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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17 기적의 승부사? 4
토막2009. 2. 17. 20:50

 아브라모비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호주 대표팀과 러시아 대표팀에서 히딩크가 보여준 능력은, 개별적으로는 뛰어나지만 모아놓으면 모래알이 되는 팀 선수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것이었다. 방황하는 첼시 선수단에 결속력을 가져올 수 있는 지도자는, 떠난 무리뉴와 라이벌팀 붙박이 퍼거슨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찾아볼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히딩크는 그 탁월한 리더십으로 한국과 호주, 러시아, 그리고 PSV아인트호벤에게 기적과 같은 큰 선물을 안긴 자타공인 '마법사'이지 않은가?

 그래서 '히딩크의 첼시'가 두렵냐고? 2002년 이후 그의 얼굴만 보면 따뜻한 미소가 번지는 한국인이자 맨체스터유나이티드를 응원하는 입장에서, 그가 돈 냄새 나는 파란 사자 문양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두렵진 않다.

 물론, 히딩크의 지도력은 미신이 아니다. 이미 수차례 검증된 것이다. 축구라는 스포츠도 어차피 어느 정도 심리적 요인이 작용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게 설사 근거 없는 미신이라 하더라도 효과를 부정할 것은 아니다. 벌써부터 시기와 갈등으로 스스로를 갉아먹던 첼시 선수단이 그의 영입을 기점으로 결속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는 걸 보면, 일단 보이지 않는 '히딩크 효과'는 상당히 발휘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히딩크의 검증된 지도력에는 화려한 빛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독한 '4강 팔자'가 대표적이다. 그가 일군 최고의 성과는 88년 PSV아인트호벤과 이룬 유러피언컵 우승이었을 뿐, 그 외 소위 '기적'으로 불리는 성과들은 죄다 4등짜리였다. 네덜란드의 월드컵 4강, 한국 월드컵 4강, 호주 월드컵 16강, 러시아 유로 4강, PSV아인트호벤 챔피언스리그 4강. 어차피 첼시의 이번 시즌 리그에서의 목표가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티켓이라면 히딩크만큼 탁월한 선택은 없는 것일테지만.

 그의 뛰어난 성취들이 모두 약팀을 조련해 일군 것이라는 점도 알아둬야 한다. 히딩크는 지금의 첼시와 비견될만큼 빅클럽이었던 레알 마드리드 감독 자리에서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적도 있었다. 이어진 레알 베티스에서의 감독 경력 역시 우울하게 끝난 것을 보면, 클럽에서의 성적은 PSV아인트호벤을 제외하고는 보여준 게 없다. 첼시에서의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아브라모비치가 그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일 이미 리그 우승의 기대를 접었다면 히딩크는 아주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국제 대회와 같은 토너먼트에서 승부사의 면모를 보여준 점을 생각해 보면 챔피언스리그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4강 팔자'가 다시 발휘된다면, 지금의 리그 4위만큼은 굳힐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만으로 짧은 첼시 감독 생활을 마무리 한다면 히딩크에게나 지금의 첼시에게나 윈윈이 될 수 있지 않겠나.

 당연히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리그 3연패에, 히딩크는 변수 요인이 되지 못 할 것이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