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해당되는 글 15건

  1. 2011.04.13 The Kops의 저주
  2. 2010.06.16 대세의 눈물
  3. 2010.06.16 인민 스타 2
얼굴2011. 4. 13. 15:39


 마이클 오언도 그랬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에서 뛰고 싶다"며 2004년 돌연 리버풀을 떠나 레알마드리드로 둥지를 옮겼다. 리그 우승권에서조차 계속 멀어지는 리버풀은 UEFA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할 수 없는 팀이라고 비난한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오언은 끝내 '빅 이어'를 들지 못했다. 도리어 그가 떠난 이듬해, 오언이 버린 팀 리버풀이 UCL 역사상 가장 짜릿한 결승전을 펼치며 누구 보란듯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오언의 불운은 거기에서 머물지 않았다. 스타들이 즐비했던 레알 마드리드에서 벤치워머 신세로 전락했고, 결국 프리미어리그로 유턴했지만 부상과 소속팀의 부진으로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절치부심해 자신이 버린 리버풀의 전통 라이벌 맨체스터유나이티드로 자리를 옮겼지만, 여전히 팀의 전력 외 선수이다. 한 때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원더보이'는 그만 그저 그런 평범한 선수로 늙어버렸다.  

 '엘 니뇨'로 불리며 아마도 리버풀 팬들에게 오언 이후 가장 사랑스러운 선수로 여겨졌을 페르난도 토레스가 팀을 저버리는 과정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나빴다. 시즌 종료 뒤 다른 리그로 옮긴 오언과 달리, 팀이 어려움에 처한 시즌 중에 같은 리그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상위 팀 첼시로 옮겼기 때문이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부터 곧잘 리버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곤 했던 토레스는 심지어 첼시로 옮기면서 "드디어 강팀에 왔다"고 말해 리버풀 팬들에게 배신감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토레스는 선배 '소년'이었던 오언의 뒤를 잇기라도 할 작정인지, 향후 행보가 어둡기만 하다. 의리 있는 훈남 이미지는 이적과 그 과정의 각종 말실수로 곤두박질쳐 버렸다. 첼시 이적 후 693분동안 골을 넣지 못하는 부진한 경기력은 실력 있는 골잡이라는 명성을 깎아먹고 있다. 부진한 경기력에 따른 초조함 때문이었겠지만,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의 UCL 8강 1차전에서 잇따라 보인 볼썽 사나운 시뮬레이션 액션은 매너좋은 선수라는 평판마저도 등돌리게 했다. 한 마디로 그는 첼시로 이적한 뒤 끝 없이 추락하고 있다.  

 반면 그의 이적으로 충격받고 상처입은 리버풀과 The Kops는 루이스 수아레즈와 앤디 캐롤의 활약 덕분에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 물리적으로 이번 시즌에서 빅4의 위상을 되찾기 힘들다 하더라도 팀이 재정비돼 다음 시즌에 부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기에는 충분한 상황이다.

 전통은 돈 같은 걸로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토레스는 그 부분을 너무 쉽게 간과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단단한 전통 위에 세워진 팬심 역시 무시할 게 못 된다. 그게 세계에서 가장 극성스러운 것으로 유명한 Th Kops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아무래도 오언에 이어 또다른 '소년'이 The Kops의 저주에 빠져 버리고 만 것 같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얼굴2010. 6. 16. 22:17


 그가 재일교포가 아니라 본적과 국적마저 오롯이 북한 사람이었다면, "유별나다"는 반응이 터져나왔을지 모른다. "천안함 침몰시키고 쑈하냐"는 이죽임이 새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뚤어진 오해를 의식했던 것일까. 그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흘린 눈물의 의미를 정확히 설명했다. "최고무대, 최강팀이라서 울었다"는 것이다. 꿈에서나 그리던 그 무대에 비로소 서게 된 감격을 표현한 눈물이었다.

  돌이켜 보면 1966년에도 그랬다. 포르투갈과의 8강전, 북한이라는 팀은 3:0으로 이기고 있는 와중에 공을 뒤로 돌리며 질질 시간을 끌어도 모자랄 판에, 터치아웃된 공을 쏜살같이 뛰어가 잡아 잽싸게 드로인해 경기를 속개하며 전력을 다해 '축구'를 했던 순진무구했던 선수들이었다. 축구 자체를 위한 열정적인 움직임에 감동한 영국 사람들은 아직도 그 때의 북한팀을 기억하고 있다. 박두익 옹은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축구는 이기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친목을 도모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라고.

