재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고, 스스로 '폐족'이 됐던 친노진영이 유권자에 의해 완전히 복권됐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그간 한나라당이 젓가락만 꽂아놔도 거저 먹어왔던 강원도와 경남에서의 승리는 상대진영에 뼈아픈 패배를 안겼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다. 더불어 부산시장에서 김정길의 예상치 못했던 선전 역시 주목할만 하다.

 또 다른 의미를 하나 더 얹자면, 그동안 여당과 달리 야권이 인물난을 겪게 된 결정적 계기가 지방선거 참패에서 온 것이라고 봤을 때, 이들 광역단체장들의 승리는 야권의 인물난 해소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현재 집권자와 한나라당의 잠재된 대권 주자들이 지방자치단체에서 행정력을 쌓아가며 큰 꿈을 꿔온 이들이라는 점을 되새겨 본다면, 앞으로 4년동안 강원도지사와 충남도지사, 그리고 경남도지사를 충실히 수행하게 될 이들이 이후 어떤 재목으로 자라게 될지 기대해 보는 것도 설레는 일이 될 것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김두관을 주목하고 싶다. 그는 이장의 경험을 살려 군수가 되고 그런 개척 정신의 가치를 인정받아 행정안전부 장관까지 역임했던 인물이다. 거기에 이제 광역단체장의 경험까지 쌓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경험들은 그를 더욱 큰 그릇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의 커리어는 또한 한국 풀뿌리 민주주의의 성공 여부를 따져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성공적으로 경남도지사직을 수행하고 난 뒤라면, 차차기 쯤엔 믿음직한 대권 후보로 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다.

4. 진보 교육감

 MB정권과 한나라당의 '집권 연장의 꿈'을 실현할 주요 키워드는 '언론 통제'와 '교육 장악'이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언론을 통제해 성인 국민의 의식을 제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교조로 대표되는 반체제 교육 환경을 밑바닥까지 들어내 '촛불소녀'의 씨를 말리고 미래의 유권자들을 '뉴라이트'로 훈육하고자 한다. 수구언론과 손잡고 끊임없이 전교조를 상대로 마녀사냥을 해대는 것과, 검찰을 동원해 김상곤 교육감의 행동 반경을 좁히는 것은 모두 '교육 장악'을 통한 집권 연장 노력의 일환이다. 

 교육감의 위치는 단지 교육 수장 자리의 변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고질적인 전략 빈곤에 시달렸던 야권이 이번 선거에서 여당과 비교해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유일한 아젠다는 '무상급식'이었다. 그 아젠다가 야당에서 나온 게 아니라 김상곤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상기한다면, 얘기되는 교육감 한 명의 파워가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그런데 경기도교육감은 물론이고, 수도 서울의 교육감마저 진보 진영에 빼앗겼으니, 막말로 똥줄 좀 타게 생겼다. 다른 지역에서의 광역단체장 패배도 패배지만, 서울시교육감 패배는 정권으로선 아마도 이번 선거에서 아마 가장 뼈아픈 패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만큼, 곽노현의 승리는 값지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주시해 보자. 조선일보를 위시한 수구언론은 끊임없이 이들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을 흔들어 댈 것이 자명하다. 검찰 역시 이현령비현령 식의 수사권 남용으로 이들을 괴롭힐 것이다. 다행히 곽노현에겐 김상곤의 전례가 있다.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임기를 마친다면, 단지 교육을 바꾸는 것 이상의 결실을 사회에 선보일지 모를 일이다.

5. 진보 정당의 길

 한명숙의 패배에 대해 노회찬을 힐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노회찬을 선택한 사람들은 단지 오세훈이 싫어서 노회찬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무게가 다를 뿐, 한명숙도 앞서의 노무현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지지할 수 있는 선택지를 빼앗는 것은 졸렬할 뿐더러, 나쁜 짓이다. 노회찬은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위해 정당한 방법으로 출마를 했고, 그 이상에 동의하는 이들이 3.3% 있음을 확인했다. 그런 이들의 존재만큼 우리 정치 지형은 다양해진다. 그리고 꿈도 다양해질 것이다.

 심상정의 사퇴는 그런 맥락에서 가슴아픈 일이었다. 그의 꿈도 노회찬의 것만큼이나 간절했지만, 그는 현실 정치를 외면할 수 없었다.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심상정의 선택은, 그 누구의 것만큼, 존중받아야 한다. 사퇴로 인해 그의 당내 입지는 좁아졌고, 어쩌면 정치 생명이 위태롭기까지 할테지만, 난 모쪼록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면서 꾸었던 그의 꿈이 그 모진 현실 위에서 꽃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은 심상정의 사퇴에 감동한 사람들이 앞으로 일구어 나갈 일이다.

 야권의 선거 승리는 민주노동당의 연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일찌감치 그런 선거 연대를 꿈꿔왔다. 자기가 쥔 것을 양보하며 같이 이겨나가는 연대 말이다. 민주노동당은 광역단체장 선거에서의 선전이라는 상징적인 결실을 포기한 대신, 수도권 기초단체장이라는 실질적이면서도 값진 결실을 거뒀다. 이번 선거 결과는 작은 단위의 연대가 비로소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이제 조금씩 더 정책 연합의 성격을 꾸려 나가며 발전할 일이 남았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