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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16 인민 스타 2
얼굴2010. 6. 16. 17:32


 일방적인 경기일 것이라는 예상은 틀리지 않았지만, 그래서 재미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북한은 실력이 엇비슷한 아시아 주변국들과의 경기에서보다 실력차가 월등한 상대를 상대로 초인적인 능력을 보이는 팀이다. 그들의 9백 2겹 수비는 약팀이 강팀을 어떻게 조리해야 하는지 그 정석을 보여주었다. 하기사 그리스가 2004년에 그런 전법으로 유럽을 제패하기도 했더랬으니까.

 정대세의 활약 여부가 관심이었지만, 이 경기는 이 남자, 지윤남의 것이었다. 눈여겨 보지 않아서 그렇지, 그는 경기에서 나온 세 골에 모두 등장한다.
 
 첫 번째 실점이었던 마이콘의 골은 명백히 그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오버래핑해 북한 진영의 왼쪽을 침투해 들어가는 마이콘을 놓쳤다. 엘라누가 마이콘에 공을 연결하던 순간 엘라누 앞에 있던 북한 수비수가 지윤남에게 마이콘을 마크하라고 일러줬는데도 지윤남은 마이콘을 쫓아가지 않았다. 그건 그 때 그의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을테고, 뒤에 있는 다른 수비수가 커버할 것이라고 오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윤남의 커버 미스는 그 때까지 완벽했던 북한 수비에 미묘한 균열을 불러왔다. 지윤남이 보인 허점으로 마이콘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킥을 할 수 있었고 그 공은 사각에서 마치 마법처럼 그물망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단언컨대, 그 때 지윤남이 전력을 다해 마이콘의 옆을 따라 붙었다면, 마이콘의 골은 나올 수 없었다.

 두 번째 실점 역시, 지윤남의 수비력에서 비롯됐다. 물론 1차적으로는 길게 넘어온 패스를 논스톱으로 가볍게 터치해 골로 연결한 엘라누의 개인기량이 빛난 결과였지만, 지윤남의 스피드가 수비라인을 허물어뜨리며 순간적으로 빠져들어가던 엘라누만큼만 됐더라도, 엘라누의 자유로운 슈팅은 나올 수 없었다. 지윤남은 마이콘의 골 장면에서 보였던 것과는 달리, 이 때엔 엘라누의 움직임을 정확히 간파해 엘라누가 침투해 들어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전력을 다해 그를 따라 붙었지만, 그만 스피드에서 뒤지고 말았다. 역시 그가 그 때 다소 지쳤기 때문이랄 수도 있고, 또는 팀내 최고령의 나이가 말해주듯 스태미너가 떨어졌기 때문이랄 수도 있다. 이 결승골은, 딱 엘라누와 지윤남의 스피드 차이로 결정되었다.

 두 개의 실점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줬던 지윤남은,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서였는지, 적극적으로 2선 공격에 가담했고, 결국 브라질을 상대로 초 1류급 골을 성공시키고 만다. 박두익 옹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넣은 골보다 최소한 100배는 더 멋진, 기억에 남는 골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그는 큰 자취를 남겼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복근' 때문이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인민 복근' '북한 짐승남' 등의 표현으로 그와 그의 근육을 추앙한다. 이래 저래, 그는 브라질 전에서 가장 인상적인 선수가 되었다. '인민 영웅'까지는 되지 못할지 몰라도, 최소한 그는 전세계 축구팬과 네티즌들 사이에서 '스타'가 되었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