 월드컵이 너저분한 돈 잔치가 되고, 월드컵 출전이 자신의 몸값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는 21세기에, 정대세의 눈물은 축구 그 자체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감동이 아직 사멸하지 않고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정대세는 이번 월드컵에서는 정말 기대치도 않게, 반짝이는 보석과도 같은 가치를 확인하게 해주었다. 수단으로서의 축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축구의 가치 말이다.

 본선 무대에 나올 때마다, 북한 축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그들은 정말 특별하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얼굴2010. 6. 16. 17:32


 일방적인 경기일 것이라는 예상은 틀리지 않았지만, 그래서 재미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북한은 실력이 엇비슷한 아시아 주변국들과의 경기에서보다 실력차가 월등한 상대를 상대로 초인적인 능력을 보이는 팀이다. 그들의 9백 2겹 수비는 약팀이 강팀을 어떻게 조리해야 하는지 그 정석을 보여주었다. 하기사 그리스가 2004년에 그런 전법으로 유럽을 제패하기도 했더랬으니까.

 정대세의 활약 여부가 관심이었지만, 이 경기는 이 남자, 지윤남의 것이었다. 눈여겨 보지 않아서 그렇지, 그는 경기에서 나온 세 골에 모두 등장한다.
 
 첫 번째 실점이었던 마이콘의 골은 명백히 그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오버래핑해 북한 진영의 왼쪽을 침투해 들어가는 마이콘을 놓쳤다. 엘라누가 마이콘에 공을 연결하던 순간 엘라누 앞에 있던 북한 수비수가 지윤남에게 마이콘을 마크하라고 일러줬는데도 지윤남은 마이콘을 쫓아가지 않았다. 그건 그 때 그의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을테고, 뒤에 있는 다른 수비수가 커버할 것이라고 오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윤남의 커버 미스는 그 때까지 완벽했던 북한 수비에 미묘한 균열을 불러왔다. 지윤남이 보인 허점으로 마이콘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킥을 할 수 있었고 그 공은 사각에서 마치 마법처럼 그물망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단언컨대, 그 때 지윤남이 전력을 다해 마이콘의 옆을 따라 붙었다면, 마이콘의 골은 나올 수 없었다.

 두 번째 실점 역시, 지윤남의 수비력에서 비롯됐다. 물론 1차적으로는 길게 넘어온 패스를 논스톱으로 가볍게 터치해 골로 연결한 엘라누의 개인기량이 빛난 결과였지만, 지윤남의 스피드가 수비라인을 허물어뜨리며 순간적으로 빠져들어가던 엘라누만큼만 됐더라도, 엘라누의 자유로운 슈팅은 나올 수 없었다. 지윤남은 마이콘의 골 장면에서 보였던 것과는 달리, 이 때엔 엘라누의 움직임을 정확히 간파해 엘라누가 침투해 들어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전력을 다해 그를 따라 붙었지만, 그만 스피드에서 뒤지고 말았다. 역시 그가 그 때 다소 지쳤기 때문이랄 수도 있고, 또는 팀내 최고령의 나이가 말해주듯 스태미너가 떨어졌기 때문이랄 수도 있다. 이 결승골은, 딱 엘라누와 지윤남의 스피드 차이로 결정되었다.

 두 개의 실점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줬던 지윤남은,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서였는지, 적극적으로 2선 공격에 가담했고, 결국 브라질을 상대로 초 1류급 골을 성공시키고 만다. 박두익 옹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넣은 골보다 최소한 100배는 더 멋진, 기억에 남는 골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그는 큰 자취를 남겼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복근' 때문이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인민 복근' '북한 짐승남' 등의 표현으로 그와 그의 근육을 추앙한다. 이래 저래, 그는 브라질 전에서 가장 인상적인 선수가 되었다. '인민 영웅'까지는 되지 못할지 몰라도, 최소한 그는 전세계 축구팬과 네티즌들 사이에서 '스타'가 되었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