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총선'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4.12 부동산 불패 4
떠듦2008. 4. 12. 02:36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무현이 "투기세력을 근절"하겠다며 부동산 값을 잡으려 들었을 때, 그가 놓치고 있던 점이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미 너나 할 것 없이 투기꾼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인구가 밀집된 서울과 수도권에서 집 한 칸 가지고 있는 어지간한 사람들은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 시키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곧 정부가 자기 집값을 떨어뜨려 자신의 가장 큰 재산을 갉아먹으려 들겠다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의 저항감은 지난 대선에 노무현과 정 반대에 자리한 인물을 다음 대통령에 앉히는 데에서 절정을 이뤘다. 그로써 "세금 폭탄"의 주범, 노무현은 투기 세력이 된 국민들로부터 '심판'을 받고 말았다. 그래서, 투기 세력은 이제 충분히 만족했을까?

 18대 총선이 여당에 과반을 안겨주며 끝났다. 언론들은 "정국 안정을 바란 선택"이니 "절묘한 황금 분할"이니 하는 소리들로 총선에서 나타난 유권자의 뜻을 애써 고매한 것으로 분칠해 분석하느라 분주했다. 역시 꿈보다는 해몽이다. 유권자들은 세밀하게 조직되어 있지 아니 하다. 말을 만들어 냄으로써 먹고 사는 언론으로서야 불가피하게 해대는 분석이었겠지만, 애초부터 '유권자의 뜻'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까놓고 말하자. 이번 총선도 역대 어느 선거와 마찬가지로 지긋지긋한(!) '지역 할거'가 좌우했다. 한나라당은 영남에서, 통합민주당은 호남에서, 자유선진당은 충청에서, 각각 '지역의 맹주'를 자처하며 질 높은 공약이나 별다른 정책적 노력 없이 해당 지역의 지역구를 그야말로 '날로' 먹었다. (태생 자체가 '영남당' 출신인 친박연대 역시, 박근혜의 지지 기반을 플러스 알파로 삼아 영남을 자신들의 지지 기반으로 삼았다) 매번 너무 뻔히 나타난 결과에, 굳이 세금 낭비해 가면서까지 선거 뭐하러 치르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냥 영남은 한나라당(과 친박연대)이, 호남은 민주당이, 충청은 선진당이 죄다 해쳐먹으면 될 일인데 말이다.

 뻔하디 뻔한 지역 할거 투표 경향에서 선거의 최종 승부를 가르는 것은 언제나 딱이 어느 지역당의 것이라 할 수 없는 서울과 수도권의 표심이었다. 한 때 한강을 경계로 한 자신의 계급에 따라 당을 선택하고 표를 던졌던 서울과 수도권 유권자였지만, 이번엔 하나같이 일치한 투표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건 부동산이었다.

 원래 부동산 차익으로 재산을 불려온 강남의 졸부들이야 노무현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과 '부자를 위한 정당' 한나라당에 대한 동질감으로 일찌감치 일관된 투표 경향을 보여 왔지만, 이번엔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강세를 보였던 강북의 유권자들마저 한나라당 후보를 선택했다. 지난 해 말 쯤부터 들썩였던 강북 부동산 시세와 무관하지 않을 터였다. 강남 집값이 주춤한 틈을 타 자신들도 얼마든지 졸부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겠다는 '비전'이 보이면서부터 유권자들은 부동산 시장을 잠재워 보겠다는 정치 세력보다 그것을 부추기는 정치 세력에 마음이 쏠리게 된 것이다.
 
