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스리그'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4.13 박지성의 완성
  2. 2007.05.04 괜찮다 괜찮아 2
  3. 2007.04.25 클럽 MU의 승리 2
환호2011. 4. 13. 14:57


 스카이스포츠의 평점 8점은 꼭 '원샷원킬'의 결승골 때문은 아니다.
 중요한 경기에서 중요한 순간에 중요한 골을 넣은 것은
 분명 칭송받을 일이고 그의 수훈을 도드라지게 하는 일이었지만,
 박지성이 그 경기에서 빛난 것은 그 순간만이 아니었다.

 당초 현지 언론의 예상이었던 나니-발렌시아 조합 대신
 박지성이 나니와 함께 선발 출전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당연히 그의 수비 능력에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박지성은 측면에서 애슐리콜의 오버래핑을 적절히 차단해 냈고
 중원에서 상대방을 숨막히게 하는 압박으로 첼시의 정상적인 경기운영을 방해했다.
 
 그건 박지성만이 할 수 있는 플레이였다.
 압박과 봉쇄, 그리하여 반격의 출발점.
 1차전에서 완벽히 수행해 퍼거슨 경의 입에서 극찬을 끌어냈던 그 역할을
 2차전에서는 한층 더 완벽하게 해내고 말았다.
 긱스와 나니, 치차리토의 활발한 공격 전개는
 박지성의 제 몫으로부터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공격의 마침표까지 해 냈다.
 "최고"라는 찬사가 모자란 듯 여겨질만큼,
 그는 이제 완성돼 가고 있다. 

calvin.
Posted by the12th
환호2007. 5. 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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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로 뒤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괜찮다. 괜찮아. 두 골을 몰아 넣고 동점으로 끝내면 결승행은 우리 것이야.
 우리 팀 선수들의 무거운 움직임과 잦은 패스미스,
 그리고 심지어 수비진의 뻘짓에도 난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괜찮아. 전반전에 오버 페이스한 AC밀란 녀석들, 곧 체력이 떨어질 거야.
 그 때를 노리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그렇지만 결국 수비하던 오셔를 빼고 사하를 투입해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순간,
 역습 한 방으로 쐐기골을 얻어 맞고 모든 희망은 흩날려지고 말았다.

 사실은 원정인 곳에서 내리 두 골을 먹는 순간
 승부는 일찌감치 갈린 셈이었다.
 마음의 고통을 덜자면 체념만큼 쉬운 방법이 없고,
 낙담을 하고 나서 객관적 자세를 한 채 남의 일 보듯 볼 수도 있었을테지만,
 난 일찌감치 '관전'이 아니라 '응원'을 하기로 한 터다.

 팔짱끼고 맥주 까며 속 편히 객관적 전력을 타령하는 거야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 팀에 절대적 믿음을 불어넣으며
 그 팀의 사소한 고통과도 함께 하는 것은
 오로지 '팬'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챔피언스리그 도전은 다소 무력하게 여기서 멈췄지만,
 난 우리 선수들에게 박수를 친다.
 괜찮다. 괜찮아. 까짓거 우승이야 내년에 하면 되지. 뭐. 안 그래?
 트레블을 달성하기 위해 그 많은 경기를 소화하느라
 진심으로,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들...

calvin.
Posted by the12th
환호2007. 4. 2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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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경기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도 대 카카'의 구도로 시작됐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언론은 이 경기의 향방이 맨체스터 Utd와 AC 밀란 두 클럽의 핵심 선수 두 명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몰아갔다. 두 선수는 각자의 클럽에서 올해 가장 주목받는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고 젊은만큼 클럽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으며 테크닉이 뛰어나고 심지어 인물까지 출중하다. 동료 선수들 대신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아도 전혀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더욱이 경기의 뚜껑이 열리자 언론의 진단 혹은 기대가 어긋나지도 않았다. C날도는 경기 시작 5분여만에 긱스의 코너킥을 멋지게 머리로 받아 디다를 당혹스럽게 하는 첫 번째 득점에 성공했다. 그 뿐인가. EPL 최고 선수로 뽑힌 영광을 뽐내려는 듯 발재간도 더욱 휘황찬란했다. AC 밀란의 수비진은 소문으로만 듣던 C날도의 재주에 그저 뒷걸음질을 칠 뿐이었다. 이에 질세라, 공격수로 변신한 카카도 금세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셰도르프의 침투 패스를 잘라 먹은 뒤 힘을 잔뜩 뺀 기술적인 슈팅으로 동점골을 만들어내더니, 기예 혼자 맨유 수비 3명을 농락하는 개인기로 역전골까지 뽑아내고 말았다. 이쯤 되면, 언론의 설레발처럼 '맨유 대 AC 밀란'이라기 보다는 'C날도 대 카카'의 대결이라 할만 했다.

