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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1 이웃의 섬나라 - <5> 箱根 10
  2. 2009.12.09 이웃의 섬나라 - <4> 지브리의 땅 4
  3. 2009.12.07 이웃의 섬나라 - <3> 오이시! 6
발자국2009. 12. 21. 02:51


 하코네는 도쿄에서 2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온천 지대다. 일본 여행 마지막 날은, '휴식'이라는 휴가 본연의 의미를 살릴 겸, 또 그동안 도쿄를 싸돌아다니느라 쌓인 여독도 풀어야겠길래, 어찌됐든 온천욕을 겸한 일정으로 삼았다. 일본식 전통 료칸 구경도 삼삼할 것 같았고. 실제로 정말 하코네에 가게 됐을 땐, 뜨끈한 물에 온몸의 근육을 풀어주고만 싶었다.



 우리가 묵었던 료칸 테루모토는 '전통'이 느껴지는 여관이었다. 여기를 오고간, 여기에서 밤을 보냈던 숱한 사람들의 자취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이었다. 반려자는 오래돼 낡기까지 한 이 여관의 흔적들을 조금 불편해 했지만, 난 외려 이런 전통의 느낌이 좋았다. 나 역시 이 여관의 역사에 의미 있는 흔적으로 남게 될 것만 같았다.




 이 지역이 온천지대라면 그 뜨거운 물은 어디서 다 나오겠는가. 오와쿠다니는 화산 분화구 주변이다. 화산이 숨을 쉬는 것처럼, 수증기와 지독한 유황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곳이다. 냄새는 지독하나 그림은 훌륭했다. 료칸에 짐만 좀 부려놓고 케이블카와 로프웨이를 타고 이 곳에 들러봤다. 검은색 달걀도 까먹고 군것질도 좀 하다 다시 숙소로 향했다.


 범선까지 타볼 요량이었지만, 마지막 배를 놓쳤다. 버스로 겨우 숙소로 가는 길을 찾아낸 뒤 케이블카를 타러 터버터벅 걸어가는 길... 이제 해독이 필요했다.



 온천탕으로는 가족끼리만 들어갈 수 있는 가족탕과 남탕 여탕으로 구분된 대중탕이 있었다. 둘이 같이 온천을 즐기자면 가족탕을 들어가야 했으나, 사전에 찾아본 정보로는 경쟁이 치열해 언감생심이라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가족탕이 겨우 하나밖에 없는 걸.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가족탕을 찾아가 봤는데, 어랍쇼, 텅텅 비어 있는거다. 이게 웬 횡재냐, 하면서 넓은 가족탕을 둘이 독차지했다. 둘이 채우기엔 너무 넓어서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더라. (사진은 남탕 대중탕 입구와 탈의장. 가족탕 들어갈 땐 미처 카레라 가져 가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따끈한 물에 몸을 노곤하게 만들고 난 뒤, 푹신한 이불에서 푹 자고는 아침에 일어나 정원 쪽 창을 열어봤다. 딱히 볼게 있다고 볼 수 없는 좁고 보잘 것 없는 뜰이다. 볼게 정말 없어 그랬는지는 몰라도 발 아래 소복히 쌓인 작은 단풍잎들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단풍들을 보고 있노라니, 가을이 저물어 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우리의 여행도 막바지였다.

calvin.

Posted by the12th
발자국2009. 12. 9. 23:09


 내가 만일 일본 여행을 가고 싶었다면, 그것은 분명 애니메이션 때문일 것이다. 내게 일본이라는 나라가 동경의 대상이 된다면, 그건 애니메이션 때문이고 특히나 지브리 애니메이션 덕분이다. 따라서 지브리 미술관은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반려자 역시 나를 배려해 지브리 미술관 행 일정을 통으로 잡아주었다.


