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1.04.21 겁없는 신인 2
  2. 2011.04.14 MBC 청룡 9
  3. 2011.04.11 '신바람 야구'의 재림 2
환호2011. 4. 21. 10:11


시즌 개막전은 절망적이었다.
지난 8년동안의 악몽이 올 시즌에도 되풀이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끝내 터지지 않는 적시타, 될 듯 될 듯 안 되고 마는 희망 고문,
도망가기에 급급한 투수들과 뒤가 불안한 수비...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느새 팀에 깊이 스미고 만 패배주의...

그 때 녀석이 등장했다.
이미 승패가 기운 상황에서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인 주제에
등에 감히 '에이스의 번호' 1번을 달고서.

아무 긴장감 없는 시건방진 표정으로
그는 두산의 중심 타선을 향해
정 가운데에 스트라이크를 꽂아 주었다.
승패와 상관 없이 모처럼 오랜만에 가슴이 뻥 뚫리는 투구였다.

임찬규는 지리멸렬했던 8년동안
열패감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LG에게
반드시 꼭 있어야 했던
겁없는 신인이다. 

올 시즌은 정말
뭔가 큰 일이 벌어질 것 같다.

calvin.
Posted by the12th
환호2011. 4. 14. 09:30


 8년째 하위권을 맴돌며 '가을'을 잊은 LG트윈스를 응원하는 일은 고역을 동반한다. 사람들은 내 앞에서 야구 얘기를 할 때마다 위로를 하거나 동정을 하거나 또는 그것을 가장해 은근히 염장을 지른다. 그리고 하다하다 막바지에 가서는 왜 그 팀을 응원하냐고 반문하거나, 심지어 더비 라이벌 팀이기까지 한 자기네 팀으로 옮기라고까지 말한다. 이쯤 되면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고 밟히기도 제대로 밟히는 거다. 갖은 모욕과 이죽임, 비아냥을 이겨내야 하지만, 그렇다고 굴할 순 없다. 난 올해 - 가정은 물론 상상조차 해선 안 될 일이지만 - 또다시 가을 야구를 할 수 없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이 팀을 저버릴 생각이 없다. 아예 야구에서 등을 돌리면 모를까.

 왜 LG트윈스냐는 질문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이 팀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MBC청룡. 1982년 프로야구가 처음 출범했을 때, 나는 학교에도 채 들어가지 않은 어린이였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문방구에서 쏟아져 나왔던 프로야구 딱지를 갖고 놀면서 나도 한 팀을 응원하기로 했는데, 그게 MBC청룡이었다. 고민을 할 이유따윈 없었다. 그 때 내게 MBC청룡 이외의 팀에 눈을 줄 이유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이 팀은 유일하게 서울을 연고지로 한 팀이었고, 내 띠와 같은 '용'이 팀의 마스코트였기 때문이었다(76년 용띠인 내 또래 가운데는 그런 이유로 연고와 관계없이 MBC청룡의 팬이 된 친구들이 꽤 된다). 

 MBC청룡은 프로야구 출범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한 팀이었다. 3월 27일 개막전 9회말 이종도의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은 두고두고 거론되는 프로야구 30년사의 명장면이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이 팀은 그 개막전 이후엔 그다지 인상적인 팀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원년 우승은 OB베어스가 차지했고, MBC청룡은 이듬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긴 했지만 해태타이거즈 첫 번째 우승의 들러리에 머무르며 '야구 명가'의 시작을 도왔을 뿐이었다. 지지부진한 경기력과 고만고만한 순위는 응원하는 팬들마저 무기력하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어린이 회원까지 가입하며 열심히 이 팀을 사랑했다. 왜? 우리 고향 팀이고 나의 팀이니까. 팀 성적이 안 좋다고 팀을 옮기는 건 팬이 할 짓이 아니다. 그 때 난 심지어, 5공화국의 나팔수였던 모기업 MBC도 사랑했다. 그런 줄 모르고 사랑한 것이긴 하지만.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던 MBC청룡은 그만 1990년 LG트윈스로 창씨개명을 이룬 뒤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난 자연스럽게 LG트윈스의 팬이 됐다. MBC청룡의 선수단을 그대로 고용승계했기 때문에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무렵 OB베어스가 대전에서 서울로 연고 이전을 했는데, '연고 주의'를 강조하는 축구계 표현으로는 "패륜"과 같은 일이었고, 따라서 난 '상경 이주 팀'이 아닌 '토박이 서울팀'을 계속 응원하기로 했다.

