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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3 [음반] 그는 전설이다. 2
만끽!2011. 4. 23. 22:18
















 다시 서태지와 아이들을 듣는다. 그의 이혼 소동에 옛 생각이 간절해졌다. 돌이켜 보면 정말 대단한 시절이었다. 그건 하나의 '시대'였다. '서태지 시대'. 서태지는 한국 가요계에서 자신의 시대를 만든 마지막 인물이다. 그 이후로 수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기획돼 10대들의 마음을 휩쓸었지만, 단언컨대 자신만의 시대를 만든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이 아이돌 그룹들이 파이를 나눠 먹는 군웅할거 시대 또는 전국 시대라면, 서태지가 있던 시절은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제국 시대였다. 서태지는 그만큼 위대했다. 그가 만든 자신의 시대로 인해, 한국 가요판은 서태지 이전과 서태지 이후로 나뉘게 된 정도니 말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낸 정규 앨범들은 어디선가 집계한 '한국 가요 명반 100선'에 모두 등재될 정도의 완성도를 갖고 있지만, 난  콕 집어 2집이 '아이들' 시절 그의 베스트였다고 생각한다. 너무 폭발력이 강한 바람에 오히려 다소 그의 실력에 물음표를 품게했던 1집 이후, 그의 본 실력이 비로소 드러나는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미리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두고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데뷔 앨범과 달리, 데뷔 앨범 성공 뒤에 내놓게 되는 2집은 여러 난관이 예정돼 있게 마련이다. 쏟아지는 기대감, 제한된 시간, 1집을 능가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 등으로 2집을 끝으로 무대를 떠난 이들도 숱하게 많다. 서포모어 징크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서태지 역시 2집에서 그의 본 실력이 나올 것이란 기대를 받았고, 그래서 아마도 부담감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었다.

 2집 발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교실에서 그의 2집 앨범을 들었다. 이제나 저제나 발매를 하나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중 갓 나온 따끈따끈한 테이프를 교실의 어떤 녀석이 교실로 들고 왔고, 여러 친구들이 모인 가운데 카세트 플레이어를 통해 들었던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때의 그 생경한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여가'의 그 익숙하지 않은 멜로디와 박자가 엇나가는 랩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상한 노래였다. 난 서태지가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도 화려한 1집으로 끝나고 마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하여가'는 첫 인상으로 먹고 들어가는 그런 노래가 아니었다. 이 노래는 마치 숙성된 장맛처럼, 듣고 또 듣고 되새기고 직접 흥얼거리고 따라부를 때 제 맛이 나는 노래였다. 심지어 중독성이 강했다. 나와 함께 그 노래의 첫 인상에 인색한 평가를 내렸던 녀석들은 언제부터인가 모두 그 노래를 반복해 듣고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첫 인상에서 그 노래의 포로가 되는 과정을 겪으며 서태지에 대한 믿음은 굳건해졌다. 대중성에 영합하지 않고 대중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간 그의 곡 전개에 감탄이 터져나왔다. 실력에 대한 논란을 제기하는 것은 더이상 무의미했다. 그는 최고를 인정받았다. 그의 시대는 그 이후 탄탄대로를 걸었다. 물론 이후 앨범들의 완성도도 모두 격찬을 받을 만 했다. 

 그렇게 감수성 여리던 10대 시절을 그의 노래가 가득한 그의 시대 속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그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다. 그가 무엇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난 전폭적인 지지를 해 줄 자세가 되어 있다. 그의 과거, 행적, 발언 모두 수긍할 수 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이 됐든 모두 용서받을 수 있고, 모두 납득될 수 있으며, 모두 인정받을 수 있다. 그는 서태지니까. 그는 진정한 의미의 '우상'이니까. 그는 노래로 자신의 시대를 만든, 전설이니까 말이다.

 그의 노래를 다시 듣다보니, "가수는 자기 노래와 같은 인생을 산다"는 속설이 새삼 되새겨진다. 그땐 왜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까? 그의 노래에 이별 노래가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난 알아요'도 이별 노래고 '하여가'도 이별 노래다. 비교적 빠른 템포의 댄스 노래라서 미처 느껴지지 않았을 뿐, 노래들에 한결같이 이별의 페이소스가 넘쳐난다. 그의 밝은 사랑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그만 이별 이야기부터 전해듣게 돼 안타깝기만 하다.

☆ the best track : 하여가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