사실 엄밀히 말해 가보고 싶기로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는 지브리 스튜디오에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알아봐도 지브리 스튜디오에 대한 관광 정보는 없었다. 오로지 지브리 미술관 얘기 뿐이다. 작업장은 개방하지 않는다 이거지. 꿩대신 닭일지라도 지브리 미술관은 꽤 가볼만 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본에 당도한 이튿날, 그러니까 사실상 제대로 된 첫 도쿄 나들이에서 우리는 전철을 타고 지브리 미술관의 장소로 알려진 미타카로 향했다.


 미타카 역에서 지브리 미술관으로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고양이 버스'와 그 정류장. 노란색에 지브리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는 것만으로도 타고 싶게 만든다. 사실 이 버스는 지브리 미술관의 버스라기보다는, 지브리 미술관을 경유하는 미타카 지역의 마을 버스였는데도 저런 모양새였다. 지브리 미술관이 이 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알 만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노란 버스를 타지 못했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빨간 색의 담백한(?) 그야말로 마을 버스를 타고 갔다)


 밖에서 바라본 지브리 미술관의 모습. 건물 옥상에 라퓨타를 지키던 로봇병이, 마치 지브리 미술관을 지키듯 저렇게 또 멍때리며 쓸쓸히 서 있었다.


 안쪽에 들어가 보면 있는 매표소. 매표원은 토토로다.


 꼬마 아가씨가 구멍에 얼굴을 들이밀며 말을 걸어 보지만, 토토로가 대답할 리 만무하다. 표를 팔리도 만무하다. 이건 매표소가 아니라 그냥 모형이다. 여기선 표를 팔지 않는다.



 지브리 미술관의 뒷편. 고풍스러운 듯 신비로운 이미지가 가득하다. 이런 디테일이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을 호기심에 콩닥이게 만든다. 


 정오, 예약된 입장 시간이다. 지브리 미술관은 철저한 사전 예약제이다. 하루 4차례 시간에 맞춰 입장을 시키는데, 미리 예약을 한 사람만이 입장할 수 있다. 우리는 물론 서울에서 지브리 미술관 입장권을 대행 판매하는 한 여행사를 통해서 바우처를 갖고 간 참이다. 약속된 시간에 들어섰더니 '티켓'이라며 애니메이션 필름을 한 장씩 준다. 이게 그러니까 입장권 겸 기념품이 되겠다.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됐으나, 보여줄 게 없다. 실내에서는 촬영이 엄격히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몰래 찍어볼 욕심이 불끈댔으나, 뭐 꼴불견으로 낙인찍히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고 에 또, 게다가, 가급적이면 사진으로 말고 직접 보시길 권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애초 기대가 너무 컸던 까닭인지 뭐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았다. 난 그래도 각 작품마다의 섹션이 나눠져 있어서 연대별로 꼼꼼히 소개해주는 곳일 줄 알았다. 지브리라면 충분히 기념할 만 한 작품들이 세고도 넘쳤으니까. 그렇지만 그렇다기보다는, 그저 애니메이션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아주 흥미로운 방법으로 제시한 전시관 하나와, 작업실 디오라마같이 꾸며놓은 공간들이 주를 이뤘다. 큼지막하고 푹신한 고양이 버스 인형이 있는 공간도 있었는데, 거기에선 아이들만이 환장을 하고 놀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가장 최신작으로 밀고 있기 때문인지 <벼랑 위의 포뇨>관련 전시물이 좀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마녀택급편>이나 <붉은돼지>의 희귀 자료같은 걸 좀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자그마한 극장도 있어서, 시간마다 무료 애니메이션 상영도 해주었다. 우리가 보았던 건 <이웃의 토토로>의 외전과 같은 이야기였는데, 메이가 새끼 고양이 버스를 친구로 만나 토토로들의 모임에 참석하는 판타지물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만나게 된 메이를 보니 정말 반가웠다. 잘 살고 있었구나, 안도감도 들었고.


 밖으로 나오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썽큰 가든 같은 공간도 여러 재미난 아이템들이 있었다. 빗자루를 타고 키키처럼 날아보려고 했지만, 지구의 중력을 극복할 수 없었던 반려자.


