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끽!2018. 5. 27. 21:50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봤다.


- 영화 중반쯤 보다가 윈스턴처칠의 어떤 표정에서 "저 배우 게리 올드만하고 비슷하게 생겼네" 하고 생각했는데, 다 보고 검색해 보니 아닌게 아니라 그가 게리 올드만이었다. 사전에 아무 정보 없이 봤던 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처음에만 하더라도 저 배우가 뚱뚱하고 머리숱 없는 거 빼고는 윈스턴 처칠의 그 카리스마 있는 얼굴과 좀 다르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중반 이후 영화에 몰입하다 보니, 그냥 누구랄 것 없는 윈스턴 처칠 그 자체였다. 게리 올드만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지만, 이건 역대급이지 않을까 싶다.


- 북한이 미사일 놀이를 한참 할 때, 대화와 평화를 강조하던 문재인에게 극우파들이 조롱하며 빗댔던 게 체임벌린이었다. 그러면서 처칠처럼 단호하고 강단있게 북한에 맞서야 한다는 논리를 폈었다. 하지만 다른 게 있다. 히틀러의 독일은 침략전쟁을 벌이는 자이지만, 북한은 침략은 커녕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침공 위협 속에서 체제를 유지하는 게 급선무인 최빈국이라는 점이다. 김정은은 히틀러가 아니며, 따라서 문재인도 처칠일 필요는 없다.


- 난 그보다 영화보는 내내 <남한산성>이 연상됐다. <남한산성>에서 주화파 최명길은 체임벌린이나 할리팩스 쯤 될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척화파 김상현 쪽인 거고. 인조는 조지6세인 셈이다. <남한산성>에서는 척화파 말을 듣던 인조가 결국 최악의 상황에 몰려 삼전도굴욕을 겪었다. 그런데 <다키스트 아워>에서는 주화파가 물정 모르는 자들로, 척화파가 영웅으로 등장한다. 모든 게 결과론적인 얘기이겠으나.


- <다키스트 아워>의 처칠이 영웅적으로 묘사되고 결국 연합군의 승리로 그 영웅적 서사가 완성되었지만, 난 <남한산성>에서 최명길의 편에 섰듯, 여전히 평화는 구걸을 해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키스트 아워>는 처칠의 결심에 '지하철에서의 대화' 씬이라는 장치를 통해 영국 국민 여론으로 힘을 실어줬지만, 사실 이런 문제를 국민 여론이나 정서에 기대어 결정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기는 마찬가지다.


- 다만 처칠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설득'을 무기로 삼았다는 점은 꽤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할리팩스의 대사처럼 "말로 전투에서 이긴 것"이다. 처칠은 호전적인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나, 무력이라는 수단을 활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말로 상대를 설득했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보여준 처칠의 가장 큰 미덕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calvin.

Posted by the12th