 다행히 LG트윈스는 MBC청룡과 달리 야구도 썩 잘하는 팀이었다. 창단 첫해 MBC청룡이 거두지 못했던 우승을 단박에 거머쥐었고, 그 뒤에도 상위권을 유지했으며 1994년 우승으로 V2까지 달성했다. '자율야구'니 '신바람 야구'니 하는 새로운 개념을 한국 프로야구에 심으며 새 영역을 개척해 나가기도 했다. 늘 변두리에 머물러 있던 MBC청룡 팬들에게, 주목받는 야구팬의 기분이란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90년대 초반은 정말 찬란하고 그래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최근 8년동안의 성적은 실망감을 넘어서 절망감을 안기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MBC청룡도 그랬다. 아니, MBC청룡은 끝내 해주지 못했던 우승의 화려한 추억을 만들어 안겨줬던 팀이 LG트윈스다. 이렇다할 성적도 없었던 MBC청룡을 한결같이 응원하고 사랑했던 팬들에게 LG트윈스의 밑바닥 성적은 감내할 만한 수준이다. 바꿔 말하면, 성적 따위가 우리 팀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게 할 수는 없다. 그게 스포츠 팬의 기본 자세요, 의리이자 도리다. 

calvin.   
Posted by the12th
환호2011. 4. 11. 16:50


 "5016일 만의 1위 복귀"라는 말이 그대로 표현해 주듯,
 그 어느 때보다도 시작이 좋다. 
 만일 올 시즌의 끝이 지난 8년동안의 끝과 마찬가지라고 한다면,
 이번의 '희망 고문'은 역사상 가장 고약한 것이 될 것이다.

 그만큼 시작이 산뜻하다. 7경기 끝낸 현재 5승 2패.
 하위 전력인 한화를 상대로 한 3연전을 쓸어담은 덕이 있지만, 
 우승 전력으로 꼽히는 SK와 두산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력을 펼쳤고
 한국 프로야구의 간판 에이스 김광현과 류현진을 난타로 강판시켰다.  
 화끈한 공격야구와 타선의 응집력만큼은 확실히 합격점을 줄 만 하다. 
 주자가 모이면 점수로 연결하고, 팀배팅에 적시타가 잇따른다.
 선수단에 신뢰와 긍정의 에너지도 넘친다.
 초반 부진하던 선수들이 하나 둘 제 역할을 해주자
 다른 선수들도 뒤따라 제 몫을 해낸다.
 타선의 분위기는 정말 90년대 초반으로 돌아간 것 같다.

 다만 문제는 여전히 마운드다.
 박현준이 '깜짝 에이스'로 급부상했지만,
 아직 구질이 상대 선수들에게 충분히 노출되지 않은
 신인급 선발이라는 점이 아직 그를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속구 외의 장점이 없어 보이는 리즈도 믿음을 주기엔 역부족이다.
 고육지책으로 소방수 역할을 맡은 김광수는 배짱이나 안정감이 모자란다.
 마무리가 믿음을 주지 못하면 아무리 점수를 벌어놓은 들 별무소용이다.
 봉중근이 가세하고 김광삼이 요리해 주면 다소 나아지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밑천이 드러나는 게 다름 아닌 마운드의 건실함이라
 초반의 좋은 성적이 언제 고꾸라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이 큰 문제다.

 그래도 일단은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90년대 초반, 한국 프로야구 판도를 뒤흔들었던 '신바람'을
 다시 불러일으킬 가장 좋은 기회다.
 올해는 달라져야 하고, 달라질 것이고, 실제로 다르다.
 희망과 기대를 더이상 고문으로 되갚지 않고
 LG가 마침내 신바람으로 되돌려주길 힘껏 바라본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