 강북의 유권자가 흔들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새 정부와 한나라당은 요동치는 강북 집값을 방치했다. 아니 오히려 '뉴타운 개발'을 선거 국면에 접목시켰다. 대통령 이명박은 측근을 지원하기 위해 지역 유권자들에게 뉴타운의 비전을 노골적으로 상기시켰다. 지자체장들도 노골적으로 자기 당의 후보들을 위해 부동산 개발론을 퍼뜨렸다. 정몽준은 없는 말까지 만들어 뉴타운 개발을 약속하고 다녔다. 정부는 오늘에서야 뒤늦게 강북 집값을 잡겠다고 팔을 걷어 부쳤다. 총선이 끝났다, 이 말이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걍팍한 서민들이 기댈 곳이란 게 지극히 한정돼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부유층과의 소득 격차와 삶의 질 차이를 좁힐 수 있는 한 방은 머리를 아무리 굴려보아도 역시 부동산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부동산으로 한 번만 대박 터지면, 찌질한 팔자 펼 수 있다는 거 아니냐.

 하지만 집이라는 게 집을 두 세 채 가지고 있지 못하는 바에야, 사는 곳을 팔아 다시 살 곳을 마련해야 하는 것인데, 내 집값만 혼자 뛰라는 법은 없는 법이다. 아니, 되려, 부동산 시장이 풀리면 강북 집값이 오르는 폭과 강남 집값이 오르는 폭은 그 규모 자체가 다를 것이다. 더 궁극적으로는 집값이 오르는 일이 생산적인 부의 창출은 아닌 만큼, 집값이라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거품이 끼어 있게 마련이고, 결국 언젠가 거품이 걷힐 때엔 우리 경제 전반에 독이 되고 말 일이다. 당장 집값 상승으로 한 몫 잡고 재미를 볼 수 있을지 몰라도, 부동산으로 흥한 경기의 위험성은 고스란히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뜻이다.

 노무현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다. 그는 그들 자신이 부동산 투기 세력인 관료들에게 부동산 시장 안정책을 허술하게 내맡겼다 오히려 투기 세력의 조직적인 역습을 맞아 부동산 시장을 요동치게 만드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시장의 저항이 거세지자 노무현은 더 강력한 처방을 내놓으려 들었고 결국 집 한 칸 가지고 있는 서민들조차 세금의 굴레에 끼워 넣는 무리수를 두었다. 결과적으로, 집 없는 사람들은 집 없는 사람들대로 내집 마련의 장벽이 더 높아져 노무현을 불신하게 됐고, 집 있는 사람들은 집 있는 사람들대로 세금 부담에 노무현을 증오하게 됐다. 그렇지만 노무현이 설정한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라는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건 어떠한 댓가를 치르더라도 언젠가 누군가는 나서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투기 세력의 범위와 그들의 강력한 저항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착오였음이 분명하지만, 그 '시행착오'를 거쳐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일정한 궤도에 올려놓은 점까지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투기 세력이 되고자 하는 유권자들은 그것을 모두 부정하고 있다.

 '내 집값'을 올려주길 기대하며 새 여당에 힘을 불어 넣어준 많은 유권자들은 결국 배신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국회에 보낸 그들은 정작 자신들의 집값을 올리는 데 골몰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으로 부를 늘리겠다는 생각이 한낱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 한, 자신의 계급에서 정치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자각하지 못하는 한, 다음 선거 때에도 그들은 '부자 정당'에 한껏 이용만 당하다 내팽개쳐질 것이다. 위정자들로 하여금 부의 증식에서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부동산 불패'의 공식이 성립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채 말이다.

객담
: 꼭히 분석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이번 총선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1. 통합민주당은 어찌 되었든 한나라당의 텃밭에서까지 의석 하나를 보태 '전국 정당'으로 발전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했다. 그런 노력을 아예 포기한 한나라당보다 진일보한 자세다. 2. 경남 사천의 유권자들은 대부분이 '농민'인 자신들의 계급에 따라 '농민' 대표를 의회에 진출시켰다. 3. 서울 은평의 유권자들은 대통령의 노골적인 뉴타운 떡밥에도 한나라당의 3선 후보를 낙마시켰다. 꼭히 거기에 '대운하 반대'의 의미를 싣지 않았고 나아가 차라리 '친박'의 뜻이 담겼다 하더라도, 그건 의미있는 선택임에 분명하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