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끽!2009. 9. 25. 19:28















 오아시스의 해체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의외로 난 담담했다. 음, 뭐랄까, 그저 "올 것이 왔다"는 느낌...? 갤러거 형제의 불화에 따른 해체 시도(?)가 한 두번 있었던 일도 아니었던데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왠지 이 밴드가 결코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4집 이후 그들의 음악에 큰 공감을 할 수 없었던 점도 내 담담함의 이유다. 최근 앨범 <Dig out your soul>에서 다시 옛 명성을 되찾았다고는 하나, 여전히 과거에 받았던 임팩트를 느껴볼 수가 없었다. 이미 내게는 추억으로 먹고 사는 밴드, 해체 결정은 차라리 "박수칠 때 떠나는" 아름다운 뒷 모습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오아시스가 떠남으로써 생길 마음의 허전함을 메워줄 '대체재'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아시스의 전성기 앨범들을 찾아들어도 여전히 허허로울 그 마음을 달래주고 메워주는 밴드, 막 세 번째 정규 앨범을 내고 아직까지는 오아시스의 초반 페이스를 그대로 닮은, 바로 카사비안이다. 

 카사비안은 여러모로 오아시스와 닮은 구석이 많은 밴드다. 오아시스가 작곡(노엘)과 보컬(리엄)의 두 축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카사비안도 세르지오 피쪼르노와 톰 메이건을 프론트에 내건, 사실상 두 남자의 밴드다. 오아시스가 지나치게 솔직한 입담과 거만함으로 각종 구설수에 올랐던 것처럼, 카사비안 역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철학을 기저에 깔고 할 말 못 할 말 결코 가리지 않는다. 오아시스는 맨체스터의 노동 계급 출신이고, 카사비안은 레스터 지역 노동자의 아들들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카사비안은 오아시스를 좋아라 하고 오아시스는 카사비안을 이뻐라 한다. 

 그렇지만 마치 <슬램덩크>의 강백호같이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 면에서, 카사비안은 오아시스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가령 밴드 이름부터, 이들은 연쇄 살인 그룹 '맨슨 패밀리'의 일원으로부터 따오는 대범함(?)을 자랑한다. 이유는? 그냥 어감이 좋아서란다. 새 앨범의 제목 <West Ryder Pauper Lunatic Asylum> 역시 지금은 사라진 실제 정신 병원의 이름에서 가져와 지었다. "수록된 노래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그 정신병원의 환자를 환기하는 느낌으로 귀에 전해지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란다. 대놓고 드러내는 음침함, 마이너리티의 기운, 그게 뭐 어떠냐는 투의 자신감 또는 건방짐은 이들의 음악에도 거침없이 강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음악 시장과 심지어 청자 대중을 의식하지 않는 제멋대로의 음악은 오히려 강한 중독성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입가에 찰싹 들러붙는 멜로디 라인, 몸을 가만히 가눌 수 없게 만드는 리듬감, 환각에 빠지게 할 만큼의 톡톡 튀는 전개는 그들의 음악에 그만 함락되고 말도록 만든다. 
 
 놀라운 것은, 이제쯤이면 그 흔한 '자기 표절'도 있을 법 한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이것은 카사비안 음악"이라고 일컬을만한 비슷한 멜로디라인도 중복되지 않는다. 모든 노래들이 각각의 개성 강한 향취를 갖고 있고 그래서 그 나름대로 모두 빛이 난다. 그러고 나니 앨범 자체의 무게가 값 나갈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친숙해지기는 단연 첫 번째 트랙 'Underdog'이지만, 서서히 스며들어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어 버리기는 'Vlad the Impaler'의 중독성이 더 강한 것 같다. 드라큐라 백작의 본명이라는데, 제목이 주는 이미지 그대로 노래 역시 사람을 '보내 버린다'. 빵 터지게 만드는 'Fire'나 남미풍의 'Thick as Thieves', 그리고 'Ladies & Gentleman, Roll the Dice'도 각각 치명적인 중독성을 보유하고 있다.

 오아시스와 달리(!) 이들은 비주얼도 되는 친구들이다. 싸가지 없어 보이기로는 웨인 루니보다도 더한 '악동 카리스마' 톰 메이건과 도무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냉혈 카리스마'의 써지는 기럭지부터가 남다르다. 게다가 옷도 '엣지'있게 입을 줄 안다. 실은 외모에서부터, 이기적이고 재수 없어질 수밖에 없는 놈들인 것이다. 비주얼이 돼서 그런지 몰라도, 뮤직비디오가 곡의 매력을 도리어 깎아먹곤 했던 오아시스와 달리(!!), 카사비안은 뮤직비디오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킨다. 그들의 유혹이 치명적인 데에는 눈에 보이는 모습도 큰 몫을 하는 셈이다. 

the best track : Vlad the Impaler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