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들린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03.12 [애니] 그 때는 몰랐지 2
만끽!2007. 3. 12. 23:54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때는 모른다. 자기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다만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알 뿐이다. 부러 아니라고 부정하며 고개를 젓는 그 때는 모른다. 자신이 다름 아닌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93년 TV 장편 <바다가 들린다>는 말로 전하지 못한 애틋한 마음들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아닌 듯 서로에게 이끌리는 고등학생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를 너무나도 섬세한 터치로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두 주인공이 하는 행동과 말의 의미를 이미 다 안다는 식으로 성큼성큼 펼쳐놓지 않는다. 그저 그 때 그들이 서로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드러낸 마음만큼만, 아주 고운 결로 지긋이 내 보여줄 따름이다.

 그래서 조금만 둔감하면, 이 애니메이션은 아무런 재미가 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 처음 본 그 때는 나 역시 몰랐다. 겉보기에 주인공들은 그저 서로를 싫어하고 갈등하고 반목하고 끝내 멀어지고 말 뿐이기 때문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놀랍게도 아무 얘깃거리도 안 될 것 같은 이런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선을 건드리면서 빛을 낸다. 그 미세한 감정의 흐름을 포착하는 것이 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진짜 재미다.

 고등학생 모리사키 타쿠는 전학생 무토 리카코가 못마땅하다.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마츠노 유타카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것도 그러하고 도쿄에서 전학왔다 해서 도도하게 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제멋대로 구는 것도 도무지 신경에 거슬린다. 뭐 저런 애가 다 있어, 하는 마음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리사키는 정작 무토가 하는 부탁을 거절하지는 않는다. 거금을 선뜻 빌려주기도 하고, 대책없는 도쿄행에 함께 오르기까지 한다. 이상하긴 무토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마츠노를 놔두고 하필 모리사키에게 어려운 금전적 부탁을 한다거나, 의심사기 좋게도 모리사키와의 1박 2일 도쿄행을 한다거나 하는 '이상한' 행동들을 반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그러면서도 평소엔 또 쌀쌀맞기가 얼음장이다. 도통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모리사키는 자신의 행동이 가진 의미를 알지 못한다. 아니, 일부러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또 무토가 자신에게 하는 이상한 행동의 의미 역시 부러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무토는 그저 자신이 절대적인 믿음을 주는 마츠노가 좋아하는 여자라고 미련한 확인을 거듭할 따름이다.

 완벽하게 속였다고 생각했지만, 속은 건 모리사키 자신 뿐이었다. 마츠노조차 무토가 모리사키를 좋아한다는 것 쯤은 알게 됐으니 말이다. 자신을 기만한 끝에 남은 건 오해와 애틋함 뿐이다.

 다행히 애니메이션은 후일담까지 책임져 준다. 도쿄로 대학을 간 모리사키는 결국 자신의 마음을 인정한 순간, 다행스럽게도 도쿄의 한 전철역에서 무토를 만난다. 이번에 그는 그녀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녀 역시 그 전처럼 마음에 없는 행동을 부러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시간이 지난만큼 성숙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제는 또렷이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 때는 몰랐던 자신의 마음을, 또 상대방의 소중함을 말이다.

calvin.

★★★☆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