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듦'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4.06.24 문창극은 '易地思之' 했을까?
  2. 2014.06.12 '문창극 동영상' 풀버전을 보다 8
  3. 2011.03.16 우리의 미래
떠듦2014. 6. 24. 14:43




"왜 저보고 친일이다, 반민족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가 "친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한일합방은 조선의 무능 때문"이라는 게 핵심인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그의 '역사인식'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심지어 그 역사 인식도, '자연인' '언론인' 문창극에겐, 

너그럽게 생각해, 문제 삼을 수 없겠다 여겼다.

그저 '대한민국의 총리'가 품을 역사인식으론 

치명적인 결격 사유라고 여겼을 따름이다.

우리 보도도 일관되게 그 지점을 문제삼았을 뿐이다.


그러니 졸지에 "친일" 인사가 된 그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식민사관'을 갖고 있는 것과 

일제에 적극적으로 부역한 '친일'은

엄연히 그 범주가 다르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비뚤어졌다고 한들,

민족을 팔아먹어 개인의 영달을 탐하는 행위를 

곧바로 한다고는 볼 수 없는 법이다. 

"친일"은 명확한 행동을 기반으로 정리돼야 한다.

"친일"이라는 딱지를 붙일 때는 

좀 더 꼼꼼히 따져 붙일 일이다.


그건 "종북"이라는 딱지도 마찬가지다.


북한을 추종하는 것과 북한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통일을 지향하고,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분단국가라면,

이 차이에 대한 이해는 필수불가결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도리어 

자신에 대한 비판 세력 전부를 "종북"으로 내몰아

갈등과 분열을 키우고 권력을 유지하는 데 이용해 왔다. 

주장의 맥락을 자르고 정황과 취지를 짓뭉개 가며 

'종북 몰이'를 정치적 반대파를 숙청하는 데 요긴하게 써먹어 왔다. 

그 선동에 문창극과 같은 극우 언론인들이 앞장서 왔음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문창극은 이번 일을 계기로 

언론인으로서 주필로서 스스로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었을까?

단순히 억울함만 남았다면, 그 자신에게나 우리 사회에게나

이번 소동은 그저 소모적인 일이었을 뿐이다. 


calvin.

Posted by the12th
떠듦2014. 6. 12. 15:27




문창극 동영상 풀버전을 찾아 봤다. 하필 중앙일보 홈페이지에 떴더라.
맥락이 왜곡됐다는 주장들에 대한 옹호 차원일까?


무려 65분짜리. 길기도 하다. 

다 들어보니, 이해가 되기는커녕 더 한심하다.

한국 교회의 아전인수, 견강부회의 코어를 보는 것 같더라.


요컨대 전체 내용은 이렇다.

-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어떻게 쓰려고 한 걸까?
- 우리민족은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고 더러웠다.
- 그래서 시련을 준거다. ex>한일합방, 분단, 6.25까지.
- 그 시련을 통해서 우리나라는 이만큼 발전했다.
- 하나님이 쓰고자 하는 나라로 더욱 정진하자.


스스로를 이스라엘 민족으로 여기고 이 곳을 가나안으로 여기며 

선민의식에 가득차 있는 가치관 자체부터 거북하기 짝이 없다. 
모든 일의 끝을 기독교로 갖다 대는 '기승전敎'의 단편적이고 한심한 논리는 
저 자가 대체 무슨 논리로 '주필'씩이나 한 건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 게으른 이 민족에게 근면하라고 깨우친 것은 기독교다.
- 소련의 붕괴는 레이건이 고르바초프를 선교했기 때문이다.
- 미국이 쇠퇴하고 있는데 그 뒤 하나님이 쓰실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이건 뭐, 거의 과대망상 수준이다.


문제가 됐던 발언 외에도 거슬리는 표현이나 사고의 수준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추려보면 이렇다.


- 나라라는 건 비행기의 1등석이냐 3등석이냐와 같다. 어느 자리에 앉아있느냐에 따라 대접이 다르다.

(나라의 존재 가치를 외부로부터 대접받기 위한 수단 정도로 보고 있음)


- 구한말 서양 선교사들이 바라본 조선은 더럽기 짝이 없는 나라였다. 깨끗한 일본과 비교됐다.
(해외 선교사들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은 배제함. 구한말 조선에 대한 평가를 전적으로 

 서양 선교사의 시각에 근거함)


- 고종과 민비는 백성을 돌보지 않고 왕실만 돌봤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 일이 없다.

(당시 왕실의 무능도 있지만 헤이그특사 파견 등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한 노력도 깡그리 무시. 

 그냥 무능한 걸로 결론)


-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비싼 돈 들여 외국 유학 가서도 문학이나 공부하고 있었다.

(인문학 경시. 그래서 이런 천박한 철학이 공공연히 나도는 거야)


- 우리 경제가 발전한 건 우리가 만든 공산품을 미국이 사줬기 때문이다.

(필요에 의해 수출과 수입을 하는 국제 경제 원칙을 무시하고 미국이 적선해서 잘 살게 됐다는 식으로 호도) 


- 북한 아이들 어릴 때 잘 못 먹어 자라서도 저능아 된다. 통일 뒤 이 저능아들 어떻게 먹여 살리냐.

(저능한 발언. 통일을 북한 먹여 살려야 하는 일로 인식함)


- 영국은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됐었다 지금은 망했다.

(ㅋㅋ 영국이 망하긴 왜 망하냐. 제국주의국가 그만 두면 망한거냐?)