 그 상황이 달라진 것은 후반 들어서였다. C날도는 왼쪽으로 자리를 옮겨 여전히 화려한 발재간을 부려댔지만 그가 공만 잡을라 치면 달려붙는 AC밀란의 수비수들에 가로막혀 진로를 열지 못했다. "수비수들"이라고? 그렇다. C날도가 뒤흔들어 밀란의 수비진이 그에게 쏠리는 사이 그만큼 다른 미드필더들의 활동 반경은 넓어지게 된다. 이건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는 맨체스터 Utd의 최근 강점으로 자리매김한 부분이기도 한데, C날도의 개인기는 그 자체로도 상대팀에 충분히 위협적이지만, 그 때문에 생긴 공간의 효과가 오히려 더 크다. 이래 저래 C날도의 존재는 지금의 맨유에 있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젊은 C날도가 휘젓고 만든 공간을 채워주는 것은 명문 클럽의 노련함이다. 바로 클럽의 레전드가 되어가고 있는 스콜스와 긱스, 두 노장이다. 그들은 상대의 압박이 느슨해진 틈을 타 클럽의 플레이에 노련함을 불어 넣는다. 루니의 골들은 바로 그렇게 창출됐다. 스콜스가 양팀 통틀어 이날 가장 아름다운 패스를 찍어 올려 동점골을 도왔고, 템포를 조절하며 긱스가 루니에게 넘긴 스루패스는 곧바로 짜릿한 역전 결승골이 되었다.

 AC밀란은 분명 매력적인 클럽이다. 이 클럽은 비록 스탐이나 셰브첸코가 건재해 있던 2-3년전과 같진 않더라도, 여전히 축구팬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말디니부터, 네스타, 카카, 셰도르프, 가투소, 인자기, 그리고 골키퍼 디다로 이뤄진 진용은 하나의 완벽한 '팀'으로 이 클럽을 인식케 한다. 하지만 개인 기량부터 선수들간의 호흡까지 거의 완벽해 보였던 이 클럽의 진가는, 딱 그 선수들로 구성됐을 때에만 기능한다. 우선 셰브첸코와 스탐, 카푸가 빠진 자리는 대체되지 못했다. 세대교체는 원활하지 못해 팀은 노쇠해졌고, 베스트 일레븐 다음 자리는 취약했다. 눈부신 플레이를 보여줬지만 전반만 겨우 소화하고 들어간 말디니의 자리는 그대로 빈 자리가 되고 말았고, 후반 초반에 부상으로 실려나간 가투소의 자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구 조화와 유기적인 움직임 이상의 두 클럽간 차이는 감독의 전술적 능력에 있었다. 전반 카카의 원맨쇼로 원정에서 뜻밖의 승기를 잡은 안첼로티 감독은 후반에 곧바로 카테나치오를 가동했다. 이미 맨유의 포백진용이 완전히 허물어졌다는 걸 확인한 것치고는 너무나도 편의적인 작전이었다. 승리를 원했다면, 당황한 상대를 더 몰아쳐 반격의 여지를 만들지 말았어야했다.

 어차피 이판사판이었던 퍼거슨 감독이야 끝까지 공격 지향을 주문할 수밖에 없긴 했겠지만, 그에게 놀라웠던 것은 선수 교체를 단 한 명도 하지 않은채 경기를 마무리지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퍼거슨 경은 괜히 잡아먹을 시간을 아끼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 전체적으로 손발을 맞춰가며 유기성을 완성해 나가는 팀의 흐름을 훼손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선수들은 지쳐 나가는 가운데서도 하나의 팀으로 완성되었고 인저리 타임에 비로소 그 결실을 맺었다.

 홈에서의 2실점은 분명히 부담이다. 한 편의 잘 짜여진 드라마와도 같았던 1차전의 결과로 인해 2차전 역시 충분히 극적 상황의 토대 위에서 펼쳐지게 생겼다. 이러니 도저히 밤을 지새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졸려도 눈을 치켜 떠야 한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