 포로코 롯소가 그려진 카페도 있었는데, 밖에서나 흘끗 보고 들어가지 않았다. 괜히 비쌀 것 같았다. 하지만 내부 인테리어를 마치 호텔 아드리아노의 카페처럼 꾸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았을 것 같다. 나 역시 끌려들어가듯 들어가 봤을지 모를 일이다.


 옥상으로 올라가볼 차례다. 빙글빙글 놀이터 계단처럼 생긴 옥상행 계단을 기꺼워하며 올라가 봤더니 작은 정원이 드러난다. 라퓨타 꼭대기의 그 정원 같이 생긴.


 토토로도 없고, 포르코 롯소도 없고, 키키와 돔보도 없고, 하다못해 마마 유토단도 없으니 이름도 불분명한 로봇병이 인기를 독차지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로봇병과 기념 사진질 중이다.


촌스럽게 그런 짓은 하지 말자며, 관광객을 본분을 망각하고 최대한 사람이 나오지 않을때 한 컷을 남겼다.


 역시 사람이 없는 컷을 남기기 위해 일부러 뒤에서 찍어본 사진인데, 아, 그의 고독함과 쓸쓸함이 백만배는 더뿜어져 나온다.



 저 얼굴에서도 표정이 읽히지지 않으시나? 보라. 웃고 있는 듯, 울고 있는 듯, 지극히 평화로운 저 표정을.

 
 좁은 길을 따라가면 뭔가 또 신기한게 펼쳐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냥 아주 좁은 정원만 있었다.



 마냥 놀 수 있을 줄 알았으나, 더 놀게 없었다. '마마 유토'라고 이름지어진 기념품점에 들어가 고민과 고민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디저트용 컵과 스푼 포크 세트를 사들고 나왔다. 여행 전에 지브리 미술관을 소개했던 어떤 블로거처럼, 나 역시 사보이아 모형을 살까 말까 고민에 고듭을 거듭했지만, 가격의 압박을 이길 수 없었다. 적당한 기념품을 사들고 나오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보자면 지브리의 '공식' 기념품점 치고는 물건도 그닥 다양하지 않았고 그렇게 눈 돌아갈만한 아이템들도 많지 않았다. 이 정도는 코엑스의 애니랜드에도 충분히 있단 말이다. 



 지브리 미술관 바로 옆에는 이노카시라 공원이 있었다. 도심 속 숲과 같은 공원. 인공적으로 조성된 게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공원처럼 보였다. 뭐 '토토로의 숲'으로 명명된 숲도 있다고는 하지만, 지브리 미술관 옆에 이런 곳이 있으니 마치 여기가 토토로가 사는 곳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소풍을 나와 도시락을 까먹고 일광욕을 즐기고 아이들과 공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 속에 여유가 넘치는 눈 부신 풍경이었다.   


 작은 개의 목줄을 잡고 공원을 산책하던 똑똑한 개와, 은폐엄폐를 철저히 한 고양이. 숲이 사람에게만 좋을소냐, 자연 모두에게 좋은 환경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곳, 키치조지에서 만났던 많은 자전거들. 자전거가 다니기 편한 최적의 장소로서도, 이곳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천공의 성 라퓨타><모노노케 히메><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에서 끊임없이 설파했던 지브리의 '환경 주의' 정신이 닿아 있는 곳으로 여겨졌다.

calvin.

Posted by the12th
발자국2009. 12. 7. 21:01

 이미 말했다시피, 도쿄 여행의 목적은 '맛있는 것과 쇼핑'이었다. 여행 기간 내내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줬던 것들을 모아봤다.


 이미 뜻한 바가 있다며 반려자가 배고파 죽겠다는 사람을 끌고 갔던 첫 번째 먹을거리 기착지는 하라주쿠에 있는 메리온 크레페. 뭐 원래 맛이 있으니까 줄들을 섰겠지만, 솔직히 배가 너무 고팠던 나머지 씹기도 전에 녹아버리긴 하더라.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쩝쩝 다시며 하나 더 먹을까 망설이는 사이, 반려자는 곧바로 두 번째 먹을 것을 찾아 나섰다.


