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듦2009. 6. 2. 22:06

 그가 선택한 죽음은 그의 삶과 같았다. 마지막 순간 바위 위에 자신의 몸을 내던졌던 그가 일생동안 살아왔던 삶 역시, 한결같이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일"이었다. 지역 할거 주의에, 보스 정치에, 자본에, 언론 권력에, 문벌 주의에, 권위와 폭압에, 세상 모든 종류의 차별과 불평등에 그는 우직하게 맞서 싸웠다. 여와 야, 주류와 비주류를 막론하고 공고하게 포진해 있던 '앙시엥 레짐'에 대한 그의 도전은 사실 무모해 보였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자신의 진심을 '직접' 소통할 수 있었던 인터넷을 만났다. 무모했고 어리석었고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일어났고, 그는 기어이 계란으로 바위에 얼마간의 균열을 내고야 말았다. 그건 '작은 혁명'이었다.

 거대한 바람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던 기득권 세력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인정할 수 없었다. 별볼 일 없는 빈농 가문에, 학번으로 얽을 수 없는 상고 출신. 하고 싶은 말을 거침 없이 하고, 조금도 굽실대지 않는 자. 비루하고 힘 없는 이들을 대변하려 들고, 기득권을 떼어 내 놓으라고 요구하는 자를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어디서 굴러 들어온 놈"을 권력의 최상층부에 '모실' 수 없었다. 서둘러 끌어 내려야 했다.
 
 탄핵은 그런 조바심이 빚은 가장 노골적인 첫번 째 시도였다. 지역주의를 자극해 정치하지 말자는 그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민주당 분당 사태를 빚게 되자, 지역주의 정치로 나름대로 입지를 굳혔던 민주당 잔당 세력은 독이 바짝 오른 나머지 한나라당과 함께 그를 끌어내린다. 그렇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 '의회 쿠데타'는 국민과 헌법재판소의 저지로 처참하게 실패하고 만다. 상대를 너무 얕잡아 봤음을 깨달은 그들은 장기전을 모색했다.

 그의 임기 내내 마치 와신상담이라도 하듯 집요하고 치밀하고 악랄하게 그의 지지 기반을 갉아 먹고 들어간 것은 언론 권력이었다.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수구 언론은 그의 말과 행동 정책을 하나같이 악의적으로 몰아갔다. 그들에 의해 그의 구상은 '꼼수'가 되고, 그의 솔직한 언변은 '막말'이 됐다. 여러 해에 걸쳐 집요하게 반복되는 그들의 흑색선전은  점점 큰 효과를 발휘했다. 처음에 '설마' 하던 사람들도 그들이 불어대는 나팔 소리에 현혹돼 마치 기득권 세력이 그러듯, 그를 경멸해 나가기 시작했다. 저잣거리에선 모든 잘못을 그에게 돌리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지지자들마저 등을 돌리고 그의 인기가 떨어지자, 그의 가치를 좇아 열린우리당으로 모였던 이들마저도 그에게 손가락질하며 다시 손쉬운 지역주의에 기댔다. 국민들이 그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기득권 세력은 다시 구체제를 공고히 만들었다.

 오랜 노력으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한 뒤 그들은 권력을 다시 탈취해 냈다. 그는 조용하고 담대히 고향으로 내려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갔다. 평범하게 농삿일을 시작했다. 기득권 세력은 마지막에 인기가 없었던 그를 뒤에서 조롱하고 비웃었다. 그를 실패자로 만듦으로써 그가 꿈 꾸었던 세상을 헛된 이상으로 내몰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기득권을 천년만년 유지할 수 있는 체제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그는 가장 낮은 모습으로, 가장 폄범하게 낙향했을 뿐이었는데, 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작은 시골 마을에 사람들이 수백명 씩 몰려가 그를 연호하고 그를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퇴임 직전 인기가 바닥을 기던 대통령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을만큼, 그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뜨거워져만 갔다.

 그들은 초조해졌다. 그에게 쏠리는 사람들의 관심, 그의 이상에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의 눈길이 부담스러워졌다. 어떻게 되찾은 권력인데, 다시 그가 정치를 하려 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국민들과 있는 그대로 소통하는 그의 힘이 두려웠다. 

 그들은 다시 그를 흠집 내기로 했다. 자신의 재임 기간 기록물을 갖고 있다는 것을 두고 '불법' 운운 하며 그를 범법자로 만들려 들었다. 그 법을 만든 이가 바로 그 자신인데 말이다. 그가 인터넷 토론 사이트를 개설하려는 것을 두고도 수구 언론은 그가 '인터넷 대통령'을 참칭하려는 것이라고 갖은 흑색선전을 일삼았다. 전직 대통령의 사회에 대한 작은 발언조차 용납하려 들지 않았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그와의 이른바 '검사와의 대화' 끝에 국민들로부터 망신을 사고는 벼르고 별렀던 검찰을 앞세웠다. 검찰은 그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 정치적 재기의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의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결국 뚜렷한 증거는 없지만 여론 재판하기 좋은 건수를 하나 물게 되자, 그들은 언론 권력과 함께 그에 대한 마녀재판을 벌였다. 그는 항변하고 싶었고, 해명하고 싶었고, 법리 다툼을 벌이고 싶었지만, 이미 그들이 짜 놓은 프레임 안에서는 어떠한 해명도 국민들에게 온전히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바위 위에서 결국 몸이 으스러진 그의 실험은, 그로써 좌절하고 만 것일까? 그가 품었던 이상, 그가 했던 도전, 그가 벌인 싸움, 그가 이루고자 했던 세상은 그의 육신이 사라짐으로 해서 동시에 먼지처럼 사라지고 만 것일까?

 인터넷에서 그가 자신을 이르던 이름은 '노공이산'이었다. '우공이산'이라는 고사에서 빌어온, 그에게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며 비웃는데도 뚜벅 뚜벅 산을 옮기려 했던 노공은, 끝내 미처 산을 다 옮기지 못한 채 영면에 들었다. 그래서 그의 노력이 헛되이 된 것일까?
 
 고사에서 우공은 말한다. "나는 늙었지만 나에게는 자식도 있고 손자도 있다. 그 손자는 또 자식을 낳아 자자손손 한없이 대를 잇겠지만 산은 더 불어나는 일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언젠가는 평평하게 될 날이 오겠지."

 그 산을 옮기는 일은, 이제 남아있는 그의 '아들들'의 일이 되었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