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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4.25 [음반] 좋아 죽겠네, 아주 그냥
발자국2009. 11. 10. 01:03
 축제는 즐기라고 있는거다. 주말이 무료한 '우리'에겐, '즐거운' '축제'가 필요했다.


 여름의 축제는 '지산 록 페스티벌'이다. 축제의 마지막 날 라인업은 장기하와 얼굴들, 언니네이발관, JET 그리고 Oasis. Oasis만으로도 사수해야 할 축제인데, 인생에 딱 한 번 올까 말까 할 환상의 라인업이라니, 이를 어찌 포기하겠나. 부랴부랴 차를 끌고 가 진땀 빼며 주차를 하고 난 뒤 들어갔을 땐, 이미 장기하와 얼굴들이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불러 대고 있었다. '신생' 밴드 치고는 메인 스테이지를 장악하는 무대 매너가 훌륭하다. 정말 물건은 물건이다. 조오타!


 메인스테이지만 주구장창 지키고 있으면 되려나 했는데, 아뿔싸, 언니네이발관은 옆에 마련된 규모가 작은 그린 스테이지인가 하는 데에서 공연을 한다고 한다. 여기는 주로 인디밴드 등의 공연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감칠맛나는 공연들이 많아서 여기서만 죽때리고 있어도 심심하지 않겠다 싶긴 하더라만, 메인 스테이지의 라인업이 너무나도 빵빵하다. 메인스테이지와의 거리는 뛰어서도 2-3분이나 걸리는 시간. 언니네이발관은 살짜쿵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인이 몰려오는 축제에는 이런 놈들도 있게 마련. 무관심 밴드들의 공연이 있을 때 잔디밭에 퍼질러 누워 낮잠을 즐기고 있었는데, 저렇게 생긴 놈이 와서 저러고 있더란다.



 드디어(!) 만나보게 되는 JET. 마음 같아서는 저 스탠딩 무리와 함께 방방 뛰고 싶었으나, 30대 저질 체력에 홀몸이 아니었던 관계로 멀찍이서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최근 나온 밴드 가운데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밴드였고, 기대되는 무대였으나, 음... 라이브의 위압감은 생각만큼은 아니었다. 역시 이런 큰 무대에서는 경험이 중요한 요소. 더 자라서 단독 콘서트 함 와라. 기다릴게.



 스탠딩은 팔팔한 놈들에게 양보(!)하고, 언덕 배기 벤치 앞에서 신명나는 가락에 어깨 춤만 덩실덩실.... ㅡ,.ㅡ;;;



 JET의 공연이 끝나고 어둑어둑해지자, 사람들이 어둠을 헤치고 하나둘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날의 헤드라이너 공연이 곧 시작할 참이었기 때문이다.


 Oasis는 마치 JET에게 라이브란 이런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 한 정도였다. 이미 두 차례의 내한공연을 섭렵했지만, 록페스티벌에서의 Oasis는 또 달랐다. 신곡 위주로 짜여진 내한공연에서의 셋 리스트와 달리, 그야말로 히트곡 중심의 셋 리스트 역시 흡족했다. 들어도 들어도 즐겨도 즐겨도 목마름이 당최 해결되지 않는 짙은 여운을 남긴 공연이었다. 다음을 기약했으나, 아뿔싸, 이제 그들에게 '다음'은 없다.



 '앵콜 요청 금지'용 폭죽 놀이? Oasis 공연이 끝나기가 무섭게 터지는, 축제가 쫑났음을 알리는 폭죽에 사람들의 앵콜 연호 소리가 묻히고 말았다. 우리도 넋을 놓고 축제의 화려한 끝을 함께 한 뒤, Oasis가 섰던 뜨거운 무대를 슬쩍 뒤돌아 보고는 총총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어, 가을.



  자라섬은 2년 전에도 찾아왔던 곳이다. 나보다는 반려자가 즐겨하는 재즈 축제의 현장. 2년 전 좋았던 기억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생계인이 되다 보니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서야 오게 되는구나...


 마지막 날 첫 공연을 연 전혜림과 친구들. 2년 전에는 재즈도 대중음악도 아닌 듣보잡들이 나와 분위기를 흐렸는데, 오호, 이번엔 처음부터 맛깔나는 음악을 선사해준다.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강단에 선다고. '여우야 여우야'를 응용한 한국적인 재즈 음색을 들려준다.


 
 축제는 밤이 깊어질수록 무르익는 법. 재즈 선율은 어둠 속에서 더욱 흐느적거린다.

 젊은 관객들로부터 가장 큰 호응을 불렀던 재즈 기타리스트 스캇 헨더슨의 베를린 챔버스 트리오. 공연이 끝난 뒤 사인을 받으려고 상당수가 다음 공연을 마다한 채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공연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리차드 갈리아노 탱가리아 4중주. 2년 전에도 반도네온의 탱고 가락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 반려자는 음악에 취해 시종 만면에 웃음을 잃지 않았다.

 리차드 갈리아노의 솔로는 그 가운데서도 백미. 공연 하나로 반해 현장에서 CD를 사려 했으나, 이미 먼저 취해버렸던 사람들이 죄다 사갔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품절된 CD를 재입고 요쳥해 놓고 마냥 기다리는 중...


