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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3 치과
얄라리얄라2011. 4. 23. 22:23

 
 치과를 좋아하는 어린이가 어디 있겠냐만, 난 어렸을 때 치과를 참 집요하게 피해 다녔다. 누나가 젖니를 뺄 때 울부짖었던 걸 목격한 나는 정작 내 이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아무도 모르게 하다 혼자 조금씩 흔들어 뽑곤 했다. 내 젖니는 모두 이렇게 스스로 뽑혔다. 

 다른 고통은 잘 참지 못해도 이가 아픈 것은 곧잘 잘 참는 편이어서 충치가 썩어들어가는 동안에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치과 한 번 가지 않을 수 있었고, 때문에 치아는 남아나질 않아 영구치마저 조기에 상하고 말았다.

 치아를 아무렇게나 방치했으니 치열도 고를 리가 없었다. 원래부터 내겐 윗니와 아랫니의 열이 딱 맞아 떨어지는 부정교합이 있었는데, 여기에 어렸을 때 두어번 턱과 치아에 강한 충격을 받은 이후로 치열은 점점 어긋나고 있었다. 아랫니가 앞으로 나오더니 오른쪽으로 진행을 했다. 주걱턱이 되어 가자 중학교 때 비로소 치과를 가게 됐다. 석고틀로 만든 교정기를 끼워보는 게 전부였지만 정말 가기 싫었다. 다행인지 (이제 생각해 보니)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치과 의사도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곤 하는 내 치아를 어떻게 손 봐야 할지 몰라 했다. 결국 첫번 째 교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턱이 점점 비뚤어지게 되자 또다시 치과를 가게 됐다. 이번엔 종합병원이었다. 얼굴 뼈의 엑스레이와 사진을 찍고나서  양쪽 턱디스크가 모두 빠진 악관절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양악 수술을 위한 준비를 해야 했지만 1년 넘는 시간과 2천 만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다는 데에 저어하게 됐다. 취업 준비를 앞둔 시점이었는데, 시간과 돈 모두 내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었다. 

 회사에 들어온 뒤에도 턱의 우향은 진행됐다. 방송에 얼굴을 내밀어야 하고 더구나 좋은 발음으로 말 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악관절 문제는 계속 발목을 잡았다. 내근 부서에 들어갔을 때 다시 다른 종합 병원엘 갔다. 한 번 미룬 댓가로 들어가게 되는 경비와 시간은 더 늘어났다. 그러다보니 또 저어하게 됐다. 미루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현업과 치료를 동시에 유지하기가 버겁다 여겨졌다. 수술 준비 단계로 교정을 위해 고무마킹을 치아 틈에 끼웠는데, 그게 또 치아가 깨질 듯 너무 아팠다. 고무마킹을 그냥 빼내 버리고는, 아프게 되지 않는 이상 그냥 생긴대로 살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미룬 채 결혼을 했고, 이번엔 부모님이 아니라 반려자가 성화를 댔다. 양악 수술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자 반려자는 수소문을 해 수술 없이 악관절을 교정해주는 치과를 찾아냈다. 척추 자세 교정과 치아 교정을 동시에 진행하는 독특한 컨셉이었다. 요컨대, 전체적인 자세 교정을 통해 몸의 균형을 찾는 방법으로 치아 교정도 이끈다는 것이었다. 돈과 시간의 총합은 수술하는 것에 못지 않았지만, 칼을 대지 않는 치료법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교정을 시작했다.  

 교정만이라고는 하지만, 각종 '시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멀쩡한 생니와도 다름없는 사랑니를 발치해야 했고, 치열을 잡아주기 전 치아 위치를 다잡기 위해 사랑니 자리에 임플란트를 박고 고무줄을 연결했다. 따끔한 마취 주사와 얼얼한 신경, 그리고 서늘한 각종 기구들이 닿는 느낌은, 내가 치과를 지지리도 싫어라 하게 했던 바로 그 느낌들이다.
 
 피하고 미룬 끝에 돈은 돈대로 많이 들고 결국 치료는 치료대로 몰아서 받게 됐다. 치과에 대한 이런 교훈은, 사실 알고도 놓치고는 뒤늦게 되새기게 되는 새삼스러운 얘기이긴 하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