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음악'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03.24 [음반] 가장 인디적인 밴드 3
만끽!2012. 3. 24. 18:17


 최근 4개월 여 동안 귀에서 뗄 수 없는 음악이 있었다. 그 동안 고대하던 노엘 갤러거의 신보도 마침내 나왔고, 한 번 중독되면 헤어나올 수 없는 카사비안의 새 앨범도 있었지만, 이들을 제치고 내 귓전을 맴도는 음악은 정작 따로 있었다. 오는 29일 정식 앨범을 발매할 예정인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들이다. 그것도 정식 음원이 아닌, 일종의 부틀렉 트랙들이다.

 케이블에 공중파에, 이 코딱지만 한 나라에서 너도 나도 오디션 프로그램의 장을 펼쳐놓고 있는 상황이고 보니, 사실 숨은 인재들은 이제쯤이면 고갈됐음직 한 상황이다. 제 아무리 이른바 '악마의 편집'으로 오디션프로그램을 국민 예능의 범주에 올려놓은 슈퍼스타K의 세 번째 시즌이라 해도 그래 보였다. 시즌3 의 뚜껑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허각이나 장재인, 존박, 강승윤과 같이 임팩트 있는 참가자가 보이지 않았다. 이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래도 명민하게 참가 대상을 그룹으로까지 넓혀 공급 고갈의 한계를 뚫고자 했다. 매력적인 솔로가 크게 줄어든 대신, 그동안 이 무대에서 선보일 수 없었던 매력적인 그룹과 밴드들이 그 자리를 메워 버렸다.
 
 특히 위암 투병 중인 리더의 사연으로 심사위원단과 시청자 대중의 관심은 울랄라세션으로 쏠려버렸다. (물론 그들의 퍼포먼스 자체는 훌륭했다. 냉정한 시장에서까지 먹힐지는 좀 더 두고봐야겠지만.) 울랄라세션과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없었다면 슈퍼스타K 시리즈는 기존의 명성을 까먹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울랄라세션의 절대적인 지위로 다소 싱겁게 끝날 것 같던 이 프로그램은 그러나 의외의 복병을 만난다. 버스커버스커다. 이 밴드는 좀 특이한 케이스다. 장범준의 보컬은 사실 이런 식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살아남기에는 역부족이다. 음역대가 협소한 점은 고음을 높이 구사하거나 시원하게 내지르는 창법을 즐기는 한국 시청자들의 정서에 어필하기 어렵다. 좁은 음역대에도 특유의 중저음 음색으로 주목받았던 존박이 있었지만, 장범준의 보컬은 존박보다도 뛰노는 영역이 좁아 보였다. 그렇다고 이 밴드가 Top밴드의 출전자들처럼 연주실력으로 먹어주는 것도 아니다. 특별히 뭐 하나 도드라지게 잘 하는 것 같지 않은데, 버스커버스커에는 이상하게 끌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그들에겐 있었다.

 좁은 음역대의 가수는 가수로 생각하지 않아서 난 존박의 경우를 좀 모질게 싫어라 했을 정도였지만, 이상하게 버스커버스커에게는 호감이 갔다. Top10에서 떨어지기 전부터 일찌감치 난 그들을 응원했는데, 그들의 매력을 알아챈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모양인지 그들은 기예 이 프로그램의 준우승을 차지했다. 울랄라세션이 사실상 Top10 경연 때부터 1위를 도맡아놓은 상태였음을 감안한다면, 준우승은 사실 버스커버스커가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성적이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난 뒤에야 난 알았다. 그들이 갖고 있던 묘한 매력이 어디에서 온 것이었는지를. 그들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다가 그들의 자작곡들을 접하게 된 거였다. 이미 만들어놓은 곡 수만 70여 곡에 이른다는 소문도 놀라웠지만, 골방 또는 길거리 공연 중 녹음된 음원으로 만난 그들의 노래는 기대를 초월했다. 이런 음악을 만들어 부르는 놈들이었다니,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보였던 매력은 은연 중에 나오는 자신감이랄까 여유 같은 것이었던 게 분명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음원들은 정말 듣기 힘들 정도로 음질이 후지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안 들을 수가 없다. 왜냐면, 그런 음질의 음원밖에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음질을 충분히 감수하고서라도 들을 수밖에 없는 마력이 그 노래들에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사랑이란 게'나 '첫사랑', '꽃송이가', '담배', '비글', '외로움 증폭장치', '향수', '벚꽃 엔딩송', '여수 밤바다' 등의 노래들은 지금껏 들어볼 수 없었던, 독특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특별한 노래들이다.
 
 장범준의 보이스에선 언뜻 김광석의 체취가 느껴진다. 음역대가 좁은 건 아쉽지만, 그는 울림을 주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장범준과 버스커버스커에게는 또한 비틀즈나 서태지의 그림자가 보인다. 숨겨진 옥석과 같은 느낌, 반짝이는 천재성, 그리고 대중에 어필한다는 점이 그렇다. 실제로 이른바 엘리트 집단이라 할 수 있는 심사위원들이 Top10에서 떨어뜨렸던 그들을 결국 준우승에까지 오르게 만든 건 오롯이 시청자 대중의 힘이었다.

 '버스커버스커'는 사실, 장범준이 천안에서 만든 길거리 문화 공연 회사 이름이다. 장범준은 서울을 벗어난 지방 도시에서도 거리 공연 문화를 뿌리내리겠다는 생각을 한 진취적인 젊은 음악인이었다. 그의 생각은 "왜 거리 공연을 하려면 서울 홍대 앞으로 가야만 하나"에서 시작됐다. 처음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전을 하게 된 동기도 어쩌면 자신들의 활동을 알리기 위한 홍보의 일종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장범준과 버스커버스커는 가장 인디에 가깝다. 그들은 이른바 지방대학교 출신에 지방 중소도시의 밴드다. 인디음악의 대명사인 홍대씬은 어느새 이 바닥의 메이저가 되었다. 누구나 인디 음악을 하려면 서울로 와야 하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그런 사이 홍대 씬은 오버그라운드에서도 꽤나 먹히는 밴드들을 배출해 내기도 했다. 그 가운데는 서울대 출신의 리더가 있는 브로콜리 너마저도나 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메인스트림이 고향인 인디 밴드들도 있다.  

 버스커버스커가 주목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인디 중의 인디, 언더 중의 언더에 있던 그들이, 이제 막 오버 그라운드에서 진검승부를 걸어 보려고 하고 있다. 29일, 그들의 음반 발매일이 정말 기다려진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