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라리얄라2012. 1. 3. 10:06

 


 2011년은 곤혹스러운 한해였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수신료를 올리기 위해 야당 회의실을 불법 도청했다는 의혹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경찰이 무혐의처분을 내려 주었지만, 이번 선관위 디도스 공격 수사 결과와 마찬가지로, 경찰의 그 수사 결과를 신뢰하는 시청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수신료 인상은 공영방송 운영을 위한 안정적인 공적 재원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대의명분이 분명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가장 대의명분이 없는 방법으로 그 일을 추진하려다 그만 최악의 오명까지 뒤집어쓰고 말았다. 정권은 유한하고 공영방송의 주인인 시청자는 영원한데, 이 짧디짧은 정권이 막을 내렸을 때 대관절 무슨 면목으로 시청자들을 대면하려 하는 것인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한미 FTA 시위 현장에서 방송사들에 향하는 날선 반응들 역시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를 비롯해,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오롯이 홀로 받아야 했던 시위대의 매몰찬 질타를 이제 이웃 방송사와 나눠질 수 있게 돼 도리어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걸까? 시위대의 싸늘한 반응이 너나없이 들이쳤다는 것은 그만큼 그동안 방송 언론 전반이 편향돼 버렸다는 뜻이고, 그건 소속을 불문하고 공정 방송을 지켜내지 못한 방송 기자들에게 반성을 요하는 일이다. 방송 카메라에 대한 시위대의 더 격렬해진 반응은 곤혹스럽다 못해 슬프기까지 했다.

 그런 가운데 종합편성 채널의 무더기 출범은 방송 언론 환경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었다. 한정된 광고 파이를 나누어 먹는 일도 물론 기존의 방송사들 입장에선 걱정의 대상이겠지만, 보수의 경도로 보면 가장 단단한 네 개의 신문사가 종편 채널 네 개를 모두 꿰차고 들어왔으니, 방송 언론 전반의 우경화는 보다 심각해진 셈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채널이 많아진만큼 더욱 치열해질 시청률 경쟁이 결국 선정 보도 경쟁을 야기해 방송 언론 전체를 흙탕물로 만들어 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스럽기만 하다.


 올 한해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일련의 환경들이 새해가 된다고 당장 해결될 리는 만무하다
. 우리 회사는 무혐의 발표에도 도청을 의심하는 시청자들의 눈길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시위 현장에서 방송 카메라는 로고를 가려야 할 것이고, 7개 채널에서 매일매일 보수적인 뉴스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렇지만 희망은 품어볼 수 있지 않을까
? 무엇보다도 그동안 언론 환경을 옭죄어 왔던 이명박 정부의 5년 임기가 이제 마지막 페이지에 접어들었으니 말이다. 최소한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워 볼 한 해로 내년을 맞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물론, 자칫 희망의 싹은커녕, 더 깊은 터널로 들어서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현장에서의 부단한 노력과 치열한 싸움이 더 요구되겠지만 말이다.


 용의 우리말 표현인
미르는 언어학적으로 미리의 옛 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민간 설화 등에 등장하는 용은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거나 점지하는 영험한 능력을 선보인다. 다가올 용의 해는,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안겨 줄까. 새로 다가올 1년은 흥미진진한 일들로 가득 찰 것만 같다.


 방송기자연합회 <방송기자> 2011.송년호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