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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10 [음반] 노엘의 마스터플랜?
만끽!2011. 3. 10. 17:49














 무려 14년을 오아시스 팬으로 살아왔건만, 그룹 해체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난 어쩐 일인지 그냥 담담했다. "기예 올 것이 오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4집 이후부터 어딘지 임팩트가 떨어진 그들의 음악에 더 이상 이전만큼의 전율을 느끼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했으면 충분히 해먹었다"는 마음도 들었다. 한마디로 해체에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난 스스로 오아시스와 '영원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오아시스 공식 홈페이지에도 발길을 끊었고 오아시스 팬카페에도 드나들지 않았다. 재결합을 아주 조금 기대하긴 했지만,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설사 재결합을 한다 해도 그닥 반가울 것 같진 않았다. 오아시스는 여전히 내 스마트폰 음악 폴더에 가장 많은 곡을 차지하는 '나의 밴드'였지만, 그건 그동안 남긴 노래들로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겼다. 비틀즈처럼, 추억 속의 찬란한 밴드로 남기기로 했고, 또 그걸로 내게는 충분했다. 

 해체 이후 그들의 후일담에 관심을 완전히 끊었으니, 새로운 밴드 조직설을 들었을리 만무했다. 그러니까 내가 '비디 아이'라는 낯선 이름의 밴드 얘기를 알게 된 건 이들의 내한 공연이 확정된 다음 일이었다. 매체에는 한결같이 "노엘 없는 오아시스"라는 수식어를 달고 이들의 내한 공연 소식을 전했다.
 
 "노엘 없는 오아시스"라고? 오아시스의 전성기 시절, 그러니까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그건 성립될 수 없는 말이었다. 노엘은-만화 <이끼>의 표현을 빌자면-오아시스의 시작이고 끝이다. 그는 심지어 오아시스의 시작과 끝을 있게 한 스페셜 원이다. 다른 밴드의 카피곡을 가지고 변죽이나 울리던 리엄의 The Rain이라는 '패거리'를 비로소 번듯한 록 밴드로 만든 건 노엘의 작곡이었다. 그러니 "노엘 없는 오아시스"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말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말이다.  

 기사를 보며 난 "노엘 없는 오아시스"라는 말에 왠지 더 솔깃해졌다. 아니,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3집 <Be Here Now> 까지만 해도 노엘의 지배력은 상당했다. 그렇지만 그 뒤, 오아시스는 더 이상 노엘의 밴드가 아니었다. 그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 다른 멤버들에게 곡을 쓰도록 해 앨범에 반영했다. 여전히 타이틀 노래는 노엘의 몫이었지만 그의 앨범 내 비중은 점점 줄어들었다. 덕분에 마지막 앨범에서 멤버들의 기여도는 거의 균형을 이뤘다.

 "노엘 없는 오아시스"라는 말은 그래서 성립 가능할 수 있었다. 특히 싱어 송 라이터로서 리엄의 성장을 지켜 봐온 사람이라면 도리어 "노엘 없는 오아시스"에 설레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정규 앨범 <Dig Out Your Soul>에서 베스트 트랙은, 노엘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리엄이 작곡한 'I'm Outta Time'이었다. 'Little James'에서 그저 귀여운 작곡 재능을 보였던 리엄이 어느새 노엘을 위협하는 작곡자로 폭풍 성장을 하고 만 것이다.  

 노엘의 카리스마 속에서 세션처럼 보였던 겜 아처나 앤디 벨의 뮤지션으로서 능력 역시, 오아시스의 근작을 살펴보면 무시할 일이 아니다. 노엘의 압도적인 포스에서 벗어난 멤버들의 재능이 어떻게 활개치며 뛰놀지를 지켜보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그들 역시 노엘의 그림자 없는 새로운 밴드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을까? 제목에서 어떤 종류의 결기가 느껴지는 비디 아이의 첫번 째 앨범<Different Gear, Still Speeding>은 "노엘 없는 오아시스"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감을 충족시켜 준다. 가슴에 착착 감기는 감성이나 풍요로운 멜로디는, 아무래도 천하의 노엘이 없느니만큼 떨어져 보이지만, 대신 비트감이 강조돼 있다. 마치 '태초의 락앤롤'로 한 발 더 들어간 느낌인데, 'Beatles And Stones'의 가사를 보면 이들이 비디 아이로 나서면서 새출발의 의지를 어느 지점에서 다지는지 알 수 있다. 

 공연장에서 방방 뛰며 따라 부르는데 제격일 것 같은 'Four Letter Word', 'Bring The Light', "Beatles And Stones' 'Standing On The Edge Of The Noise'는 신나고 경쾌해 'Cigarettes and Alcohol' 'Rock'n' Roll Star' 'Morning Glory'와 견주어 모자람이 없다. 

 나름의 서정성을 강조한 트랙들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The Roller' 'Kill For a Dream' 'The Morning Son' 'The Beat Goes On' 등의 노래들이 그러하다. 특히 'The Beat Goes On'은 듣다 보면 좀 울컥한 마음이 든다. 건방지고 성격이 지랄맞아 보이는 (또는 그렇게 알려진) 리엄이, 마치 오아시스 해체 직후 "형아 없이 밴드를 잘 해나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며 지은 것만 같은 가사 때문이다. 저간의 마음 고생도 담겨 있는 것 같아, 멜로디는 좀 설익었지만 마음을 울린다.

 리더였던 노엘의 갑작스러운 해체 결정으로 졸지에 공중분해 될 줄로만 알았던 이들은 오아시스의 배경을 지우고 다시 무대에 선다. 비디 아이를 보는 노엘은 어떤 심정일까? 이들의 결합을 예측하지 못했을까? 또는 "나 없이 밴드가 될 줄 알아?"라며 이들의 실패를 예견할까? 난 그동안 노엘이 꾸준히 오아시스에서 나머지 멤버들의 비중을 끌어올렸던 점을 생각해 본다. '영원'이 없으리라는 점을 알고 있는 노엘은 언젠가 자신들이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특히 철없는 막내 동생 ("our kid") 리엄이 자기 없이도 당당히 홀로 설 수 있는 뮤지션이 되길 바랐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어쩌면, 비디 아이는 노엘이 오랫동안 구상했던 계획이 아니었을까? 자기 없이도 위대할 수 있는 밴드를 그는 일찌감치 구상하고 계획하고 훈련시켜 실행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어디선가 흐뭇하게 웃으며 비디 아이를 바라볼 노엘 갤러거를 생각하니 'The Masterplan'의 가사가 떠오른다.

"Will dance if they want to dance
Please brother take a chance
You know they're gonna go
Which way they wanna go..."


☆ the best track : The Roller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