 크레페 하나로 못내 아쉬웠던 속을 채우기 위해 찾아간 하라주쿠 교자. 만두집이다. 구운만두와 물만두 하나씩 시켜 먹었다. 배가 많이 고팠나? 이 역시 입에서 녹아내리더라.


 녹아버린 것도 녹아버린 것이지만, 아무리 '소식의 나라'라고 하기로서니, 점심으로 크레페 하나에 만두 몇 점은 너무했다. 캣스트리트를 걷다 타코야키를 주전부리로 삼았다. 한국에서도 종종 즐겨 먹던 간식인데, 일본에 왔으니 원조 맛은 봐야 하지 않겠나. 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더라만.



 일본식 돈까스도 미션 중 하나다. 하라주쿠에 있던 마이센 본점을 놓친 대신, 호텔로 가는 길에 신주쿠 역에 있던 마이센 지점을 찾았다. 기름이 느끼하지 않고 튀김옷이 잘 입혀져 까칠하지 않은, 아 이게 정통이구나,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훌륭한 돈까스였다.



 돈까스를 먹었는데 라면을 놓칠소냐. 에비스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는 걸 지도를 보고 또 보며 힘겹게 찾아간 아후리가 우리에게 일본식 라면을 맛뵈줄 곳으로 선정됐다. 면을 즉석 우동처럼 철망에 넣어 익힌 뒤 조리하는 게 라면을 하나의 '음식'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값은 한국 라면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싸긴 했지만, 맛은 훌륭했다. 맵지 않고 고소하고 맛깔났다. 음, 더러는 좀 느끼하기도 했다.  


 아후리에 있던 식권 자판기. 돈을 직접 주고 받으며 사먹는게 아니라, 일본 식당에는 이런 자판기가 일반적으로 널려 있어 미리 식권을 돈 내고 산 뒤 주문하는 식이다. 간편함을 끌어올린 시스템이랄까, 또는 인건비를 줄이는 시스템이랄까.


 아사쿠사 신사를 찾아가기 전 들렀던 몬자 고로케. 바로 튀긴 따끈따끈한 고로케 안에 카레를 비롯한 다양한 소스를 넣어 준다. 우리가 생각한 고로케와 다소 다른 생소한 맛이긴 했지만, 나는 맛있었다.


 요시카미는 아사쿠사 골목 한쪽에 위치한 이름난 음식점이다. 그 유명세를 자랑하듯, 이름을 명단에 올려놓고 다소간 기다렸다 들어갈 수 있었다. 여행정보지에서 오무라이스가 맛있는 곳으로 소개받고 오무라이스 미션 코스로 들어갔는데, 들어가 메뉴판을 보니 오히려 돈까스가 중심이 된 경양식집이었다. 스테이크도 팔고 카레라이스도 팔고, 사실 안 파는 게 없었다. 오무라이스와 함께 추천메뉴라고 알려진 하야시라이스를 먹으려 했으나 하야시라이스가 품절이라 하여 대신 카레라이스를 시켜 먹었다. 바에서 보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주방의 다이내믹한 퍼포먼스가 화려하긴 했지만, 카레라이스는 그닥 인상적이지 않았다. 오무라이스는 썩 좋았던 모양. 사실 맛 자체 보다는 퍼포먼스에 홀리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


 도쿄에서의 마지막 만찬은 초밥이었다. 사실 초밥은 당초 미션 대상에서 빠져 있었는데, 그래도(!) 일본에서 초밥을 먹고 가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아 그냥 신주쿠 역에 있는 백화점 식당가를 찾았다. 제법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다소 거품이 낀 가격이긴 했지만, 맛은 괜찮았다. 일본에선 어디에서라도 초밥은 일정 수준이 담보된다는 그 말이 맞는 듯 했다. 

