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07'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04.17 축구, 축구, 축구 4
얄라리얄라2007. 4. 17. 12:10
사용자 삽입 이미지

 토요일엔 9시 뉴스 파트의 당직을 섰다. 주말 9시 뉴스의 헤드라인을 뽑아 제작하고 일요일 아침 10분짜리 뉴스의 큐시트를 짜는 일이다. 9시 뉴스가 끝난 뒤인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 사이는 그래서 비교적 널널하다. 그 때 그 때 터지는 사건사고 막아야 하느라 늘 마음 졸여야 하는 사회팀 야근과 같지 않아서 대략 서너시간은 그냥 하릴 없이 밤을 새는 일이다.
 
 밤이 무료할 것을 알았는지 밤 10시 50분부터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중계해 준다. 미들스브로와 아스톤 빌라의 경기다. 미들스브로는 그닥 호감을 주는 팀은 아니지만, 이동국의 출전 여부가 궁금해 그냥 저냥 본다. 호쳄박의 짜릿한 프리킥으로 먼저 선취점을 올렸지만 미들스브로는 무력하게 역전패 하고 말았다. 이동국은 후반 15분여를 남겨두고 교체 출전했지만, 공 터치도 몇 번 못 해본 채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말았다.

 이어서 새벽 1시 반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왓포드를 상대로 FA컵 준결승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 앞서 방송한 유럽 골들을 모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보자니, 왓포드의 FA컵 상승 기세가 만만치 않다. 캐릭의 멋진 스루패스와 스미스의 재치, 루니의 테크닉이 선취골을 뽑아내 쉽게 경기가 풀리려나 했는데, 왓포드가 환상의 시저킥으로 동점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절정의 기량을 보이는 호나우두가 역전골을 넣는다. 전반전만 보고 한 시간여 눈을 붙이고 와 보니, 역시나 4-1로 낙승했다는 소식. FA컵 탈환의 날이 머지 않았다.

 아침 6시 뉴스 큐시트를 짜고 진행, 8시 뉴스 큐시트를 짜고 났더니 교대자가 출근했다. 졸음 운전을 피하기 위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집에 돌아와 대충 아침 밥을 먹고 모자란 잠을 청했다.

 오후 3시 반. 부시시 일어나 안방 텔레비전을 켜 제꼈다. 상암에서 FC서울과 울산현대의 리그 경기가 열리기 때문이다. 라이벌인 대 수원전이 아닌데도 관중들이 적잖게 들어찼다. 대략 3만명 정도는 돼 보인다. 토요일 당직만 아니었으면 나 역시 '또' 상암을 찾을 셈이었지만, 아쉬운대로 텔레비전 중계로 달래야겠다.

 울산은 역시나 만만치 않은 팀이어서 양팀의 공방이 만만치 않다. 서울은 내내 경기를 지배하다시피 하긴 했지만 울산이 상대팀 분석을 꽤 많이 한듯 빈틈을 내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울산의 역습이 더 위협적이다.

 서울은 그동안의 주전선수들 대신 로테이션 멤버들을 피치 위에 올렸다. 초반 돌풍의 주역이었던 이청용이 빠졌다. 김동석의 움직임이 유난히 기민했지만, 그 뿐이었다. 두두는 도무지 패스플레이를 할 줄 모르고, 이을용도 막무가내식 답답한 경기 운영을 보였다. 박주영은 고립됐고 정조국은 내내 무리했다. 부상으로 결장 중인 이민성과 김은중의 공백이 크게 느껴질 즈음, 경기가 0-0으로 싱겁게 끝나 버렸다.

 저녁에는 FIFA07 게임을 돌렸다. 커리어모드로 팀 운영을 하는 중인데, 내가 고른 팀은 (당연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팀을 맡은 첫 시즌에 리그 우승과 칼링컵 우승을 거머쥐고 두 번 째 시즌을 맞이한 참이다. 포티라는 젊은 유망주와 공격형 미드필더 곤잘레스, 그리고 미국의 축구 신동 아두 등을 영입해 오고, 노쇠한 스콜스와 활용도가 떨어지는 실베스트르와 플레처를 이적시켜 버렸다. 잦은 실수를 반복하던 주전 골키퍼 반데사르도 다른 팀에 내 주고, 대신 잉글랜드 대표팀의 수문장인 로빈슨을 당겨 왔다. 이 팀은 내가 재정비한 나만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내 팀에서 루니의 득점력은 가히 폭발적이다. 첫 번째 시즌에서도 압도적인 차이로 득점왕에 오르더니 두 번째 시즌에서도 가공할만한 득점력을 선보이고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는 실제처럼 득점력이 좋진 않지만 크로스가 일품이어서 어시스트는 수위권이다. 그는 벌써 종합능력치가 최고치에 이르기까지 했다. 박지성은 포지션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돼 있지만 왼쪽이나 오른쪽 윙으로 뛸 때 더 진가를 발휘한다. 실제에서와 달리 체력이 약해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하지만 침투 능력이 뛰어나서 호나우두보다도 득점이 더 많다.

 두 번째 시즌에서도 리그 우승은 탄탄대로. 칼링컵과 FA컵도 거머쥐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AC밀란을 만났다. 경기 초반 상대의 카테나치오에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시즌 내내 생각만큼 활약을 못 해주던 포티가 소나기 골을 퍼부으며 4-0으로 승리, 두 번째 시즌만에 쿼더러블을 달성해 내고야 말았다.

...... 이런.

 내 정신적 도피처가 축구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세상만사 좋은 일 안 좋은 일, 복잡한 일 어지러운 일에 모든 신경을 끊고 그만 축구에 빠져 지냈다. 룰이 단순하고 피아 구분이 명확해 피해 있기 안락하다 여겨졌던 모양이다. 그만 도망쳐 있어야겠다. 계기가 필요하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