그의 강연 가운데 동의할 수 있었던 게 딱 하나 있었다. 

기독교의 개혁을 주문하며 강연 말미에 인용한  어떤 목사가 했다는 말,
"지금 예수가 넝마를 입고 한국에 나타난다면 한국 교회는 그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내가 한국 교회 얘기하면 늘 하는 말인데, 바로 이거다.
이런 강연하는 수준의 기독교인이라면 넝마 입고 나타나 기득권층을 비판하는 예수를 일컬어
"종북"이라고 할 게 분명하다. 


한 시간 넘게 보면서 내내 거북했던 것은 이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설교 문화인데,

가끔 반려자 따라 교회 갈 때마다 느끼지만, 이거 폭력이다. 

듣는 사람들은 그저 일방적으로 수용할 뿐이다.
토론? 반박? 의견 개진? 소통?
이런 거 기대할 수 없다.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읽을 수 없는 교인들에게 독해를 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중세 시대의 교회 문화가 21세기에 횡행하는 거,
이런 거부터 뜯어 고쳐야 개혁인지 뭔지도 되는 거 아니겠냐.
일방적으로 마이크 쥐어주고 맘 편히 떠들게 하니 이런 망언도 막 비집고 나오게 된 거 아니냐.
문창극이 이런 참극을 빚게 된 것은 교회 문화에도 책임이 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하나님께 이 나라를 위해 드릴 기도의 주제로  제안한 것들 가운데 마음에 와 닿는 게 있었다.


"좋은 지도자를 달라"


제발 좀 달라. 문창극 같은 이를 주지 말고. 쫌!


calvin.

Posted by the12th
떠듦2011. 3. 16. 17:20


 재앙은 혼자 오지 않았다. 지진은 해일을 불렀고, 해일은 인명·재산 피해와 함께 원전 사고를 불렀으며, 곧이어 물자 부족사태를 일으켰다. 일본이 홀로 오롯이 이 몇 겹의 재앙을 감당해 내고 있지만, 사실 재앙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이 마주한 이번 재앙은 우리에게 머잖아 닥칠 일들이다. 그들이 오늘 겪고 있는 저 재앙들은 모두 우리의 미래다. 

 일본에게는 유례 없는 대지진의 형태로 나타났지만, 이미 몇 년 째 전지구적으로 모든 종류의 재난들이 과거의 데이터를 무색하게 할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태풍이 와도, 기상 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최악의 상황이 빚어져 왔다. 그 얘기는 예측 범위를 넘어선 재난이 닥쳐 와도 더 이상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란 뜻이다. 그동안 지진 안전 지대로 자신해 왔던 우리나라에 지진이 나지 말란 법이 없단 뜻이며,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슈퍼 태풍이 와 모든 것을 쓸어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황사가 땅 위에 소복이 쌓이는 상황도 충분히 가능해졌다. 몇 년 째 주목 대상인 백두산이 용암과 화산재를 날리며 북한의 땅과 남한의 하늘을 검게 뒤덮게 될 일도 이제 시간 문제이게 생겼다. 

 일본을 덮친 더 심각한 재앙인 방사능 누출 역시, 원자로 21기를 안고 있는 우리에게 그저 '바다 건너 불 구경'이 아니다. 원자력은 애저녁에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의 효용 덕분에 통제 불능 시의 위험을 안고 써먹을 수밖에 없던 에너지원이었다. 누구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자력의 위험에 대해 알고 있었다. 다만 통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 뿐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는 한 사람의 실수로, 이번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자연재해로, 불과 몇 %의 확률 때문에 발생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몇 %의 위험성이 현실화 되는 순간 재앙의 규모는 단지 몇 %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피해는 일본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고 또 현 세대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며 나아가 인류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방사성 물질은 그렇지 않아도 더딜 수밖에 없는 구조 복구 작업을 가로막아 이번 재난을 더 키우고 있다. 

 일본을 더 힘겹게 하는 물자난 또한, 머잖은 미래에 우리에게 닥칠 일이다. 주유소에 길게 늘어선 차량의 줄, 서너 시간을 기다리고도 10여 리터밖에 주유하지 못하는 상황, 바닥 난 편의점의 음식 매대, 곳곳에 펼쳐진 배급 행렬은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아온 현대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석유 고갈이 얼마 남지 않은데다, 이상 기후와 경작지 감소로 인해 세계 식량도 조만간 부족 현상을 빚게 될 텐데, 오늘의 일본 풍경은 그 때 우리의 모습이 될 것이다. 아니, 일시적으로 보이는 오늘의 일본 모습보다 어쩌면 항구적인 문제가 될 미래의 우리에게는 고난이 더 깊고 강할 것이다. 지금의 일본인들처럼 우리가 질서정연하게 그 상황을 마주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일본이 오늘 겪고 있고, 머잖아 우리가 다시 겪게 될 세 가지 재앙은 모두 인간이 자초한 일이다. 지구 기후와 환경에 교란을 일으켜 시스템을 벗어난 자연 재해를 불러온 것은 인간이었다. 원자력이라는 위험한 에너지를 만들어 손 위에서 가지고 놀고 나아가 무기까지 만든 것 역시 인간이었다. 유한한 자원에 대해 구체적 계획을 마련하지 않고 풍요로운 시대를 맞아 마냥 소비하고 즐기기만 하면서 결국 고갈의 시대를 마주하게 한 것 역시 인간 자신이었다. 스스로 자초한 디스토피아에서 우리는 어떤 눈물을 흘리게 될까. 두려움에 몸서리가 쳐지는 요즘이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