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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21 살과의 권투 14
얄라리얄라2007. 9. 21. 13:19
영화 <주먹이 운다> 중에서

영화 <주먹이 운다> 중에서


 밥이래 봐야 기껏 하루에 두 끼밖에 안 먹고, 밤에 약속을 잡을 수 없어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데 배 둘레에 자꾸 '햄'이 끼는 걸 보니 이건 아무래도 '잠살'인 게 분명하다. 어느 날 비교적 몸에 들러붙어 몸통 라인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셔츠를 입고 거울을 봤다 기겁을 하고 말았다. 어린이 시절부터 함께 해온 뱃살은 '숨 최대한 곱게 쉬기'로 어떻게 감출 수가 있다지만, 옆구리에 불쑥 튀어나와 늘어진 살은 아무래도 어쩌지 못하겠는 거다.

 운동은 내근부서 들어오면서 진작 세웠던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그게 3일짜리로 끝나고 말았던 건, 순전히 운동하러 가야하는 곳이 멀었던 탓이었다(고 난 주장한다). 땀 흘리러 운동하러 가는건데, 가는 동안 땀 흘리고 오느라 땀 흘리는 게 참 번거롭다고 생각한 거다(고 난 둘러대 본다). 좀 아이러닉하긴 하지만, 운동하러 가느라 몸을 움직이는 게 상당히 귀찮았던 셈이다(고 변명한다).

 다시 운동의 필요성을 느꼈을 때 '권투 체육관'을 찾은 건 오로지 그 한 가지 이유때문이었다. 챔피언벨트에 대한 욕심은 커녕 주먹질에 대한 열망조차 눈꼽만큼도 없었지만, 막상 운동을 이제는 정말로 해야겠다고 생각하자 집에서 2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동네 권투 체육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피트니스 클럽은 아무래도 좀 멀고, 그냥 건대 운동장에서 뜀박질만 하기도 좀 그렇고, 무언가 동기 부여를 주기까지 하면서 땀을 흘릴 수 있는 곳으로 이 체육관은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내가 권투 체육관에 기대한 것은 '권투'라기 보다는 '체육관'이었던 것이다.

 권투 체육관에 들어서자 진작 예상했던 예의 그 퀴퀴한 냄새가 나를 반겼다. 사람이 운동하는 냄새다. '사각의 링'이 있었고 마룻바닥이 있었고 샌드백과 펀치볼이 있었고 각종 운동기구들이 있었으며 3면을 둘러싼 거울이 있었다. 젊은 친구 서넛은 각자 운동을 하고 있었다. 주먹이 이따만하고 앞니 하나가 부러진 채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반기던 사범님은 입관비와 한 달 회비를 내자 한결 더 순박해진 웃음으로 나를 대했다.

 체육관에는 쉴새없이 공이 울린다. 3분마다 한 번 씩, 그리고 다시 30초마다 한 번 씩이다. 1라운드는 3분이고 시합이 아닌만큼 쉬는 시간은 30초라는 얘기다. 여기선 따라서 모든 시간 관념이 "라운드"로 통칭된다. 초기 운동은 스트레칭-줄넘기-스트레이트-윗몸일으키기-스텝밟기-근력운동-줄넘기 순으로 진행되는데, 각각 정해진 시간이 있다. 첫날엔 각각 2라운드 씩만 했지만 보통은 줄넘기 3라운드, 스텝밟기는 7라운드를 뛰어야 한다. 1라운드의 3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그 시간동안 뛰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30초가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 역시 곧 3분을 뛰게될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정해진 운동 순서와 정해진 시간이 있다 보니 적당히 한 시간만 하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기본적인 운동만 해도 1시간 30분은 꼬박 하게 된다. 줄넘기든 스텝밟기든 쉴새없이 뛰는 운동이기 때문에 애초 내가 운동을 시작한 기대에도 부응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옛날 옛적 선수 키워낼 때처럼 엄격하진 않더라도 사범님이 수시로 자세를 체크해주는 등 잔소리를 하기 때문에 조금 힘들다고 그만두게 되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몸 움직이기 싫어하는 나에겐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관건은 꾸준함이다. 일단 6개월정도 다니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데, 주먹질에 욕심이 없다손 치더라도 꾸준히만 하면 신인왕은 아닐지라도 스스로에게 작은 타이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기 보호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은, 차라리 덤일 것이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