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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24 욕망의 아노미 2
떠듦2008. 4. 24. 00:23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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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은 이성의 영역이 아니다. 인간 속에 있는 다채로운 욕망은 끊임없이 밖으로 나오려 꿈틀댄다. 그것은 존재에 내재한 아주 기본적인 욕구, 식욕이나 성욕같은 것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안에서 만들어진 욕망, 그러니까 권력을 향한 것이라든가 부를 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욕망은 일정한 수준에서 만족돼야 하지만, 또한 동시에 적당히 제어도 돼야 한다. 욕망의 해소 의지는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욕망의 제어를 포기하는 순간, 인간 사회는 동물의 정글과 다를 바 없는 곳이 되고 만다. 그것은 인류가 질서를 만들고 국가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의 기본 인식은 이전까지 과도한 규제가 경제 성장을 가로막아왔다는 데 있다. 그래서 집권하자마자 정부 조직 개편을 단행해 정부의 규모와 역할을 대폭 줄이고, '기업 친화'를 내세워 각종 규제를 하나씩 하나씩 무장해제시킨다. 대통령이 기업인 출신이라는 점을 보면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이윤을 좇는 기업인이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끔 만드는 규제를 싫어하게 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속성일테다.

 사실은 그게 유권자가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통령으로 "CEO" 출신을 선택했을 때 간과한 지점이다. 아주 단순한 도식으로, 기업 최고 경영자로서 일정한 성취를 일군 사람이니 '국가 경영'도 효율적으로 잘 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는 기업 경영과 달리 정부 운영에는 이른바 '공익'이라는 것을 주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다.

 '공익'은 '사익'과 충돌한다. 무조건 남들보다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경제 주체로서의 무한 욕망이 '사익' 추구에 닿아 있다면, 정부가 추구해야 하는 '공익'은 다름 아닌 '규제'로 그 욕망을 적당한 선에서 제어함으로써 확보된다. 말하자면 '규제'라 불리는 건,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을 위한 관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령 출자 총액 제한 제도 등 이번 정부가 풀어주고 있는 각종 재벌 규제들은 기업의 투명성을 확보해 국가 경제를 건강하게 하고, 동시에 실력있는 중소 기업들이 재벌 대기업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다지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 쯤에 불과했다. 재벌에게 '자율'을 주겠다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그걸 풀어 버리겠다는 건 재벌의 욕망을 방치하겠다는 뜻이고 빈부 격차를 더 넓히겠다는 의지다. 경제 성장을 위해 '규제'를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여기는 그 머릿 속에서, 정작 시장 주의를 훼손하는 가장 큰 죄악이 독과점이라는 사실은 망각되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정부의 기본 인식이 경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른바 '학교 자율화 조치'도 마찬가지다. '자율'을 전면에 내세웠으나, 막상 교육 주체가 되어야 할 학생들에게는 자율이 보장되지 않는다. 정부가 보장하는 자율은 무한 경쟁을 위한 자율이고 나아가 '교육 시장'을 위한 자율일 뿐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교육은 그저 알고 배우는 순수한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신분 상승의 수단이고, 혹은 계급 유지를 위한 수단이다. 쉽게 말해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세속적인 도구다. 말할 나위 없이, 욕망의 대상이다. 교육에 굳이 '규제'를 통한 관리가 필요했던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 관리를 더이상 않겠다는 것은 국가로서의 기능에서 손을 떼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부동산을 오롯이 시장에만 맡길 수 없고 정부가 적절히 관리해야 하는 까닭도 그렇다. 부동산이라는 것이 막대한 부를 안겨줄 수 있다 보니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의 크기가 이성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수준으로 이미 커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전면 개방되는 문제도 그렇다. 광우병 위험성을 자각한다 하더라도 당장 가계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욕망이 앞서게 마련이고, 국민의 건강권을 지킬 의무가 있는 국가가 시장 제한 등으로 제 기능을 했어야 하는 거였다.  

 무조건 풀어주고 '자율'을 보장하는 것이 '자유주의'이고, 그로 인해 모두 알아서 잘 돌아가는 것이 경제 회복의 길이라고 여기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그런 발상은 도리어 욕망의 고삐를 풀어 인간 사회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돌려 놓는 최악의 상황을 불러올 뿐이다. 결국 있는 자는 더 가지게 되고, 없는 자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다. 잘 해봐야 부자들이 신나게 이윤을 챙기는 과정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에나 만족해야 할 것이며, 잘 살고 못 사는 게 상대적인 조건이라는 점을 잘 안다면 국민 대다수가 느끼는 체감 경기는 오히려 더 나빠질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경제를 살려 달라"며 이명박을 선택한 투표자 다수가 기대했던 '신세계'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