 
 밥만 먹었냐면 그렇지 않다. 디저트류인 실크푸딩. 세 개 사자는 거 두 개만 사자고 해 들고 왔는데, 먹어보니 하나 더 살걸, 하는 후회가 살짝 들었다.


 일본 맥주가 맛나다는 얘기에 우리는 호텔에서도 밤에 현지의 맥주 한 캔씩 해치웠는데, 그 맥주 맛의 절정은 에비스에서 마주했다. 맥주 기념관을 건성으로 돌아본 뒤 본 목적인 시음에 나섰는데, 4가지 종류의 맥주를 작은 잔에 담아서 500엔에 팔고 있었다. 한 세트를 둘이 나눠 마시다 결국 또 한세트를 사 먹고 말았다.

 기념품점에선 인상적이게도 맥주 젤리와 맥주 캬라멜을 팔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기념품으로 삼을만 해 몇 개 집어 왔다.


 하코네 오와쿠다니에서 맛 본 검은색 달걀. 물론 겉만 검은색이다. 유황 성분이 나오는 온천수에서 익혀서 표면이 이렇게 됐다는데, 다들 기념삼아 먹어보니 먹긴 했지만, 원래 삶은 달걀을 그리 좋아라 하지 않는데 이게 유독 더 맛있을리 만무했다.



 하코네에서 머물렀던 료칸에서 나온 저녁 식사. 한상 차려진 일본 정식의 분위기다. 맛깔난 음식도 있었고 도저히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도 있었다. 생삽겹살을 주고는 샤브샤브를 해 먹으라고 하는데, 정말이지 구워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배가 조금 더 고팠다면 더 맛있게 먹었을 터였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주전부리를 하느라 진미를 느끼지 못하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나온 료칸의 아침 식사. 저녁 식사보다 간소하고 좀 더 정갈한 느낌. 부담스럽지도 않고 좋았다.


 일본식 카레는 미션 대상이었다. 하지만 하야시라이스 대신 먹었던 요시카미의 카레로 그 미션을 해결했다고 보기엔 찜찜했다. 해서 떠나는 날, 부러 나카무라야를 찾았다. 카레로 유명한 집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손님이 드글드글 했다. 비싼만큼 맛은 있었다. 그렇지만 끝내 만족할 순 없었다. 일본식 카레가 아니라 인도 정통 카레를 지향하는 곳이었던 까닭이다. 인도 정통 카레를 하는 곳은 서울에도 있다. 결국 일본식 카레는 맛보지 못한채, 집에서 해먹는 일본 카레를 사들었다.   



 777엔짜리 고구마 애플파이가 일품이라는 랏포포를 찾기 위해 신주쿠 역 일대를 얼마나 헤맸는지 모른다. 역 구조가 아주 복잡해서 말이다. 그래도 집념의 우리는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하는 분주함 속에서도 랏포포를 찾았고, 777엔짜리 고구마 애플파이도 기어이 사내고 말았다. 나중에 서울에 와서 개봉한 뒤 맛 본 고구마 애플파이의 맛은, 헛된 노고가 아니라는 걸 말해주듯 훌륭했다. 



 미처 먹지 못한 히요꼬를 나리타 공항 면세점에서 사 먹었다. 정말 끈질긴 '먹을 것 투어'다. 그리고 그래도 못내 아쉬워 가족들 선물로도 과자를 잔뜩 샀다. 일본은 우리에게 '먹을 것'이었나 보다. ㅋ


 인천을 가는 비행기를 발권받으려는데, 이코노미석 예약이 넘쳤다며 업그레이드를 해주겠단다. 이게 웬 떡이람. 넓은 좌석과 승무원들의 과도한 친절도 1등석의 매력이긴 하지만, 그보다도 우리를 즐겁게 했던 건 기내식의 수준. 일본 갈 때 먹었던 기내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훌륭한 기내식에 일본과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맛있게 일본 여행을 냠냠할 수 있었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