 마지막 공연이 한 팀 더 기다리고 있었으나, 우리는 서둘러 빠져나왔다. 추위에 지치기도 했고, 한꺼번에 빠져나가느라 길이 막힐 것도 염려됐기 때문이었다. 9월에 하던 축제가 10월로 미뤄지면서 한밤의 추위는 생각보다 견디기 어려웠다. 다시 9월의 선선한 축제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롯데의 스폰서 도배가 지나쳐 보이기도 했지만, 이만한 수준과 규모를 유지하자면 어쩔 수 없기도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라인업이 훌륭해 내년이 또 기대되는 축제였다.

calvin.
Posted by the12th
만끽!2009. 4. 25. 23:55













 이건 뭔가. 1980년대에 태어난 녀석이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행하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런 상황은. 뭐 한 겨-우 초등학생 쯤 되었을 무렵에 기껏 이선희 누나나 알았을 녀석이 신중현이나 산울림, 송골매 같은 노래를 부르고 그 정서를 완전히 포착해 내고 있잖어. 이건 20대라고 하기에는 뭔가 너무 원숙한 게, 어딘가 늙주그레죽죽한 정서마저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걸 또 저항 정신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너무 쿨 한게, 어찌 보면 심하게 자유 분방하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심지어 그걸로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을 이끌어내는 녀석의 등장이라니, 이건 뭐 완전히 별일임에 틀림 없다. 

 처음 웃음을 자아내는 안무의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들었을 때, 난 그냥 별 이상한 놈이 다 튀어나왔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역시 웃음을 자아내는 가사의 '싸구려 커피'를 들었을 때, 난 이 별 이상한 놈이 아주 골때리기까지 하는 녀석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웃긴 걸로 대중의 이목을 어찌 어찌 이끌어 보긴 했으나, 웃음으로 흥한 자 치고 오래 가는 놈 없었기 때문이다. 지루하고 심드렁한 일상에 작은 파문을 줬을 뿐, 그저 스쳐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 앨범을 듣고서야 내가 틀렸다는 걸 알았다. 그가 노래에 심은 것은 개그가 아니라, 일종의 '페이소스'였으니 말이다.

 이들의 노래는 낄낄 거리며 듣다보면 어느새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가령 첫 번째 싱글 '싸구려 커피'부터가 그랬다. 룸펜 혹은 장기 실업자의 처지를 유희적인 가사로 묘사했지만, 거기엔 자학이 섞여 있고 처참한 일상에 대한 비애가 배어있다. 처해진 상황은 비참하기 이를데 없지만 딱이 탈출구라고 할 게 없으니, 그저 자조할 따름이다.

 '싸구려 커피'가 포함된 앨범 <별일 없이 산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사실 '상실감'이다. 하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은 그걸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면 그들은 모던록을 하고 있어야 할 일이다. 대신 장기하와 얼굴들은 그 가슴의 상처를 "별일 없"는 듯 억누르며 환하게 웃는다. 

 앨범의 타이틀 곡인 '별일 없이 산다'는 '포크록'이라는 밴드의 장르에 가장 부합되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몸을 들썩이게 하는 기타 리프에 맞춰, 장기하는 최대한 단호하고 강단있는 보컬로 "별일 없이 살"고 "별다른 걱정 없"고 "사는 게 재밌"고 "하루하루 신난다"고 반복해 강조한다. 하지만 단호하고 강단있을지언정 그 목소리에 환희와 유희는 배어 있지 않다. 메말라 있고 심드렁하고, 심지어 악에 받쳐 있기까지 하다. 강한 긍정은 강한 부정으로 들리는 법이다. 게다가 상대에게 "절대로 믿고 싶지가 않을" 것이라며 작심하고 경고하는 일이라는 게 고작 "별일 없이 산다"는 건, 자신이 할 수 있는 저항이 겨우 그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노래는 자신을 차버린 연인을 향한, 자신의 인생을 망친 상대를 향한, 혹은 위압적인 공권력이나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향한, 소심한 복수로 들린다.   

 "선지자"에게 "완전히 속"은 상실감을 재밌는 가사와 밝은 템포로 전달한 '아무것도 없잖어'나, 서정적인 멜로디에 헤어진 연인을 그리는 가사를 실어 전한 '정말 없었는지', 어깨 춤으로 또 다시 화려한 무대 매너를 자랑하고 있는 '나를 받아주오'도 같은 맥락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완전히 고루한 음악을 완전히 새로운 음악으로서 21세기에 끌고 들어왔다. '싸구려 커피''나를 받아주오'에서는 포크록과 토속적인 타령을 절묘히 결합했던 신중현 음악의 향이 짙게 배어 있고, '달이 차오른다, 가자'에서의 팔을 팔랑거리는 안무는 북한에 보내는 신호였다는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춤을 연상시킨다. '별일 없이 산다'의 창법은 푸석푸석해 묘한 매력을 불러 일으켰던 배철수의 그것이고, '나와' '아무것도 없잖어' '오늘도 무사히'는 한국형 포크록의 전형 산울림의 노래를 제법 쏙 빼닮았다. 

 단지 흘러간 옛 노랫자락을 답습한 것에 머물렀다면, 장기하와 얼굴들은 카피밴드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장기하는 그런 점에서 '온고지신'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친구다. 이건 뭔가 랩이라고 하기엔 뭔가 아니다 싶은, 차라리 판소리의 아니리에 가까운, '싸구려 커피'에서의 인상적인 래핑이나, '달이 차오른다, 가자' 나를 받아 주오'에서의 화려한(?!) 무대 매너는 그가 70년대 노래를 가져 오는 데 있어서 그저 똑 떼어 들고나온 게 아니라 90년대를 관통해 끌고 들어온 것임을 분명히 한다. 70년대 음악을 80대 생이 90년대를 입혀 2000년대에 소개하는 식이다.

 음악과 함께 빛이 나는 것은 노랫말이다. 왜 하필 포크록이냐는 어느 인터뷰에서의 질문에 대해 장기하는 포크록이 우리 말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노래를 듣다 보면 자꾸 입이 들썩이며, 아주 그냥, 마침내 따라 부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the best track: 별일 없이 산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