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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16 우리의 미래
떠듦2011. 3. 16. 17:20


 재앙은 혼자 오지 않았다. 지진은 해일을 불렀고, 해일은 인명·재산 피해와 함께 원전 사고를 불렀으며, 곧이어 물자 부족사태를 일으켰다. 일본이 홀로 오롯이 이 몇 겹의 재앙을 감당해 내고 있지만, 사실 재앙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이 마주한 이번 재앙은 우리에게 머잖아 닥칠 일들이다. 그들이 오늘 겪고 있는 저 재앙들은 모두 우리의 미래다. 

 일본에게는 유례 없는 대지진의 형태로 나타났지만, 이미 몇 년 째 전지구적으로 모든 종류의 재난들이 과거의 데이터를 무색하게 할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태풍이 와도, 기상 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최악의 상황이 빚어져 왔다. 그 얘기는 예측 범위를 넘어선 재난이 닥쳐 와도 더 이상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란 뜻이다. 그동안 지진 안전 지대로 자신해 왔던 우리나라에 지진이 나지 말란 법이 없단 뜻이며,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슈퍼 태풍이 와 모든 것을 쓸어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황사가 땅 위에 소복이 쌓이는 상황도 충분히 가능해졌다. 몇 년 째 주목 대상인 백두산이 용암과 화산재를 날리며 북한의 땅과 남한의 하늘을 검게 뒤덮게 될 일도 이제 시간 문제이게 생겼다. 

 일본을 덮친 더 심각한 재앙인 방사능 누출 역시, 원자로 21기를 안고 있는 우리에게 그저 '바다 건너 불 구경'이 아니다. 원자력은 애저녁에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의 효용 덕분에 통제 불능 시의 위험을 안고 써먹을 수밖에 없던 에너지원이었다. 누구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자력의 위험에 대해 알고 있었다. 다만 통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 뿐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는 한 사람의 실수로, 이번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자연재해로, 불과 몇 %의 확률 때문에 발생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몇 %의 위험성이 현실화 되는 순간 재앙의 규모는 단지 몇 %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피해는 일본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고 또 현 세대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며 나아가 인류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방사성 물질은 그렇지 않아도 더딜 수밖에 없는 구조 복구 작업을 가로막아 이번 재난을 더 키우고 있다. 

 일본을 더 힘겹게 하는 물자난 또한, 머잖은 미래에 우리에게 닥칠 일이다. 주유소에 길게 늘어선 차량의 줄, 서너 시간을 기다리고도 10여 리터밖에 주유하지 못하는 상황, 바닥 난 편의점의 음식 매대, 곳곳에 펼쳐진 배급 행렬은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아온 현대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석유 고갈이 얼마 남지 않은데다, 이상 기후와 경작지 감소로 인해 세계 식량도 조만간 부족 현상을 빚게 될 텐데, 오늘의 일본 풍경은 그 때 우리의 모습이 될 것이다. 아니, 일시적으로 보이는 오늘의 일본 모습보다 어쩌면 항구적인 문제가 될 미래의 우리에게는 고난이 더 깊고 강할 것이다. 지금의 일본인들처럼 우리가 질서정연하게 그 상황을 마주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일본이 오늘 겪고 있고, 머잖아 우리가 다시 겪게 될 세 가지 재앙은 모두 인간이 자초한 일이다. 지구 기후와 환경에 교란을 일으켜 시스템을 벗어난 자연 재해를 불러온 것은 인간이었다. 원자력이라는 위험한 에너지를 만들어 손 위에서 가지고 놀고 나아가 무기까지 만든 것 역시 인간이었다. 유한한 자원에 대해 구체적 계획을 마련하지 않고 풍요로운 시대를 맞아 마냥 소비하고 즐기기만 하면서 결국 고갈의 시대를 마주하게 한 것 역시 인간 자신이었다. 스스로 자초한 디스토피아에서 우리는 어떤 눈물을 흘리게 될까. 두려움에 몸서리가 쳐지는 요즘이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